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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26. 2022

그 공무원 신규자를 포섭하라!

정작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없었다.

22. 11. 25. 혼자,살기

< 사진 임자 = 글임자 >

"임자 씨! 나 OO 향우회 OO인데 이번 주에 우리 향우회 모임 있거든. 그때 나와. 새로 왔으니까 인사해야지?"

"시간 되면 올 수 있어?"

가 아니었다, 역시나.

정신없던 그 시절의 나는 거기 참석 안 하면 공무원 임용 취소라도 당하는 줄 오해하고, 당연히 가야 되는 자리인 줄로만 알고

"네,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해 버렸다.

발령받고 이튿날부터인가 모르는 이들로부터 줄기차게 전화를 받았다.

신규자에게는 그 어떤 선택권도 없었고 감히 거절이란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제안이라기보다는 은연중에 강요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싫으면 싫다고, 안 가겠다고 왜 말을 하지 못했던가.


내가 공무원을 하기 전에 정식적으로(?) 직장인 다운 생활을 많이 해 보지 않아서 공무원이 유독 이런 것인가, 아니면 사기업도 이렇게 돌아가는지 궁금할 때가 많았다.

유독 학연, 혈연, 지연에 얽매인 복잡한 인간관계도 그렇거니와, 아마도 지역 사회라 어쩌지 못하는 그런 것도 있겠지만 너무 폐쇄적이라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곳 공직 사회도 이른바 '줄 서기'와 '편 가르기'가 만연해 있었다.

나야 워낙에 그런 쪽으로는 소질도 없고 무심한 편이라 그렇기도 했지만 온 열정을 그런 쪽으로 쏟는 사람도 보았고 거기서 소외받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만났고 어쩔 땐 사기업보다 더한 곳이 그곳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겠지.

임용될 때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기회를 준다는 공개경쟁시험을 치르지만 일단 임용이 되고 난 후에는 과연 공평한지 어쩐지 모르겠단 것이다.

힘이 있는 자가, 발 넓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어떤 면에서) 훨씬 우대받는 곳이었다,라고 지금 다시 한번 생각이 든다.


내가 근무했던 곳은 거의 대부분 그 지자체가 고향인 사람들이었다.

나부터도 지방직 시험을 치를 때 우선 고향부터 생각해 보았기 때문에 이상할 것도 없었지만, 뭐랄까 한 동네 사람들끼리 안달복달하면서 살았던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잖아도 폐쇄적이기 그지없는 사회인데 한 다리 건너면 어떻게든 엮이게 되는 사람들과 30년 정도 같이 근무한다고 생각하니 어쩔 땐 숨이 막히기도 했다.

지방직 공무원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일까?


좋게 말하면 단합이 잘 되고, 반대로 말하면 너무 '그들만의 세계'이다,라고 종종 느끼곤 했다.

그 좁은 지역 안에서 또 동네를 나누고, 나이를 따지고, 출신 학교를 들추고, 구분하고 차별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왜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는가.

신규자를 상대로 그들이 입어주길 원하는 옷은 너무도 많았다.


내가 공무원 발령을 받고 일주일도 안되어 각종 모임에 가입하라는 제의(보다는 강요에 가까웠다.)를 받았다.

맨 처음 군청 과장님으로 계시던 친척분이

"공불회에 들어와라."

이렇게 말씀하셨다.

"들어올래?"

가 아니었다.

공불회가 뭐지?

공무원 불자협회란다.


내가 합격했다는 사실을 제일 먼저 알고 내게 그 소식을 전해주신 분인데 최종 합격을 알게 된 그날 바로 우리 집에 오셔서 '공불회'가입을 권유하시는 것이었다.

아니, 권유가 아니라 일방적인 강요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호히 거절하지도 못했다.

대한민국 국민에겐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배웠다.

그러나 경험으로, 어느 특정 종교의 회장으로 계신 분이 친척분이라면 공무원 신규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종교의 강요'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얼버무리고 대충 넘어갔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또 언제였던가?

퇴근길에 내가 사는 방향으로 저녁 모임이 있다며 (막내 이모 친구분인) 직원이

"나 그쪽 방향으로 가니까 같이 가지?"

이러시길래, 단순히 카풀하는 줄로만 생각하고 나는 또 냉큼 올라탔다.

"아, 네. 고맙습니다."

말만 한 다 큰  처자를 싣고 가서 어디에 내다 버리진 않겠지.

새우잡이 배에 넘기기엔 그곳에서 바닷가까지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곳에 나를 부려 놓았다.

이런 게 아마도 '카풀 보쌈'이 아닐는지.


알고 보니 그분은 다소 과격한(나는 과격하다고 느꼈다.) 공무원 노조 임원이었다.

내가 도착한 곳은 노조원들의 회식 자리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그럴 의도였을까.

계획적이었을까.

회식 장소에 당도해서야 그분은 속내를 드러내셨다.

