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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빠,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70 평생 첫 대기

by 글임자
2025. 6. 19.

< 사진 임자 = 글임자 >


"이걸 진짜 아버님이 사셨다고?"

"응."

"에이, 거짓말하지 마!"

"진짜라니까."

"아버님이 이걸?"

"그럼 내가 샀을까?"

"하긴 당신은 살 사람이 아니긴 하지."


이 속보를 그 양반에게 전달하려고 하루 종일 얼마나 퇴근 시간을 기다려 왔던가.

물론, 그 양반을 기다렸다기보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 가족 중 누가 듣더라도 믿기 힘든 그 뉴스를 어서 빨리 들려주고 싶은 대상을 기다렸을 뿐이었음을 분명하게 밝히는 바이다.


"이거 애기들 줘라."

"이게 뭐야?"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더라."

"뭐? 이걸 아빠가 샀다고?"

"먹어 봐라. 진짜 맛이 있는가 없는가."

"그럼 아빠도 줄 서서 기다렸어?"

"내가 갔을 때는 사람 몇 명 없더라."

"이런 걸 뭐 하러 사?"

"애기들 먹으라고."

"아까 보니까 줄 많이 서 있던데?"

"내가 갔을 때는 기다리는 사람 별로 없어서 금방 샀다."

"진짜 이걸 아빠가 샀다고?"

"애기들 갖다 줘."

"뭐야, 딸기잼도 샀어?"

"같이 먹으라고."

아빠는 멋쩍게 웃으시며 그것을 차 어디에 줄지 두리번거리셨다.

정말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우리 아빠가?

내일모레 팔순이 다 되어가는 할아버지가?

맛집은 무슨 맛집이냐고 그런 데 뭐 하러 가서 몇 시간씩 기다려서 먹고 오냐고 이해 안 된다는 분이?

그런 데 별 거 없다고, 줄 서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분이?

이건 우리 아빠 스타일이 아니다.

아니, 아빠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그동안 믿어왔던 내 신념이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아빠는 어쩌면 그런 사람일지도, 그런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저기는 뭐 하는 덴데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줄 서있냐?"

"나도 몰라."

부모님 병원을 모시고 가다가 처음 본 풍경에 두 분은 적잖이 어리둥절해하셨다.

한 달 정도 전이었던가?

웬 젊은이들(내 눈에는 온통 젊은이들뿐이었다.)이 수 십 명 길에 줄을 서 있었다.

무슨 줄인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몇 번 지나갈 때마다 기다란 줄을 보고 뭔가 있긴 있나 보다 싶었다.

처음엔 그저 은행에 일을 보런 온 사람들인 줄 알았다.

바로 은행 앞까지 줄이 이어져 있었으니까.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나지만 무슨 청년 특별 적금이나 뭔가 그런 비슷한 걸 신청하러 온 사람들인가 했다.

마침 다들 어리고 젊어 보였으므로.

알고 보니 최근에 그곳에 빵집이 문을 열었다는 거다.

빵집이라고?

식빵계의 뭐라나?

나는 맛집 같은 것에 집착하지 않는 성격이고, 음식 맛을 잘 아는 것도 아니고 맛이 있는지 없는지 어차피 주관적인 건데 저렇게까지 줄을 설 만한 그런 대단한 것인가 싶었다.

나날이 줄은 더 길어졌고 그 집 빵이 그렇게 맛있더라고 사방팔방에서 소문이 들려왔다.

"거기 새로 생긴 데 말이야. 사람들이 맛이 있긴 있대. 뭔가 다르대."

"금을 넣었나? 가격도 좀 있다며?"

"몰라. 암튼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그래? 맛있나 보네."

그 맛있다는 빵은 먼 나라 이웃나라 일이라고만 여겼다.

그런데 아빠가 체험 기회를 주신 거다. 생각도 못했는데 느닷없이 말이다.

만약에 줄을 서서 대기하더라도 그 주인공은 그 양반이나 내가 될 것이었지 적어도 친정 아빠는 아니었다.(고 자신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이 음식 맛을 따져가며 먹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므로 반드시 그 빵을 먹어보고야 말겠다는 그런 의지 같은 것도 없었다.

그런데 아빠가 줄까지 서서 기다렸다가 그것을 사 준 것이다.

생각할수록 별일이 다 있다는 마음이었다.

"뭐 별 것 있다고 저렇게 줄까지 서 있다냐?"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혀를 끌끌 차시던 분 아니었던가 말이다.

그런데 딸도 모르게 조용히 다녀오셨다.

백발의 할아버지가 젊은이들 사이에 어색하게(내가 알기로 아빠는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으시다.)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외손주들에게 사 주겠다는 그 마음 하나로 말이다.

생각할수록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났다.

"빵이 맛이 있긴 하다. 확실히 더 부드럽네."

"진짜 그렇긴 하네, 아빠."

아빠와 사이좋게 한 조각씩 맛을 봤다.


"얘들아, 너희 먹으라고 외할아버지가 '줄 서서' 사 오신 거야. 잘 먹었다고 전화드려야지."

아들에게 우리 가족 대표로 전화를 걸게 했다.

외손자로서 기본 도리는 해야 하는 거다.

"할아버지, 사 주신 빵 맛있게 잘 먹었어요. 진짜 맛있었어요. 누나도 맛있대요. 고맙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아빠의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외손자와은 외할아버지의 통화는 한참 이어졌다.


우리 아빠, 다음에 또 대기표 뽑고 기다리시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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