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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Oct 24. 2024

엄마도 고백할 게 하나 있어

솔직히 엄마도 잘 못해

2024. 10. 22.

<사진 임자 = 글임자 >


"솔직히 엄마가 스마트폰 쓰는 거 보면 어때? 하루 종일 엄마가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어?"

"아니."

"엄마는 필요할 때는 쓰고 안 써도 될 때는 안 쓰잖아."

"그렇지."

"엄마도 의식을 하고 쓰고 있는 거야. 별생각 없이 있다 보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계속 그것만 보게 될 때가 있긴 하거든."

"엄마도 그래?"

"엄마도 사람인데 그렇지. 하지만 엄마는 가능하면 너무 거기에 빠지지 않으려고 해."

"그런 거였어?"

"세상 일은 어쩔 땐 의식적으로 신경을 써 줘야 할 때도 있는 거니까.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마음먹은 대로 잘 안될 때가 많이 있어. 그래서 더 힘든 건지도 몰라."


딸은 과연 내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알아 들었을까?

최소한 나와 함께 지내는 동안은 내가 어떻게 스마트폰을 이용하는지는 많이 봐 왔을 것이다.

솔직히 나도 아이들이 앞으로 스마트폰을 갖게 된다면 이런 식으로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일부러 더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긴 했다.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거의 매일 오디오어학당만 듣잖아."

"그게 그나마 엄마한테는 재미있고 들을 만하니까 그렇지."

"날마다 들으면 질리지 않아?"

"아니? (믿기 힘들겠지만)날마다 새로운 표현을 배우니까 더 재미있지. 몰랐던 것은 새로 알게 되니까 좋고,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은 복습한다는 마음으로 들으니까 더 좋고. 이러나저러나 엄만 오디오어학당 듣고 있으면 재미있더라.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고 말이야."

"하여튼 엄마는..."

아침에 아이들이 일어나자마자, 아니 일어나기도 전에 꿈결 속에서부터 EBS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서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듣는다. 여행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다. 남들이 보기에 이 정도면 집착이 아닌가 싶을 만큼 말이다.

내가 집안일을 할 때도 그냥 하는 것보다는 집에 어차피 혼자 있으니까 적적하지 않게 보내는 요긴한 방법이다. 방송에서 질문을 하면 혼자 대답을 하고 따라 하고 듣고 듣고 말하고 혼자 응용하고, 아이들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싶은 표현이 나오면 메모했다가 아이들에게 전파도 하면서 말이다.

라디오인지 핸드폰인지 구분이 안될 만큼 라디오 역할에 확연히 치우친 기분인긴 하다.

가끔 오디오북도 듣는다.

강의도 찾아 듣는다.

이만 하면 나름 괜찮게 스마트폰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나도 지금까지 고수해 온 스마트폰 사용 원칙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순간이 있었으니 간혹, 몸이 너무 아플 때는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단지 '시간을 때우기 위해'스마트폰을 사용할 때가 있긴 하다.

이건 마치 임신 중에 극도의 입덧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일 때, 그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어서 빨리 시간만 지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간절했을 때 십여 년 전에 아무 생각도 없이 TV를 봤던 시절과 흡사하다.

어려서부터 나는 TV를 그렇게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었다.

TV보다는 라디오가 더 친숙했다.

라디오는 들으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까 손 발이 훨씬 자유로웠다.

아마도 그런 영향이 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화면에 눈을 고정하는 것보다는 귀로 듣는 것이 더 좋다.

하지만 몸이 아프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내 경우에는 몸이 너무 아플 때는 그저 시간만 빨리 흘렀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래서 그럴 때는 아예 대놓고 스마트폰으로 이것저것을 한다.

사지도 않을 물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아무 생각 안 하고 보기만 하면 되는 방송을 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틀어 놓기도 한다. 아플 때는 뭐라도 정신을 팔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책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을 만큼 아플 때라야 가능하다.

극심한 고통이 동반할 때는 그냥 원시적으로 사는 게 그나마 나았다, 경험상, 내 경우에는.

어쩔 때는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조금 허무해지면서 내가 그동안 뭐 했나 싶기도 했다가, 그래도 정신 팔고 있으니 아프지는 않았으므니까(물론 아팠겠지만 워낙 딴 데 정신이 팔려 있어서 덜 느꼈을 거다) 그걸로 위안을 삼으면서도 말이다.


"너희도 알다시피 엄마가 스마트폰을 좀 많이 쓸 때가 있긴 있잖아. 몸이 너무 아플 때는 통증을 잊어 버려고 그럴 때 좀 쓰잖아. 하지만 엄마도 그러고 나면 어쩔 때는 괜히 그렇게 시간을 낭비한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근데 그래도 잠깐이라도 통증을 잊을 수 있다면야 그런 방법도 괜찮은 것 같기도 하더라. 아무튼 앞으로 너희도 스마트폰을 갖게 되면 이왕이면 좋은 방향으로 썼으면 좋겠어. 그게 제일 힘들다는 건 엄마도 잘 알아. 그러니까 엄마도 더 노력해야겠지."


사람인데, 어떻게 완벽할 수가 있겠는가.(물론 완벽할 수도 없을 테고 말이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절제하고 주의하고 의식적으로 산다.

그 스마트폰이라는 게, 사람을 그렇게 만든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최소한, 아이들 앞에서 자수는 해야 했다.

말로만 아이들에게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하면 큰일 난다, 무조건 따라야 한다 이런 식의 강요는 하고 싶지도 않고 먹히지도 않을 거다.

아이들도 다 보는 눈이 있다.

무엇보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다르면 아이들은 귀신같이 찾아낸다.

이쯤에도 양심고백을 해야 한다.

엄마도 철저하게 원칙대로는 못 산단다.

엄마도 너희랑 비슷해.

어차피 사람 사는 건 거의 비슷할 거야.

하지만 어느 정도 노력은 하고 살아야 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

최소한의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서, 그게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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