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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Nov 14. 2024

시기는 신중하게, 구매는 신속하게

사용은 마르고 닳도록

2024. 11. 13.

< 사진 임자 = 글임자 >


"아빠가 한 대 사줘야겠어."


갑자기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우리 집 성인 남성이 중대 발표를 했다.

6월의 어느 무더운 날의 일이다.


"이젠 사 줄 때가 된 것 같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어. 어차피 사긴 사야 하잖아."

우리 집 성인 남성은 단단히 결심한 듯 보였다.

"글쎄. 요즘 수업 시간에 많이 쓰는 것 같긴 하던데."

나도 더 이상은 반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차피 지금 사면 앞으로 몇 년은 쭉 쓸 수 있잖아."

"오래 써야지. 최소한 10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네, 또."

"아무튼 그만큼 오래 잘 써야 한다는 말이지, 내 말은."

나도 양심은 있으니 10년은 무리고 그래도 지금 장만하게 되면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써야 한다고 분명히 못 박을 생각이었다. 물론 딸의 어이없어할 표정이 눈에 선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합격아, 아빠가 스마트폰 살 거래."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 아빠 옆에 찰싹 붙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최근에 딸이 무언가를 선물 받고 저렇게 환한 얼굴이었던 적이 언제였던가를 떠올려 보려 했으나 그날의 중대발표 순간만큼은 아무래도 아니었다.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합격아, 최소 5년은 써야 된다. 알았지?"

나는 또 딸에게 하나마나 한 소리를 했다.

5년이든 50년이든 특별히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 딸의 첫 스마트폰이 마르고 닳을 때까지는 쓰게 할 생각이었다.

"5년씩이나?"

"그럼. 그 정도는 써야지."

"스마트폰을 그렇게 오래 쓸 수 있어?"

"특별히 이상이 생기지 않는 한(하지만 갑작스레 특별히 이상이 생기고야 마는 것이 그 요망한 스마트폰이라는 게 문제이긴 하다.) 오래 쓰지."

"엄마는 얼마나 썼는데?"

"엄마는 5년 정도씩은 던 것 같은데? 그것도 고장 나서 바꾼 건 아니고 그동안 아빠가 그냥 오래됐다고 바꿔 준거지 엄마가 바꾸고 싶어서 바꾼 적은 한 번도 없어. 너희 아빠 것은 고장도 잘 나던데 엄마 것은 고장도 안나더라. 지금 쓰는 것도 4년째야."

"그래? 고장도 안 났는데 왜 바꿨어?"

"너희 아빠 너도 알잖아. 느닷없이 기계 바꾸고 그러는 거."

"하긴, 아빠가 좀 그렇긴 하지. 아빠 것도 잘 바꾸잖아."

"아빠는 저번엔 이상이 생겼는데 수리비가 새로 사는 거 비슷하게 나와서 그냥 사 버린 거야. 그건 새로 산 지 진짜 몇 달도 안 된 거였는데."

"그랬구나. 그럼 나도 나중에 고장 나서 수리비 많이 나오면 다시 사 줄 거야?"

"아직 사지도 않았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은 벌써부터 걱정할 거 없고. 이상만 없으면 아무튼 계속 쓰는 거야."

"알았어."

"이제 6학년인데 벌써부터 스마트폰이 생기다니. 넌 좋겠다."

"당연히 좋지."


딸의 생애 첫 스마트폰 장만과 관련해 한창 토킹 어바웃 하고 있는데 방에서 뭘 하는지 그 좋아하는 '끼어들기'도 하지 않으시던 우리 집 성인 남성이  우리를 향해 한마디 외쳤다.

"주문했다!"

'내가 한 번 알아볼게.'라고 말문을 연 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맞아, 이거였어.

어디서 많이 보던 풍경이야.

차 사고가 난 바로 다음 날 중고차를 한 대 장만해 버리던 그 신속함이 어디 가지 않았구나.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버리는 진정한 행동주의자.

물론 그 행동의 결과 가장 큰 혜택을 받은 이는 단연 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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