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무원 발령을 받고 근무하게 된 면사무소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맨 처음엔 복지계로 배치됐으므로) 매달 기초연금 대상자 자료 모으는 것도 아니었고, 경로당 관리도 아니었고, 장애인 등급 산정도 아니었다.
바로 그것은 같은 사무실 안에서의 직원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었다.
아무리 모르는 것 투성이인 신규자라지만 다짜고짜 남의 나이는 알아서 뭐 하시려고 그러는지.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 보니 업무 인수인계보다도 가장 시급한 게 서열(?) 정리였던 것 같다.
"서른인데요."
"서른이나 됐어? 보기보다 많이 먹었네. 좀 늦게 들어왔네."
이어 결혼은 했는지, 아직 미혼이라면 남자친구는 있는지 질문들이 줄줄 딸려 나온다.
줄줄이 딸려서 신나는 건 줄줄이 비엔나소시지만이 아니다.
반나절도 안되어 나는 '임자씨'에서 '임자'가 되었다.
나보다 몇 살이 더 많았는지 아직도 정확히는 모른다.
그 언니는, 날 보자마자 자기더러
"난 언니라고 부르면 돼, 내가 나이가 더 많으니까. 여긴 OO 언니라고 부르면 되고."
아마 5살 이상은 많았을 거라 짐작을 했다. 어쩌면 10년 가까이도.
처음엔 도저히 그 언니란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언니라기보다 이모 또래 정도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생처음 만난 사이가 아니던가.
어려워도 너무나 어려웠다.
물론 내가 사람 잘못 봤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막 발령을 받아 신규자로 온 지방행정서기보 시보는 하라는 대로 그냥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다 맞는 소리겠거니 하면서 내 의지란 것도 없었다.
'넌 오늘 공무원으로 임용된 첫날이고, 시보 기간은 6개월이야. 시보는 일단 떼야 해.'
솔직히 시보 시절에 큰 사고만 안 치면 별 탈 없이 누구나 정년보장되는 공무원으로 사는 것인데, 시보 때에는 신분을 완전히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옆에서 괜히 겁을 줬기 때문에, 행정학 공부를 할 때도 배운 기억이 났으므로 순진한 서른 살의 신규자는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만 하고 살았다.
약간은 짓궂게 나를 놀리느라 은근히 겁을 주며 농담을 했었는데 나는 그 시절 너무나 진지하기만 했었다.
"네, 알겠습니다. 언니."
나에게 가장 적극적이었고, 가장 관심이 많아 보였으며, 불만 또한 가장 많아 보였고, 가장 나를 가르치려 들었던 언니다.
내 느낌이다.
그 언니가 소개해 준 옆의 다른 언니는 '정말 언니 느낌'이 나는 세 살 많은 언니였으므로 스스럼없이 바로 언니라고 부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엄연한 직장인데 언니라고 불러도 되나?'
싶었다.
적극 언니는 다른 사람들을 본인이 이렇다 저렇다 소개해 주면서 또 다른 분 앞에서는
"이 언닌 언니라고 부르면 안 돼. 우리 중에선 왕 언니이긴 한데, 곧 계장님 되실 거니까."
본인은 언니라고 부르면서 내게는 그러지 말라며 애초에 차단해 버렸으나 그럴 만도 했다.
그렇게 말 안 해도 도저히 언니라고 부를 수 없는 분위기이다.
나이도 어느 정도 엇비슷해야 언니란 호칭도 어울리는 거라 난 생각해 왔다.
10년도 넘게 차이가 나는 분에게 언니라고 부른다는 건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 당시만 해도.
게다가 그 적극 언니가 그분을 언니라고 부르는데 내게는 더 멀게만 느껴졌을 수밖에.
그런데 민원인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분을
'A 여사'라고 부르시는 것이었다.
그것도 전혀 허물없이.
그러나 나는 결코 그분을 '여사님'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워낙에 서글서글하고 붙임성도 좋으신 분(게다가 어찌나 유머러스하신지 그분을 떠올릴 때면 나는 웃음부터 지어진다.)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민원인들에 인기 만점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다수의 저 직원들은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 한단 말인가.
"그냥 주사님이라고 부르면 돼."
다행히 서른 살의 내가 그 사무실에서는 가장 어렸다.
신규자가 그나마 가장 어려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이장님들은 나를 'O 주사'라고 불렀다.
처음엔 그런 용어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기도 했거니와 남들도 다른 직원을 그렇게 부르니까 따라서 별생각 없이 했는데, 누군가가 나보고 그렇게 부르는 걸 보시고
하루는 면장님이
"어제 발령받아서 벌써 주사됐어? 승진 빠르네."
이러시는 거다.
알아야 면장을 하지.
당시 난 주사가 어느 정도 위치인지도 몰랐다.
역시 면장님은 잘 아시니까 지금 면장님이 되신 거였어.
자격이 충분해.
난 몰라서 면장 할 일도 없겠구나.
다 같이 '주사님'으로 통일을 해서, 부르라고 일방적으로 지시받고 나는 고분고분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장님들도 허물없이 내 이름을 부르셨다.
참, '색시'도 있었구나.
첫 출근 날 웬 할머니께서 내 손을 잡고 민원 대기용 소파로 이끄시더니,
"색시, 결혼은 했어? 우리 아들이 있는데 한 번 만나 봐. 아직 장가를 못 갔는데 애는 착해. 집에 트랙터도 있어."
이러시는데, 색시는 저~~~ 엉~~ 말 아니었다.
미혼인 신분이란 걸 알고 아들 둔 어른들은 한 번씩은 저렇게 색시를 자꾸 찾으셨다.
육아휴직을 하고 작년에 복직을 했더니 그 사이에 '계'는 온 데 간데없고 '팀'으로 다 바뀌었다.
그 명칭이 입에 설은 나는 혼자서만 여전히 계장님을 찾았다.
그래도 든든한 언니들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직장에서의 호칭 문제는 예민할 수도 있고 조금 껄끄러울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