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네 바람대로만 되지는 않는단다,라는 식의 재미도 없는 훈화말씀은 이제 더 이상 딸에게 와닿지 않았다.
갖고 싶어 하더니 결국에 갖게 되었다.
하고 싶어 하더니 하게 되었다.
참고 참았더니 이런 날도 온다.
결과만 보자면 7년을 기다린 끝에 그녀의 바람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엄마, 드디어 왔어! 이거 진짜 좋다."
아무렴 좋겠지. 우리 집에서 가장 최신형인데, 가장 비싼 것인데 좋고 말고.
앞으로 최소한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쓰자고 은근슬쩍 압력을 가하고 주문한 것이었다. 아니 가능하면 어떻게든 그렇게 사용하라고 간절히 부탁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이왕 사는 거 괜찮은 걸로 사서 오래 쓰면 좋지."
제 아빠의 단호한 말에 가장 신난 사람은 단연 딸이었다.
"엄마 것보다도 훨씬 좋은 것 같다. 화질도 차원이 달라. 정말 최신폰은 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라는 말로 나도 한층 고조된 그녀의 기분을 더욱 신나게 해 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물론.
얼마나 좋을까.
좋긴 좋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몇 가지 있다는 것을 이쯤에서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너무너무 들뜬 나머지 딸이 저 구름 위에서 떨어지고 황망해하기 전에 말이다.
"이제 스마트폰을 어떻게 사용할지 구제척으로 계획 좀 세워 보는 건 어때?"
"엄마, 잘~ 사용하면 돼."
"그러니까 어떻게 잘 사용할 건지 이젠 정확히 해야지. 일단 중요한 건 넌 그걸 학교 수업용으로 주로 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돼. 집에서나 길에서 시도 때도 없이 사용하는 건 아니야. 착각하면 안 돼. 알지?"
내가 말을 마치자 딸은 얼굴 표정이 금세 바뀌었다.
하지만 이건 스마트폰을 구입하기 전부터 어느 정도 합의 본 사항이었다.
옛말에 '스마트폰 사달라고 조르기 전 다르고 택배 받은 후 다르다'더니, 옛말 그른 거 하나 없군.
"항상 스마트폰을 사 준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야 돼. 적어도 가지고 놀라고 산 건 절대 아니야. 알지?"
"응. 알지."
"네가 수업 시간에 그걸 자주 사용한다고 해서 그때 '사용'하라고 사 준 거라고. 집에서는 쓸 일이 거의 없을 것 같은데? 숙제나 할 거 있으면 노트북 쓰면 되고. 그치?"
"응, 그렇긴 한데..."
어랍쇼? 얘 좀 보게나. 처음에 우리랑 했던 얘기랑 다른 반응을 보이네.
내 이럴 줄 알았지.
하지만 약속은 약속이니까 일단 우리가 합의 본 사항은 지켜야지.
최소한 지키려고 노력하는 성의라는 것을 보여 줄 필요는 있었다, 딸도 우리에게.
"엄마, 그럼 나 아예 스마트폰 못 쓰는 거야?"
"아니지. 필요하면 쓸 수 있지. 엄마 말은 '쓸데없이' 그것만 들여다보면서 시간 낭비 하는 그런 일은 없어야 한다는 거지. 엄마 아빠가 제일 걱정했던 게 그거라는 거 알잖아.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되기 쉽거든. 그럼 먼저 친구들 연락처부터 저장해야겠네?"
"아, 맞다! 그거부터 해야겠다."
딸은 어떤 작업에 착수했고 얼마 후 엄마 아빠에게 대화를 시도하고 이모티콘을 보내고 즐거워 하기 시작했다. 애들은 다 저렇겠지 하면서도 뭔가에 한 번 빠지면 완전히 그 속에 묻혀 버리는 딸의 성격을 알기 때문에 살짝 염려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저 기세대로라면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주야장천 색다른 이모티콘을 보내며 검지를 혹사시킬지도 몰랐다.
"엄마 이거 진짜 신기하다. 이런 것도 되네. 엄만 알고 있었어?"
"아니. 엄마도 몰랐었어. 신기하네. 이런 건 어떻게 알았어?"
딸이 발견해 낸 어떤 요상한 기능들에 나는 다섯 살 아이마냥 호들갑을 떨며 신기해했다.
뉘 집 딸인고?
어쩜 대견하기도 하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받자마자 스마트폰 스스로 어린이가 되다니!
그러나 나는 딸의 수법을 잘 안다. 엄마에게 뭔가를 가르쳐준다는 명목 하에 은근슬쩍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붙들고 싶은 것이다. 그걸 내가 모를 리가 있나!
"합격아, 근데 엄마는 그런 기능 지금은 필요하지 않으니까 다음에 엄마가 물어보면 그때 알려줄래? 네가 깜빡한 거 같은데 그 스마트폰은 엄마 교육용이 아니라 네 수업용이야. 알겠지?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하루 종일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게 생겼어. 시간을 봐봐, 벌써 한참 지났어. 스마트폰을 쓰다 보면 이렇게 된다니까.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근데 그걸 잘 못 느껴. 처음엔 한 두 가지만 하려고 하다가도 어쩌다 보면 엉뚱한 것까지 하고 몇 시간을 하게 될 수도 있어. 너도 처음엔 친구들 연락처 저장한다고 시작했는데 갑자기 엄마한테 이모티콘 세례를 하고 있잖아? 그래서 시간을 정해놓고 사용하는 게 필요해. 넌 어떻게 생각해?"
"음... 그렇긴 하네. 이거하고 있으니까 시간이 정말 금방 가. 심심하지는 않겠다."
"심심하지는 않지. 하지만 잘못하면 정말 시간만 낭비하는 수가 있어. 그걸 항상 조심해야 돼. 엄마가 여러 번 말했잖아."
"그럼 이제 어떻게 하면 돼?"
그렇지, 진작에 이렇게 나왔어야지.
이 엄마가 그럴 줄 알고 진작에 생각해 둔 것이 있지.
물건을 소유한다는 건 대개 보통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기쁨이다.
아이나 어른이나 특히 새것을 내 것으로 들일 때는 특히나 그런 것 같다.
그저 먼저 사용해 본 사람으로서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하는 어린이의 자세라든가 이를 대하는 적절한 태도 내지는 최소한의 규칙을 이쯤에서 슬쩍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내 눈에만) 한량없는 기쁨에 겨운 어린이 앞에서 바야흐로 내가 제안하는 대략적인 '적절한 스마트폰 사용법'을 전격 공개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