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강 청소년들이 도박의 늪에 빠져 갑자기 부모에게 용돈을 올려 달라고 한다거나 알바를 하게 해 달라고 한다는 그런 내용 말이다.
나도 처음 그런 내용이 방송되었을 때는 무심히 흘려 들었었다.
에이, 설마?
어린애들이 무슨 도박이야?
아직 애들인데, 애들이 뭘 알아서?
이랬었지만 그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었다.
아이들에게 세상은 가끔 아주 유혹적이고 위험하기도 하고 치명적이기도 하다.
"애들이 어떻게 도박을 한다는 거야?"
그 양반은 내가 마치 너무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냐는 말투였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으니까 이렇게까지 방송에 나오는 거 아니겠어? 일부 그런 일이 생기나 보지. 하긴, 옛날에는 없었겠어? 우리 어렸을 때도 있었겠지. 꼭 어디 가서 한다는 게 아니라 요즘엔 애들이 다 인터넷 쉽게 사용하잖아. 온라인에서 하는 걸 말하는 것 같은데?"
말하고 보니 언젠가 그와 관련된 내용의 방송을 TV에서도 본 것 같기도 했다.
갑자기 자녀가 용돈을 자꾸 올려 달라고 보챈다거나, 돈이 필요하다며 일을 하겠다고 한다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뭐든지 평소에 안 하던 행동을 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일단 의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니까. 이래서 한시도 자녀에게서 관심을 소홀히 할 수 없다.
지금 중요한 건 얼마 전에 자꾸 딸이 용돈을 올려 달라고 우리에게 말해왔다는 사실이다.
초등학교 6학년 여아, 한 달 용돈 2만 원.
절대 적은 금액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딸은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렇게 원했다.
내가 딸 나이였을 때는 따로 용돈이란 걸 매달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어쩌다 용돈을 받게 되면 그 돈으로 살아가는 식이었다.
그렇게 살 게 많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내 형편에 맞게 살았으니 딱히 부족하다고도 느끼지 못했다.
"엄마 어렸을 때는 용돈 같은 것도 없었어. 초등학생이 2만 원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니야?"
라는 말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면서 지켜보고 있던 차였다.
엄마가 어릴 적에는 용돈을 안 받았다는 그 사실보다 현재 너는 매달 꼬박꼬박 2만 원씩을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더 집중하라면서 말이다.
"내 친구들은 그래도 나보다는 더 용돈 많이 받는 것 같던데?"
"그래? 혹시 그 친구들 학원 다니지 않아?"
"응. 다녀."
"생각해 봐. 다른 친구들이 너보다 용돈을 조금 더 받는 이유는 학원에 다니니까 중간에 배고플 때 간식이라도 사 먹으라고 그러는 거 같은데 넌 학원도 안 다니고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엄마가 간식 다 만들어 주잖아. 요즘 물가 너도 잘 알잖아? 친구들이 너보다 더 많이 받아도 그런 데에 쓰고 나머지를 따져보면 너랑 별 차이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용돈이 모자라."
"모자란 게 아니라 네가 모자라게 만들어버린 거지. 돈을 쓸 때는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쓸지를 생각하고 써야 하는데 일단 넌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사 버리잖아. 하지만 사람이 사고 싶은 걸 다 사고 살 수는 없어. 그러니까 우선순위라도 정해야지. 나중에 네가 커서 돈을 벌어 쓸 때도 마찬가지야. 내키는 대로 무조건 돈을 다 써버리면 어떻게 되겠어? 지금부터 연습을 계속해야지."
"저번 달은 용돈이 너무 빨리 떨어져 버렸어."
"그건 네가 초반에 너무 낭비(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낭비라면 낭비다)를 해버려서 그런 거 아니야? 한 달 동안 2만 원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초반에 친구들이랑 만나서 밥 먹고 놀러 다니느라 금방 다 써 버렸잖아. 어파치 쓸 수 있는 돈은 한정돼 있는데 그렇게 기분 내키는 대로 다 쓰면 당연히 금방 용돈이 바닥나지."
"그렇긴 한데..."
"설마 너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무슨 일?"
"어디 엉뚱한 데다 돈 쓰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너무 자주 놀아서 그런 거야."
"그럼 다행이고. 아무튼 용돈은 좀 계획성 있게 썼으면 좋겠다."
"다음부터는 아껴 써야겠어."
"그래. 사람이 형편에 맞게 살아야지. 그게 중요해."
(다행히도, 내 생각에도 살짝 얼토당토않은 추측이긴 했지만) 도박이 아니라 한탕주의가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