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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18. 2022

9급 공무원 신규자의 사생활,무엇이든 물어봤어요.

나 그대들에게 모두 공개하리.

22. 11. 17. 궁금증이 주렁주렁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임자 씨, 어디서 살아?"

"부모님은 계시고?"

"형제자매는?"

"학교는 어디 나왔어?"

"여기 합격하기 전까지 뭐했어?"

"나이가 좀 많네?"

"어쩌다가 이렇게 늦게 합격했어?"

"결혼은?"


공무원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는 잘 몰랐지만 저 모든 질문들이 공직생활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며 전혀 도움도 되지 않으리라(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감히 확신했었다.

"그럼 결혼 안 했으면 남자 친구는 있어?"

게다가 마지막엔 항상 이런 식이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신규자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그런 얘기 말고 얼른 내가 어떻게 일을 하면 되는지나 가르쳐줬으면 싶었다.

그러나 인강을 들을 때조차도 강사들이 전혀 알려주지 않았던 영업 비밀이 있었으니, 신규자로 발령받은  첫날은 온갖 사생활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에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응해야 한다(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나는 전날 심혈을 기울여 휴먼 명조체 11포인트로 A4용지 한 장 분량으로 구구절절 내 사연을 옮겼을 것이다.


지나치도다.

사람들은 왜 그리도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가.

수미상관,

의원면직하던 때도 저렇게 (오히려 간섭이라고 느껴질 만큼)관심들이 지나쳤었다.

그것은 데자뷔.


내가 어디에 사는지?

첫날부터 퇴근할 때  '카풀 보쌈'을 하기 위함임을 알았다.

부모님의 안부?

뵌 적도 없는 남의 부모님이지만 그저 기본적으로 으레 건네고 보는 인사였다.

나의 형제자매?

이건 정말 별 뜻 없어 보인다.

어쩌면 소개팅 자리라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나의 출신 학교는 어디에 쓰시려고?

어떻게든 엮고 보려는 거지.

공무원 합격하기 전까지의 나의 과거?

솔직히 나도 남들의 과거가 궁금하긴 하니까 너그럽게 넘어간다.

서른, 내 나이가 많다고?

다들 반응이 그랬다.

당시 서른에 합격한 사람은 흔치 않았었다, 그것도 여자 나이 서른은.

신규자 교육을 가서도 나는 여자치고는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여동생 없는 설움, 거기 가서 실컷 언니 대접받으며 승화시켰다.

내가 그동안 정신을 못 차려서 그랬지 달리 뭐가 있나.

어쩌다가 이렇게 합격이 늦었냐고?

그렇게 물으신다면 설렁설렁 공부하다가 떨어지고 떨어져서, 계속 떨어지다 보니까 늦어진 것뿐이다.

당연한 말 아닌가?

여태 떨어지고 그때 한 번 붙은 것뿐이다.

결혼을 했는지 궁금하시다고요?

솔직히 당시의 나는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아주 강했던 사람이다.

이미 요단강을 건너와 버린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다.

남자 친구?

그렇지.

가장 궁금하셨을 테지.

있긴 있어요.


남자 친구가 있다는 말에 이젠 나에 대한 관심사가 그에게로 넘어갔다.

사생활의 세대교체다.

아니, 인물교체 시간이다.

타인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넘치는 정 많은 이 민족을 어찌하면 좋을꼬?

그들은 관심의 영역을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것을 전문 고급 용어로 '신상털기'라고 한다지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단지 내 남자친구란 이유로 '때문에'씨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렇잖아도 공부할 때 이어폰을 하도 많이 써서 귀먹은 것 같다는 그에게 원치 않는 귀간질거림의 고통까지 얹어준 나는 죄인이다.

자고로 '과유불급'이라 했거늘.


나도 궁금한 것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순간이 있긴 있다.

하지만 관심이 있고 궁금하다고 해서 다 시시콜콜 캐묻지는 않는다.

물론 속으로는 궁금해 미치겠는 상황이 있더라도 일단 기다린다.

남의 궁금한 개인사, 그것 좀 늦게 안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고 그 지자체의 행정에 당장 크나큰 타격을 주는 것도 아닌걸 뭐.

특히나 사생활에 대해서는 가급적 먼저 물어보는 일은 자제하는 편이다.이는 실로 대단한 인내력을 요하는 일이다. 점점 나이가 들고 나서부터는 말이다.

시절 인연이 되면 상대가 원치 않아도 술술 만천하에 드러날 때가 온다.

상대방의 사생활은 그 사람 고유의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남들이 함부로 찧고 까불 수 있는 가벼운 노리갯감이 아니다.

말이 너무 많은 세상이다.

때론 수다스러운 것이 독이 될 수도 있는 법, 차라리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그러나 발령 첫날 나는 저 모든 것에 성심 성의껏 답변했다.

신규자였으므로.

그것도 새색시처럼 아주 수줍어하면서 말이다.

용케도 첫날에는 나의 본성을 드러내지 않고 무사히 보냈다.

공무원 합격한 것만큼이나 내가 대견하다.

그 이외의 더 많은 질문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날 속기사를 대동했어야 했는지도 몰랐다.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에 발령 첫날부터 나는 재택 근무를 간절히도 꿈꾸었다.

또한 그날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임과 동시에 '오지랖의 동물'이라는것을.


그나저나 공무원의 의무 중 시보기간에 무차별적인 직원들의 질문 공세에 '무조건 답변할 의무'가 조만간 시행될 것인지, 국회에 계류 중인지 한번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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