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에
< 사진 임자 = 글임자 >
"어차피 스마트폰은 학교에서 수업하는 위주로 쓸 거고 넌 일단 집에서 하루에 30분 정도만 쓸 예정인데 학교 갔다 온 후엔 스마트폰을 어떻게 해야 할까?"
이것도 나와 딸에게는 중요하고도 급한 문제였다.
굳이 하루 종일 그 요망한 것을 끼고 살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도 아니 되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견물생심이라잖아. 그게 옆에 있으면 자꾸 하고 싶고 보고 싶을 거야. 차라리 눈에 안 보이는 곳에 두면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그럼 어디 한 군데를 정해서 거기다 둘까?"
기특하게도 딸은 나의 제안에 별 저항이 없었다. 게다가 자신의 의견도 제시했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내가 은근슬쩍 바라 마지않았던 것은.
"최대한 너랑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디가 좋을까?"
"글쎄."
"아무튼 네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정하는 게 좋겠어. 아무래도 네 방에 두면 신경 쓰이겠지? 아예 다른 곳에 둬야 차라리 더 나을 것도 같은데 어때?"
"그렇겠네. 그럼 거실에 둘까?"
그때였다.
어디에서부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도 모르게 잠자코 있던 그 양반이 불쑥 나섰다.
"그럼 저기 오디오 있는 데 거기에 두면 되겠다."
과연 그럴싸했다.
딸의 방에서 나오면 바로 눈에 보이고 (그럴 리는 거의 없겠지만)만에 하나 누군가가 딸에게 전화라도 하면 얼른 달려올 수 있는 괜찮은 거리 같아 보였다.
자세한 속사정을 모르는 이는 왜 스마트폰을 사주고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처음부터 그 용도가 학교 수업용이었으므로 최대한 그에 걸맞게 사용하게 하고 싶었다. 최소한, 적어도, 처음에는 말이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런 나의 당찬 계획(혹은 세상 물정도 모르는 소리일지도 모르지만)은 초심을 을 잃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자연스레 딸도 얼렁뚱땅 그 물건을 챙겨가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단 우리는 원칙대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진짜 여기 괜찮다 아빠. 그럼 앞으로 여기에 둘게요."
딸은 당장 자신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와서 '스마트폰 지정석'에 안착시켰다.
"정말이네. 너랑도 제일 가깝고. 괜찮다. 그럼 앞으로 네 스마트폰은 여기에 두자."
오래간만에 맹활약(얼마나 평소에 활약을 안 하셨으면 이 정도 가지고 맹활약이라고까지 내가 느꼈는지 참...)을 하신 그 양반의 탁월한 선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우리 집 멤버 넷이 모두 지켜보는 보는 가운데 딸의 그것은 제 자리를 찾아갔다.
사실 내가 처음에 스마트폰을 정해진 장소에 두고 필요한 시간에만 가져다 쓰도록 하는 그 (어쩌면 나의 일방적이고도 치밀한) 계획에 딸이 반발할지도 모른다고 살짝 생각하기도 했었다.
"엄마, 이게 내 스마트폰이지 우리 집 거실 스마트폰이야? 무슨 공중전화야? 왜 내 방에 안 두고 거실에 두라는 거야? 사주기만 하고 사용하지도 못하게 할 거면 도대체 왜 사 준 거야? 거실에 모셔 두려고 사 준 거야? 차라리 사 주지나 말지. 사 주고 갖고 있지도 못하게 할 거라면 뭐 하러 샀어? 도대체 나한테 스마트폰을 사 준 이유가 뭐야? 사 준 생색만 내겠다는 거야 뭐야? 너무 하는 거 아니야? 사 줬으면 그만이지. 이제 내 것인데 내가 알아서 쓸 건데 왜 그런 것까지 다 간섭을 하는 거야? 이럴 거면 그냥 스마트폰 없이 사는 게 낫겠어. 이게 뭐야? 스마트폰이 있어도 있는 게 아니잖아?"
라며 딸은 당돌하게 따지지도 않았다, 물론.
휴, 안심이다.
아직은 내 말이 먹히고 있군, 언제 돌발행동을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성공적이야.
"그래, 합격아. 우리 딸이 그렇게 찬성해 주니까 고마워. 엄마가 괜히 그러는 거 아닌 거 알지? 전에도 말했잖아. 아무래도 옆에 있으면 그게 자꾸 신경 쓰이고 한번 보고 싶고 그냥 잠깐만 보고 그만두려고 해도 그게 말처럼 쉽게 안되거든. 어른들도 그게 정말 힘들어. 엄마도 어쩔 땐 힘들어. 무슨 말인지 알지? 일단은 그렇게 사용해 보고 나중에 다시 또 생각해 보든지 하자."
나는 (물론 내 생각에만) 최대한 자애로운 태도로 딸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
"알지. 나는 괜찮아. 스마트폰 사 준 것만 해도 어디야? 엄마, 아빠. 스마트폰 사 줘서 고마워요."
딸은 의외로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물건을 마음대로 쓰려고 억지 부리지 않고 그저 그토록 갖고 싶었던 신문물을 쟁취하게 된 것에 대한 최종 결과에서 기쁨을 찾고 만족할 줄을 알다니!
아직은 어리군, 아직은 순진한 편이야.
순조로웠다,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