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벽에 비유한다는 발상 자체가 신기하기도 했지만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처음엔 그 발언이 약간 충격적이었으나 다른 직원에게도 언젠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을 보고 생각했다.
우리가 벽이 아니라 당사자 스스로 벽을 자처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만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확신했다.
굳이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될 것임을.
나이 서른이 돼서 공무원이 되긴 했지만 내가 그 세계에 대해 사전에 배우고 간 것도 아니고, 업무를 미리 예습한 것도 아니었으며 직장인으로서의 사회생활이란 것을 교육받은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처음 공무원 세계에 들어가 본 것이라 당연히 많이 낯설고 사람 상대하는 것도(민원인을 포함해서 직원들과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려웠다.
차라리 철없는 스무 살이었다면 나도 생활하기가 더 편했을지 모를 일이다.
당시 서서히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알아가고 사귀는 편이고 처음 만나는 사람은 좀 어려워하는 편이라 사람들이 많이 오해를 하기도 한다. 대부분 그렇겠지만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얼굴들을 만나면 처음엔 어색하고 어려운 게 당연한 거 아닌가. 물론 처음부터 낯도 안 가리고 싹싹하게 사회생활 잘하는 요즘 젊은이들도 많이 보긴 했다마는.
태어나서 참 별 희한한 사람도 다 있다 싶은 인물을 드디어 면사무소에서 만났다.
나보고 말이 없네, 왜 얘기를 안 하냐는 둥, 사람들하고 좀 어울리라는 둥 혼자서만 나를 안타까워하던 직원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또 말이 많았다면 무슨 애가 그렇게 말이 많냐, 말 좀 줄여라 그런 소리나 안 들었을지 몰라.
그 사람에게 말은 직접 안 했지만 난 모든 사람들을 다 사귀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아무리 직장이라지만 모든 직원들을 다 사귈 필요도 없고 모든 이들과 친하게 지내야 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별로 나랑 안 맞는 사람들까지 굳이 가까이하며 지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이런 걸 절대 이해 못 하는 사람은 처음엔 내가 새로운 환경에 힘들어할까 봐 모르는 것을 가르쳐준다는 명분 하에 모든 일에 일일이 나서 주셨다. 시간이 차차 흐르자 그것은 사사건건 간섭이 되었다.
물론 처음엔 나도 고마웠다. 하나부터 열까지 먼저 나서서 이거는 이거다, 저거는 저거다 이렇게 밥을 다 떠먹여 주는 시늉까지 하는 직원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하지만 관심이 지나치면 역시나 간섭이 될 뿐이었다.
어쩌면 그 직원은 내가 본인이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주길 바랐던 것 같다.
그러더니 내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안 따라주니까 대놓고 핀잔을 주기 시작했고 내가 하는 별 것도 아닌 일에도 토를 달았다.
감사 때였다.
나는 그저 어렵기만 한데 감사하러 온 사람들에게 한다는 소리가
"쟤는 벽이야, 벽. 말을 해도 별 반응이 없어."
본인은 그렇다 쳐도 나를 처음 본 그 감사자한테 느닷없이 웬 벽 타령이람.
사람이 말만 많은 것은 정말 영양가 없다, 고 나는 생각한다.
할 소리 안 할 소리 다하고, 말이 많으면 실수도 있을 수 있다.
사람이 다 같을 수는 없는 법이다.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본인도 처음 면사무소에 왔을 땐 어려워하지 않았으려나? 아니면 처음부터 저렇게 세상 어려운 게 하나도 없었던 사람인 걸까.
"넌 왜 사람이 말이 없냐?"
할 말이 없는데 어쩌라고요?
"아침엔 같이 차도 마시고 얘기도 좀 하고 그래야지."
다른 사람들이랑은 해도,,, 별로 안 하고 싶은데요?
"그래가지고 어떻게 사회생활하려고 그래?"
적어도 함부로 남의 말하는 그런 식으로는 사회생활 안하리라.
"자꾸 어울려야 친해지지."
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없고, 무조건 어울리고 싶은 마음은 더군다나 없어요.
그때만 해도 옛날이라 그런가(설마 요즘도 그런 사람이 있을까?) 신규자 한 명 들어오면 어떻게든 어울리게 하려고 억지로라도 같이 차 마시고 없는 얘기 쥐어짜고(특히 초반에는 나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캐내버리고 말겠다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한 덩어리로 묶어 강제로라도 참여하게 했었다.
옛날 옛날 기원전 5,000년 전에나 하던 직장생활을 못 잊어서 저러시나?
전엔 다들 그런 식으로 직장생활을 했나 싶었다.
아마도 그런 영향도 있으리라.
그러니까 걸핏하면
'우리 때는 안 그랬다.'
이런 소리를 일삼는 거겠지.
그 당시 차가 없어서 나는 사무실 직원 차로 카풀을 좀 했었다.
같이 카풀하는 직원이
"쟤 나랑 있을 때 말 잘하는데?"
이렇게 대꾸한 적이 있다.
그때 그 직원 표정이 어땠더라?
말문이 턱 막히는 사람이 있고 말이 술술 나오는 사람이 있다.
그걸 모르는 것 같았다.
하다 하다 이젠
"남들 다 보는 영화를 너는 왜 안 본 거냐? 적어도 남들이 하는 건 다 해야지."
그럼,남들도 다한다는 직장내 하극상(?)나도 한 번 해줘야 하는 건가요?
"이 양반이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거 좀 적당히 좀 합시다. 내 일에 간섭 좀 그만 하라고요. 나한테 뭐가 그리 불만이유?! 왜 맨날 이래라 저래라 사사건건 트집이야?내가 영화를 보든 영화를 찍든 무슨 상관이셔?제발 신경 좀 꺼 주시지!"
라고는 한마디도 못했다 물론,그때의 나는.
나중엔 내 헤어스타일 가지고도 걸고넘어졌다.
당사자는 기억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생생하다.
내 부모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단지 한 직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일 뿐인데 그렇게까지 내가 시달려야 할 이유도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오지랖이 넓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텐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도 빠듯한 신규자에게는 예민한 문제였다.
세상 살아보니 진짜 별의별 사람이 다 있는데 그 정도는 그냥 눈 질끈 감아줄 수도 있었겠다 싶다.
하지만 나는 남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사람은 신뢰하지 않고 잘 상대하지 않는다 이젠. 그리고 남에 대해 쉽게 판단하고 얘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특히 직접 겪어 보지 않고 남의 말만 듣고 누군가를 판단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은 더더군다나.
내 업무에도 본인 일처럼 다 나서서 간섭하고 본인이 민원인에게 나서는, 그런 모든 일들이 나를 생각해서 그랬던 거였을까?
의도는 좋았을지 몰라도 방법은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느꼈다.
물론 그때는 그 앞에서 한 마디도 못했지만 다른 직원들도 나와 비슷하게 느낀다는 걸을 알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그들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은 이미 단련된 사람들이고 나는 초보일 뿐이었단 점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안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친절은 결코 친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친절도 상대가 원할 때라야 빛을 발하는 것이지, 상대방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일방적으로 베풀고자 하는 친절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욕심일 뿐이다.
다른 욕심도 별로 없지만 그런 욕심은, 남을 힘들게 할 수도 있는 그런 욕심만은 절대 부리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