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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07. 2023

점심 먹는 것까지만 하고 싶었는데요.

기나긴 직원과의 수다시간

22. 12. 19. 항상 같이 어울릴 필요까지야

< 사진 임자 = 글임자 >


"점심은 도시락 싸 오면 돼. 여기서 밥은 하면 되고 반찬만 간단히 챙겨 와. 우리끼리 사무실에서 같이 먹게."


직장인이면 무조건 점심은 나가서 사 먹는 것으로만 여겼지 나는 직장에 도시락을 싸들고 가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왜 그때는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만 생각했나 모르겠다.


그러니까 면사무소로 출근을 하게 되면서부터 나는 또다시 도시락을 싸야만 했다.

그곳에서 함께 근무하는 여직원들은 모두 그렇게 점심을 모여서 먹는다는 것이다.

나를 포함해서 여직원이 4명, 같은 복지계 남직원 1명 보통은 5명이 함께 점심을 먹었다. 가끔씩 특별한 메뉴가 있다거나 계장님들이 모두 따로 점심 드시러 나가거나 할 때는 나머지 직원들을 다 초대해서(그래봐야 한 두 명 더 추가되는 셈이다.) 같이 점심을 먹기도 한다.

나가서 먹으려다가도 발길을 돌리고 사무실에서 먹겠다고 찾아오는 이도 있었다.


변변한 직장 생활 한 번 못해 본 나는 면사무소에 부엌(엄밀히는 '탕비실'이라고들 했는데)이 있다는 자체도 신기했을뿐더러 거기서 직접 밥을 해 먹는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면사무소 일은 민원실 일 말고는 다른 일은 전혀 없는 줄로만 착각했던 것만큼이나 세상 물정도 모르는 세월이었다.

생각해 보니 나를 제외한 나머지 여직원 세 분 다 기혼자였다.

어쩌다가 그렇게 점심을 해결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집에 있는 반찬들로 한 두 가지만 챙겨 와도 서로 나눠 먹을 수 있으니 매일 점심 메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어차피 내가 점심 메뉴를 고르는 선택권 같은 것은 가지지 못할 것이었겠지만) 썩 괜찮은 생각이라고 처음엔 쾌재를 불렀다.

매일 점심 메뉴를 고른다는 것은 뭐랄까, '공무원 1 제안하기'보다 더 머리 아픈 일이다.

게다가 높으신 분들이 한 명도 없으니 일단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내가 가장 어리고 최하위직이었으므로 그 자리가 어려워야 했던 것만은 분명하지만 말이다.

그런 자라란 게 마냥 편할 수만은 없는 게 당연하다.

신규자에게 밀폐된 공간에서 낯선 직원들과의 점심시간 한 시간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짐작도 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쉽게 탈퇴할 수도 없는 곳이었으니까.


점심만 먹고 각자 헤어져서 편하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쉬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으련만(속도 없이 점심을 먹고 난 후에는 독서를 하겠다고 책을 챙겨가기도 했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내 바람일 뿐 밥을 먹고 난 후에는 본격적으로 매일같이 나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녀들의 호기심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 없었다.

무차별적인 질문 공세에 답변해야 했고 싫어도 같이 앉아 있어야 했고, 말하고 싶지 않아도 뭔가 말을 해야만 했다. 말을 하라고 강요당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하지만 이제 발령받아 온 사람이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뭐라고 수다를 떨어야 할지 어떤 화제로 그 분위기에 맞춰야 하는지 나는 전혀 몰랐다. 일단 말이 너무 많은 것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밥을 먹고 나서도 나는 붙잡혀 있었다.

나머지 직원들끼리는 함께 근무한 지가 좀 됐으니까, 게다가 기혼자였으니까 공통 화제도 있었을 것이고 짧게는 몇 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 공직생활을 해 온 사람들이니 그 안에서 또 할 얘기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는 별로 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함께 먹는 그 밥도 편히 넘어가지 않았다.

아무 맛도 모르고 그저 배만 채운 점심시간이었다.


설거지는 돌아가면서 했던가?

가능하면 그들의 대화에 별로 끼고 싶지 않아 그릇을 오래 헹구었다.

그러면서 '또 반나절이 이렇게 갔구나.' 느끼는 것이다.

그저 혼자 있을 수 있다면 매일 내가 설거지 당번을 하겠다고 나서고 싶을 지경이었다.


"요즘 애들은 도시락은 집에서 싸 오고 커피는 나가서 사 먹고 그렇게 점심시간 보낸단다."

같이 근무했던 직원에게서 저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과연 요즘 젊은 애들답다고 생각하면서 불현듯 내 신규자 시절이 떠오르는 것이다.


한참 시간이 지나고 여기저기 발령을 받으면서 나도 어느덧 점심시간을 세상 온갖 수다의 시간으로 즐기게 되는 날이 오기도 했다.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그때의 점심시간은 어떤 의미였나.

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있는 지금 새삼스럽게 그날의 어둑한 탕비실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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