"어차피 노조 가입했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모임에 같이 갔다가 가지. 금방 끝나. 끝나고 가는 길에 내려 줄게."

그리하여 나는 행정학 책에서만 보던 '공무원 노조'의 실체를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발령받은 지 며칠 되지 않는 신규자가 그 모임에서 도대체 뭘 한단 말인가.

지금 생각해도 거긴 내가 낄 자리는 아니었다.

금방 끝난다는 그분의 말씀은 과연 거짓말이 아니었다.

모임은 고작 3시간 만에 금방도 끝났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다음 날

"우리 원숭이띠 모임이 있는데 거기 안 갈래?"

누군지도 모르는 이가 또 제안을 해 왔다.

자, 다음 손님 어서 나오셔요.

"OO 학교 나왔다며? 여기도 거기 출신 있어. 언제 한 번 나와."

"OO 동아리 모임 있는데 관심 있으면 연락해. 한두 개 정도는 가입해야지."


그 외에도 일반행정직끼리의 모임, 신우회, 또 뭐였더라?

다들 그렇게 애타게 신규자의 출현만 기다렸단 말인가.

솔로몬 왕을 어서 부활시켜야 할 판이다.

긴급상황, 긴급상황!

솔로몬 나와라 오바.

나를 도대체 몇으로 나눠야 하지?

내 몸은 하나인데 신규자를 사방에서 간절히도(어디까지나 내 기분상) 원하고 있었다.

뭐야?

공무원들의 다단계 모임 활동이라도 되는 건가?

왜 서로 데려가지 못해서 안달이람?


옛날에 우리 할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반드시, 꼭 옛날 옛날 시골분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며느리는 멋모를 때 촌에서 어릴 때 데리고 와야 써."

이러셨는데, 지금 이런 말씀을 하셨다가는 어떻게도 뒷감당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철없는 신규자, 아무것도 몰라 어리둥절해하고 있을 때 서로 어서 데려가려고 사방에서 아우성치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고 혼자만 생각(혹은 착각)했다.


공무원 세계에서는 순진한, 그러나 결코 순진하지 않은 신규자를 놓고 무슨 다단계 판매에 열 올리듯 여기저기서 그렇게도 연락이 많이 왔었다.

나는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이었다.

그나마 바라는 게 있었다면 딱 하나였는데 만약에(애초에 큰 기대도 안 했지만) 오랫동안 듣고 있던 'G.M.P'동아리가 있다면 거기는 가입할 의사는 있었다, 그것도 아주 적극적으로.


나는 대범하게 1인 영업에 나서서 질문했다.

"주사님, 혹시 여기 G.M.P 동아리는 없어요?"

"그게 뭔데?"

"Good Morning Pops라고 새벽 6시에  KBS 라디오에서 하는 영어 방송이거든요."

"몰라. 그런 건 없어."

뭐야,

정작 (지극히 내 기준에서만) 영양가 있는 그런 모임은 있지도 않았잖아.

당시 내 기분이 그랬다.


용케도 내 의지로는 그 어떤 동아리에도 가입하지 않았으나,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도 없이 향우회만은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벗을 수 없는 멍에임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거기만 회원으로 들어갔다. 안 들어갈 수가 없는 시스템이다.

이미 나는 가입되어 있었다.

나의 친척분이 향우회 회장님이시란다.

다짜고짜 회비를 자동 이체할 계좌를 적어서 주라는데 달리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가끔 그런 생각도 들었다.

당시에 다른 직렬로 한 명이 더 있긴 했지만, 일반 행정직으로는 나 혼자만 채용이 됐기 때문에 동기도 없고 혼자라서 좀 외롭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동기 모임을 하며 서로 교류도 활발히 하고 정보도 주고받고 똘똘 뭉치고 서로 돕기도 하면서 사는 것처럼 보였다.

어쩔 땐 부럽기까지도 했다.

저출산 시대에 자식 하나만 낳아도 인구 감소 문제가 심각한데 어쩌자고 그때는 일행직을 달랑 한 명만 채용했더란 말인가.

가끔씩

'나도 같은 직렬의 동기가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공수래공수거', 어차피 공무원 임용은 혼자돼서 결국 혼자 퇴직하는 거다.


다른 사람들은 동기들이 승진을 하기 시작하면 자신도 승진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안달이 난다.

남편이 그런 경우였다.

나는 비교 대상이 없었다.

비교하고 싶은 마음도 전혀 없었거니와 다들 환경이 달라서 비교할 만한 것도 못되었다.


동기들끼리 서로 챙겨 준단다.

그러면서 또 서로 시기한단다.

소문으로만 들었다.

소문이니까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결혼한다고 해서, 둘이라고 해서 꼭 무조건 좋기만 하더냐.

그렇지도 않았잖아.

그래, 차라리 혼자가 낫다.

혼자라서 좋을 때 가끔은 있긴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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