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스마트폰을 획득한 제 누나 앞에서 두 살 연하의 동생은 느닷없고도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했다.
"넌 2년 뒤에 살 수 있어."
나와 전혀 합의 보지도 않은 사항에 대해 누나는 동생에게 백지수표를 날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린이들의 기대와 예상일 뿐이었다.
딸은 스마트폰이 생기자 그것이 마르고 닳도록 들여다보고 작동해 보기 시작했다.
그토록 원하던 사진 찍는 일을 시작으로 동영상을 만들어 보고 딸보다 훨씬 이전에 스마트폰을 사용한 나도 모르는 오만가지들과 관련해 나를 일깨워줬다.
"엄마, 내가 보낸 거 봤어?"
시도 때도 없이 보내고, 고르고 고른 끝에 자신이 마음에 드는 이모티콘을 남발했다.
이를 묵묵히 지켜보던 우리 집 최연소자가 대뜸 말했다.
"누나, 나도 한번 봐 보자."
몇 년을 바라 마지않았던 물건을 획득하게 된 딸은 세상 가장 너그러운 누나가 되었다.
"자, 대신 조금만 써. 조심해."
행여라도 소중하고 아까운 그 물건이 어떻게 되기라도 할까 봐 딸은 제 동생에게 신신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엄마, 그거 봤어?"
이젠 아들 차례였다.
제 누나가 한 것을 그대로 ctrl+c 하여 ctrl+v 하기 시작했다.
"엄마, 이건 내가 보낸 거야. 이것도 내가 보낸 거고, 이것도..."
내게 보낸 내용의 대다수는 '엄마, 사랑해요.'라는 문구라든가 크고 작은 요란한 하트가 요동치는 그런 종류의 그림이었다.
솔직히 보내도 그만 안 보내도 그만인 그런 것 말이다.
물론 그런 것을 받는 게 시시하다거나 식상하다거나 하다는 말은 아니다. 평소에 스마트폰을 통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자신들의 마음을 엄마에게 표현하는 남매였으므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말이다.
물론 신기방기한 그 스마트폰으로 뭐라도 하고 싶고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은 의무감에 저리 부산을 떠는 것이려니 이해는 했지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 하지 않았던가.
나의 일상은 달라진 게 없는데 남매의 일상은 살짝 달라진 듯 보였다.
한창 신이 나서 요리조리 스마트폰을 뜯어보고 있는 동생에게 누나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이제 그만해. 얼른 줘!"
물론 순순히 그것을 넘겨줄 동생이 아니다.
"나 조금밖에 못 했는데?"
"그 정도면 됐어. 이제 내놔."
"누나, 조금만 더 하면 안 돼?"
"응, 안돼!"
"조금만 더 하자."
"그만해."
"누나는 아까 많이 했잖아."
"내 스마트폰이니까 그렇지."
소유권을 놓고 따지자면 아들은 확실히 불리한 입장이었다.
급기야 아들은 내게 달려왔다.
"엄마, 누나가 내가 조금밖에 안 했는데 주래."
하지만 나는 그 둘 사이에서 솔로몬이 되어 줄 수가 없었다.
"주인이 달라면 줘야지."
아들은 뜻밖의 내 대답에 실망한 눈치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내 간절히 물었다.
"엄마, 나도 이제 6학년 되면 스마트폰 사 줄 거지? 이제 2년만 있으면 되겠네."
갑자기 아들이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기 시작했다.
"하긴 엄마, 솔직히 누나가 6학년인데 진작에 스마트폰이 있었어야 했어. 6학년이면 스마트폰 쓸 나이지. 안 그래?"
아니, 안 그래.
얘 좀 보게나.
지금 이게 무슨 소린고?
어떻게든 자신도 6학년이 되면 스트폰을 쟁취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동시에 내게 미리 예고하는 셈이었다.(고 나는 느꼈다.)
"엄마, 누나도 6학년 때 스마트폰 사 줬으니까 나도 6학년 되면 사 줄 거지?"
아들이 속내를 드러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벌써부터 김칫국을 무한 리필해 드시고 있다.
이런 걸 고급 전문 용어로 '꿈도 야무지다.'라고 한다지 아마?
이 말 저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원칙만을 말했다.
"우리 아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네. 누나가 6학년이 돼서 스마트폰을 사 준 게 아니야. 학교에서 스마트폰으로 수업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수업용'으로 사 준 거야. 알잖아? 학교에서 안 쓰면 살 필요도 없었지. 그동안 안 산 이유도 그거였잖아. 중요한 건 6학년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라 너희한테 그게 필요한가 아닌가야.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