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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08. 2023

헤어질 수 없는 사이

직장인과 억지 회식,헤어질 때도 되지 않았나요?

22. 11. 10. 이렇게나 건전한 회식문화

<사진 임자 = 글임자 >


'9시도 넘었는데 집에 안 가고 뭐 해?'

'회식인데 어떻게 빠져?'

'무슨 회식을 9시까지 해? 집에는 어떻게 가려고?'

'나도 몰라. 다들 갈 생각을 안 해.'


감히 회식에 빠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고(명목상으로는 신규자인 나를 환영하는 회식자리였으므로) 2차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자리는 공무원법에 의무사항으로라도 명시되어 있는지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모두 대동단결했다.

남자 친구는 해가 떨어진 지가 언젠데 여태 집에 안 들어가고 술타령이냐며 문자로 나를 단속하기 시작했다.


첫 출근 날 점심에 전 직원이 밥을 같이 먹으며 '낮 회식'을 했고 바로 며칠 후에 퇴근 후 또 회식을 했다.

회식이면 간단히 밥만 먹고 얼른 집에 가야 하는 거 아닌가.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또 놀고(10년도 전에는 그랬었다.) 눈치만 계속 보다가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억지춘향이는 마냥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

내가 밤늦도록 술이나 마시고 놀자고, 노래방에서 부르지도 못하는 노래, 흥도 안 나는 노래, 남이 시켜서 억지로 부르는 음도 안 맞는 노래나 몇 곡 부르자고 그 시험을 봤던가. 노래 부르고 싶은 사람이나 실컷 부르라지, 싫다는 사람한테 왜 자꾸 또 노래는 시키는가.

환영회라면 환영인사 한마디로도 족했다.


태생이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노래방 가서 신나게 분위기 맞춰주고 띄워주는 그런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라서 괴로운 회식자리, 난 정말 거기가 그런 자리인 줄 몰랐다. 알았다고 한들 빠질 수나 있는 자리던가.

지금은 그런 문화가 다소 사라진듯하지만(사라지기는 커녕 더한 것도 같다.) 그때만 해도 억지로 술을 강요하는 문화가 매우 강했다.(적어도 내가 경험한 그곳에서는 말이다. 정말 깜짝 놀랐다.)

"한 반 받아."

"저 술 못 마시는데요."

"못 마시는 게 어딨어? 마시면 마시는 거지."

못 마시는 거 여기 있어요.

"저 정말 못 마셔요."

내가 못 마시겠다는데 웬 토를 그렇게 많이 다시나?

"사회생활하려면 술도 마실 줄 알고 그래야지."

사회생활은 술로 하나 보죠?

"못 마신다고 무조건 빼면 안 돼."

빼는 게 아니라 못 마신다는 사실을 알려드리는 것뿐이에요.

"누군 처음부터 술 잘 마셨는 줄 알아?"

왠지 처음부터 술을 잘 잡수었을 것 같아요.

"원래 처음엔 그런 거야. 자꾸 마시면 습관 돼서 괜찮아."

처음에 그러든 마지막에 그러든 그런 건 전 관심 없고 안 마시고 싶다고요. 습관 들이는 일을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아요.


그때 나는 큰 소리로 외쳤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건 니 생각이고!"

그렇게 술이 좋으면 내 몫까지 다 잡수시지 그러셨어요?

그리고 왜 본인이 마시던 술잔에 도로 술을 따라 나한테 주는 건데?

내가 그 입 닿은 방향 피해서 요령껏 마시느라 얼마나 힘들었다고..

"비위생적이야! 불결해! 미개인들같아!"

라고는 입도 뻥끗 하지 못했다, 물론.


대학 다닐 때도 맥주 한 잔이면 배가 불러  못 마시고,  어쩌다가 과모임 술자리에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나에게 권하는 선배를 나는 경멸했었다.

맥주나 겨우 마시는 사람한테 '소맥'이라니. 이 술 권하는 사회가 사람 여럿 못쓰게 만들었다.

우리에겐 누구나 술을 마시지 않을 권리가 있다.

첫 발령지이고 첫 회식이었으니 나는 얼떨떨한 정신에 술맛도 모르고 직원들이 건네는 대로 홀짝홀짝 받아 마시기 시작했다.

그 말이 맞았다.

마시면 먹게 된다.

하지만 그 뒷입맛이 개운치 않아 나는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체질적으로 술을 잘 받는(?) 몸도 아니었다.

지금도 술 마시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맛없는 걸 왜 마시나?

차라리 오렌지 주스나 우유를 따로 시켜서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회식 때마다 저런 생각을 품고 막무가내로 술을 권하는 사람들에게

"이 사람이 술이 취했나? 왜 싫다는데도 억지로 먹이려고 난리야?"

라고 한마디 반항도 못해보고  눈을 흘기면서도 받아 마실 수밖에 없었던 신규자, 그 약한 자의 슬픔...


군내버스는 막차가 저녁 9시면 끊겼다.

나는 차도 없었으니 이젠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직원들과 함께 단체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출근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카풀을 시작했었다.

물론 내 의지라곤 없었고, 면장님이 지시했고 나는 따랐을 뿐이다.

나는 그렇다 치고 다들 결혼한 언니들은 이렇게 늦게까지 술 마시고 집에 안 들어가도 되나?

쓸데없는 남의 가정사를 걱정하며 지루한 회식자리에서 어서 빨리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남편이 이번 주에 새 근무지로 출근을 했는데 벌써 두 번이나 회식을 했다.

회식하기 위해 발령을 받은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이렇게 사람을 격하게 환영해도 되는 것인가?

일주일에 회식 두 번은 불법 아닌가?

"앞으로 힘들 것 같아. 다들 술을 너무 좋아해."

나만큼이나 술자리를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출근 일주일 만에 절망스러운 예언을 했다.


무엇보다도 환영회 하고 송별회 한다고 쓸데없는 술자리 만드는 그런 문화나 법으로 막아버렸으면 좋겠다, 고 가당치도 않은 바람을 가져본다.

누가 그랬더라?

코로나 덕분에 회식은 안 하니까 그건 정말 좋다고 웃음꽃이 피던 이가 있었는데.

얼마나 더 흉흉한 역병이 창궐해야 이 회식자리가 없어지려나.

콩나물시루나 장만해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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