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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 좀 보게나? 내가 왜 네 언니야?

우리가 그런 사이는 아니잖아

by 글임자
2025. 10. 8.

<사진 임자 = 글임자 >


"언니, 언니!"


그녀가 또 나를 부른다.

나는 여동생이 없다.

오빠만 둘, 남동생 하나, 그런데 그녀는 자꾸 나를 '언니'라고 부른다.

그녀는 바로 내 남동생의 아내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나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남동생의 아내가 나를 언니라고 부를 거라고는 말이다.

내가 시가에 가서 시누이들에게 큰 형님, 작은 형님이라고 부르듯, 나는 미래의 그녀도 나를 그렇게 부를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사전을 찾아봐도 그렇게 나와있었다.

그런데 처음 나를 만난 날부터 그녀는 나를 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일관되게 그 호칭으로 밀고 나가신다.

결혼 전에는, 그러니까 남동생과 사귀는 중에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사이이니 남의 집 언니로 불리는 건 그런가 보다 했다.

그래, 호칭 따위가 뭐가 중요해?

아직 결혼한 것도 아닌데, 결혼하고 차차 바꿔도 되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혼 후에도 나는 계속 그녀의 '언니'다.

갑자기 언니라고 부르다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할 수도 있지. 아무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익숙해지겠지, 뭐든 처음엔 낯설 수 있으니까.

그러나, 결혼하고 한참이 지나도 나는 그녀의 언니였다.

뭐, 그럴 수도 있지.

몇 년 간 부르던 호칭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게 쉽지 않겠지.

그리고 내가 '형님'으로 불리고 싶어 안달 난 사람도 아니고 말이야.

조카가 태어났다.

이젠 슬슬 호칭을 바꾸겠지.

그동안 실컷 언니라고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불러줬으니, 이젠 좀 다른 호칭을 사용할 테지.

또 그러나, 조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금까지도 나는 그녀의 언니로 남아있다.

듣기 싫은 호칭도 아니거니와 시누이에게 언니라고 한다고 해서 세계 평화가 깨진다거나 세계 경제가 휘청인다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우리 부모님도 그에 대해

"막내며느리는 시누이한테 호칭을 왜 그렇게 쓰느냐? 친언니도 아니고 엄연한 남인데 어떻게 네 언니가 될 수 있단 말이냐? 남편의 손위 시누이는 '형님'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라는 말씀 같은 건 두 분 다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어떤 이들은 사람 사이의 호칭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기도 하는 것 같더라마는, 제대로 된 호칭이 아니면 불편한 기색을 보이기도 하지만 , 나에게 중요한 건 그녀가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지, 아니면 '형님'이라고 부르는지가 아니다, 물론. 내가 호칭에 그렇게 예민한 것도 아니다.

내게 중요한 건 그저 그녀가 남동생과 잘 사는 것(물론 그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뭐라 정의할 하기 힘들고 묘연하지만 말이다.) 그뿐이다.

처음엔 언니라고 부르는 그녀가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이젠 너무 익숙해져 아무렇지도 않다.

"어마? 얘 좀 봐? 내가 어떻게 네 언니야? 난 네 형님이라고, 형님! 아무리 네가 언니가 없고 아무리 내가 여동생이 없어도 이건 아니지! 난 절대 네 언니가 될 수 없어!"

라는 시누이짓 같은 건(너무 호칭에 얽매이는 건 그런 짓처럼 보였다, 내 생각에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물론.

하긴, 나를 오빠라고 부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래, 언니 없고, 여동생 없는 사람끼리 서로 언니 동생하자. 난 널 친여동생으로 생각해. 동생, 편히 대해. "

라고 내가 말하거나,

"언니, 전 언니를 제 친언니처럼 생각해요."

라는 말 같은 건 서로 결코 하지 않았다.

이건 흡사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나는 너를 내 딸처럼 생각한다."

라거나,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어머님, 전 어머님을 친정 엄마처럼 생각해요."

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말만큼이나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그녀는 나를 언니라고 부르고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른다.(그렇다고 함부로 막 이름을 부른다거나 하지도 않는다.) 종종 '한여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도 '올케'라는 말이 안 나왔다, 희한하게도.


"내 동서는 형님들한테 '언니'라고 하더라. 난 시누이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 처음 봤어."

얼마 전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진짜? 우리 집에도 한 명 있어. 내 남동생 있잖아. OO도 나한테 그렇게 불러."

전생에 헤어진 동기를 만난 듯 우리는 느닷없이 반가웠다.

"근데 난 형님을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동서는 언니라고 하니까 뭐가 좀 안 맞는 것 같더라."

"그래? 다행히 난 시누이가 나 혼자라 신경 안 써. 언니라고 부르면 어떻고 형님이라고 부르면 어때? 지금까지 내 동생이랑 같이 잘 살아준 것만도 고맙지."

친구는 여전히 손위 시누이를 '언니'라고 부르는 그런 동서가 이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이제 와서 갑자기 그녀가 심경의 변화로 인해 정색을 하고 나에게 '형님'이라고 부른다면 그것도 많이 어색할 것 같다.

언니인듯, 언니아닌, 언니같은 시누이,

언니는 아니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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