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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Jan 18. 2023

그 남자의 아침은 당신의 아침보다 호들갑스럽다.

미운 마흔 살의 출장길

23. 1. 17. 봄은 오고 있는데...

< 사진 임자  = 글임자 >


"나 출장 있는 날은 자기도 신경 좀 써 줘."

"알람을 잘해놨어야지."

"했는데 내가 잠결에 꺼버린 것 같아."

"여러 개 해 놔. 나도 못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그래도 그때 자기가 깨워줘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내가 언제까지 평생 깨워줄 수는 없잖아. 스스로 해아지."


대화 후반부로 갈수록 이건 부부간의 대화라기보다 엄마와 늦잠 잔 철부지 자녀와의 그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언제까지고, 평~생 누군가를 뒷바라지하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치도 없는 내 마음은 언제나 진심이었다.

그리고 상대는 이를 쉽사리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일찍 가야 한다며?"

"어? 지금 몇 시야?"

"7시 20분."

"뭐? 나 좀 깨워 달라니까. 늦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출발이 뭔가 순조롭지 않아 보였다.

그때가 막 7시가 넘은 시각이었고 'Start English'가 시작되고 있었다.

충격요법이 필요했다.

현재 시각을 20분 정도 당겨서 통보해 주는 것은 뭐랄까,

일종의 괴상망측한 나만의 코리안 타임이라고나 할까?

내가 종종 가족들에게 써먹는 수법이다.

우리 집 시계는 정시간보다  언제나 10분 먼저 돌아간다.


몇 년 전 을지훈련이 있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도 남편은 늑장을 부리다가 결국 지각을 하고 말았다.

가장 늦게 출근해서 얼마나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렸는지를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도 구구절절 늘어놓았었다.

뭔가 '다른' 일정이 있는 날에는 신경을 좀 쓰라고 미리 준비하라고 그렇게도 단단히 일렀건만 여전히 내 마음 같지 않은 어려운 사람이다.


"오늘 내가 제일 늦었어. 8시 30분까지는 도착했어야 했는데 말이야. 내가 미리 준비 다 해야 하는데 늦었다니까."

월요일 저녁에 퇴근해서 남편은 마치 학교에서 무슨 우수상이라도 받아 온 학생마냥 지은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날의 민폐 또는 무용담에 대해 늘어놓았다.

아침에 지각할 것임이 분명한데도 차려놓은 아침밥을 차마 못 본 척할 수 없어 밥 한 그릇을 다 마시고 갔다.

일어나자마자 밥부터 차리고 먹기에 뜨거울까 봐 식혀 놨는데, 늦었다고 하도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아침부터 내가 부산 떤 보람도 없어지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나 보란 듯이 내 앞에서 그 한 그릇의 음식을 다 비우고는 유유히 사라지셨다.

아침엔 입맛이 없어 한 그릇만 잡수시는 양반이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어?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했잖아. 장사 하루 이틀 해? 나이가 지금 몇 살이야 도대체? 한두 살 먹은 어린애야? 직장생활 1,2년 했냐고? 어디 지금 마실 나가는 건 줄 알아? 몇 시간 걸리는 출장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더 신경 써서 전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주말에 공부한다던 사람이 내내 낮잠이나 실컷 자고 일어나서는 저녁 먹을 시간에 당구나 치러 나갔다 오고, 지금 중요한 게 뭔지 알아야 할 거 아니야? 낮에 그렇게 몇 시간씩 잠을 자니 저녁에 잠이 오겠냐고! 밤에 잠 안 온다고 또 늦게까지 핸드폰이나 들여다보고 있으니 안 피곤 하고 배겨? 늦게 잠드니까 늦게 일어날 수밖에 없지. 나 믿지 말라고 했잖아! 본인 일은 본인이 좀 알아서 해 제발! 내가 언제까지 아침마다 깨워줘야 하는 거냐고?! 내가 평생 옆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마. 착각이야."

라고는 뱉어내지 못한 나의 말... 그저 가자미 눈 두 개를 부릅뜨는 게 다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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