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Sep 16. 2022

9급 공무원 신규자는 어쩌다 면장님과 카풀을 하게 됐나

차라리 군내버스가 좋아라.


22. 9. 13. 겉도는 사이

< 사진 임자 = 글임자 >


"우리가 지나가는 길이니까 그냥 가는 길에 태워 줄게. 같이 타고 출근해."

면장님의 한 마디에 굴레는 씌워졌다.


2009년, 공무원 임용이 되고 고향 면 소재지에서 자취를 하게 됐는데, 첫 발령지인 면사무소까지는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다.

그 신세계로 들어가는 버스가 아침 8시 정도에 있어서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 차를 무조건 타야만 출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도 운명의 버스는 8시가 되어야만 출발을 하므로, 면사무소에 도착하면 9시가 조금 안 되는 그런 시간이었다. 터미널에서 또 걸어서 면사무소까지 가는 시간도 살뜰히 포함해야 한다.


새벽 6시에 일어나 긴장하며 출근 준비를 했다는 사실은 나만 아는 일급비밀, 외부로 유출이 되어서는 결코 안될 영구보존 문서 관리하듯 영원히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 일이었다.


처음 발령지를 듣고는 어림짐작으로 30분, 40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거리라고 생각했다.

'출근길에 책을 볼까? 아니면 모닝 스페셜을 집중해서 들어 볼까?'

신규자는 철없는 설렘까지 느낀다.

도시에서는 한두 시간 거리도 매일 출퇴근하는 직장인들도 허다한데 그 정도 거리쯤이야, 했지만 이내 출근할수록 멀고 먼 곳이었다.

서역 만리, 머나먼 나라처럼 닿을 수 없는......


그래도 돌이켜보면 거리상 먼 것 말고는 직원들도 좋았고 동네 이장님들도 정 많고 좋은 분들이셨고 찾아오는 민원인들도 나쁘진 않았다.

그렇게 믿으련다.

사실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곳이 그 지자체에서 가장 먼 거리라고 할 수 있었으므로 '유배지'라고도 했지만, 일단 거리가 먼 것부터 단점으로 보기도 했지만 진심으로 나는 유배지란 이미지를 세탁하고도 남을 만한 좋은 인상을 많이 받았으므로(어쩌면 첫 발령지라 뭘 몰라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으나) 큰 불만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출근하는 것을 보고는 면장님께서,

아이고, 어렵기도 해라.

다른 직원도 아니고 면장님께서

"그러지 말고 우리 가는 길에 같이 타고 가면 되겠네."

그렇게 시작하지 말았어야 옳을 카풀을 시작했다.


앞에는 면장님, 뒤엔 나랑 다른 주사님. 여자는 나 혼자. 불편, 엄청 불편.

출근 시간 내내 감사장에서 감사받는 기분이라니.

세 분이 뭐라 뭐라 얘기하고 웃고 떠들어도 너~~~~ 무 불편한 나는 출근길 내내 침묵으로 일관했다.

일관할 수밖에,  시보가 달리 무슨 할 말이 있을 것이며 감히 어디서 끼어드랴.

갓 시집온 새색시도 당시의 나처럼 얌전하진 못했으리라.

처음엔 낯을 좀 가린다.

생후 6개월 이후 시작된 낯가림은 360개월이 지났어도 쉽사리 나아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말 통하고 마음 맞는 사람이 있다면 '낯 가리기'는 그때부터는 사전 속의 어휘에 지나지 않는다.

은근히 사람을 가려서 사귀는 성격이기도 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사귈 수 없고, 내 목숨은 영원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처음부터 합류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팀엔 끼는 게 아니었는데. 출근만이라면 또 몰라. 속없이 퇴근길에도 합류하고야 말았으니.

"어차피 지나가는 길인데 뭐 하러 버스 타고 다녀? 우리랑 같이 다니면 되지."

카풀 멤버 주사님들은 그렇게 말했지만 진심이었는지 지금은 모르겠다. 면장님께서 먼저 말씀하셔서 그냥 한 말일 수 있는데 내가 덥석 물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을 지금에서야 지울 수 없다.


하루 종일 걸리는 출근길이라도 마음이라도 편하게 군내버스를 탔어야 했어.

의원면직해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렇게 한 달 정도 이어졌으려나. 이 주사님이 운전하고, 저 주사님이 운전하고, 결국은 돌아가면서  면장님을 모시는 거였다.

속없이 거기 내가 끼다니. 타란다고 탈 건 또 뭔가.

세상 물정 모른다고 저렇게나 몰랐을까.

가끔 한 번씩 중간에 다른 여직원도 합류하기도 했다.


친구들과 여행길 떠나는 것도 아니고 매우 굉장히 어려운 윗분과 아직도 서먹서먹하기만 한 다른 직원들 사이에서 지방행정서기보시보는 정체성의 혼란을 또 느꼈다.

'면장님과의 카풀 금지법'은  국회에 계류 중인가 보았다.

 법이 통과되길 기다리느니  내가 차를 사는 편이 더 빠를 것이다.


급기야 나는 선언했다.

두 눈 질끈 감고 소심하게 의사표현이란 것을 하기에 이른다.


"앞으로는 버스 타고 다니겠습니다."

이전 06화 9급 공무원 발령 첫날 '선물 3종 세트'를 받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