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벌이 7급 공무원을 바라보는 전지적 부부공무원 시점
그 측은지심, 사양하겠어요.
23. 2. 6. 살얼음같은 말 한마디< 사진 임자 = 글임자 >
"사람들이 또 그런 말 하더라. 혼자 벌어서 어떻게 사냐고?"
"끝난 거 아니었어?"
"다들 맞벌이인 데다가 5급, 6급이 많고 부인이나 남편들도 비슷한 급이니까 그 사람들은 아무래도 여유가 더 있잖아. 7급 내 월급 뻔한 거 다 잘 알고."
"그래서 맞벌이가 부러워?"
"아니, 부러운 게 아니라."
"사람들이 나 혼자 번다고 너무 측은하게 생각하는 거 같아서."
"그건 그 사람들 생각일 뿐이지."
"그러게 말이야. 나도 이젠 그러려니 하는데 자꾸 그런 말을 하니까."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고 우린 우리지. 어째 그 사람들 생각에 휘둘리는 것 같네?"
"그런 건 아니야. 근데 그 사람들은 맞벌이하니까 자기들이 잘 산다고 생각하나 봐."
"잘 사는 게 어떤 건데? 꼭 둘이 벌어야 잘 산다고 할 수 있어? 그건 엄밀히 말하자면 돈을 좀 더 버는 거지. 그게 반드시 잘 사는 걸까?"
"자기 말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
외벌이 공무원 부부에 대한 맞벌이들의 분탕질은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지긋지긋하고 넌덜머리가 나다 못해 한낱 간섭으로밖에 더는 생각되지 않는다.
지난 주말, 남편 이발을 하며 살짝 분란이 생겼다.
밤 9시도 훌쩍 넘긴 시각에 남편은 당당히 이발을 요구했고 나는 응했다.
미용사가 손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맞장구치듯 나는 남편의 넋두리를 듣고 공감해 가며, 격분해 가며 또 그렇게 15,000원의 수입을 올릴 기회를 맞았다.
"여기도 나 말고 나이 드신 분 중에 외벌이 한 분 있으시거든. 결혼 안 한 직원이 그분보고 혼자 벌어서 어떻게 살 수 있냐고 하더라."
"별게 다 걱정이다."
"그분은 집도 장만했고 차도 있고 자식들도 잘 자라고 있고, 이 정도면 괜찮다고 하시더라고."
"맞는 말이네. 없는 게 없이 다 있으시구먼?"
"그래도 사람들이 요즘 같은 세상에 외벌이는 큰일 나는 줄 아니까."
"왜 사람들은 외벌이는 무조건 힘들게 살고 맞벌이를 해야 잘 사는 거라고 생각을 할까?"
"나도 한두 번이지. 자꾸 그런 얘기 나올 때마다 내가 구구절절 이야기를 해야 된다는 게 참..."
끝맺지 못한 남편의 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될 터였다.
사람들이 외벌이라고 자신을 측은하게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그건 본인의 오해일 수도 있다고 했다.
남편은 그럴지도 모른다고 했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한 두 번씩 내뱉는 그 말에 이젠 슬슬 남편도 진저리를 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외벌이로 살면 불법이란 말인가?
당장 하늘이 무너진다던가?
외벌이면 무조건 전전긍긍하며 모든 면에서 안달복달하면서 근근이 살아가야 한다는 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혼자 벌어서 산다고 살기 팍팍하겠다고, 걸핏하면 함부로 휘두르는 폭력(정말이지 폭력에 가깝다고 느낄 때가 많다. 남들이 남의 가정사에 무슨 자격으로 힘들고 안 힘들고를 판단하고 동정한단 말인가.) 앞에서 고요하던 우리 부부 생활에 파문이 일렁인다.
불과 하루 전에 맥주 한 잔 대령해 주고 전도 부쳐주며 겉보기에는 화목하기 그지없던 사이였는데 말이다.
이쯤 되면 가정불화의 원인은 시가, 처가 문제를 앞서 '직장 사람들의 간섭'이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사람 사는 모습이 어떻게 다 같을 수가 있을까.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철부지들도 아닐 텐데 어쩌면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게 하나같이...
하지만 나도 잘 안다.
본인의 세계에서 본인만의 고집으로 그것만이 옳고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옆에서 아무리 어떤 말로 세세히 말해 줘도 먹히지 않을 말들이 있고, 그들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은 '틀렸다'라고 단정해버리는 섣부른 마음 또한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르다'라는 게 어떻게 '틀리다'라는 말과 같을 수가 있을까.
다르다는 것과 틀리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내가 그들과 다르다고 해서 결코 나는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말이다.
그렇게 사는 사람, 또 이렇게 사는 사람, 그런 거 아니겠나.
자꾸 외벌이 가장 앞에서 '측은지심'을 한껏 발휘하는 정 넘치는 직장 사람들 '때문에' 우리 집 가장도 입장이 여간 고약한 게 아니다.
"아무래도 발령 잘못 난 것 같아. 사람들이 다 왜 그래 진짜? 일 잘하고 있으면 되는 거지, 남의 가정사에 왜 자꾸 간섭하냐고."
"나도 몰라."
혼자 벌어서 살기 팍팍해 어쩌냐, 얼마나 힘드냐 이런 동정 어린 말이나 듣자고 남편이 공부해서 그리로 간 것도 아닌데, 그것도 정도가 있지, 적당히를 모르는 얼굴도 본 적 없는 그 사람들이 답답하기만 하다.
하다못해 내가 힘들다고 매일 징징대며 더 갖지 못해 안달 나 하기를 하나, 남들의 과시욕 앞에 부러워서 분에 겨워 하기를 하나, 그렇다고 가진 게 없다고 남의 물건을 훔치기를 했나.
나는 잘못한 것이 없다.
더군다나 틀리지도 않았다.
구차하게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궁색하지도 않다.
외벌이에게 없는 게 맞벌이에게 있고 맞벌이에게 없는 게 외벌이에게 있을 뿐이다.
그나저나, 가화만사성이라고 하지 않던가요?
거기서 자꾸 분탕질하면 남편도 집에 와서 좋은 소리 별로 안 해요.
(오죽하면 내가 남편의 간헐적 미련의 증거 수집에 나섰을까.)
그날도 남편은 나에게 뭐라도 좀 시작해 보라면서(경제 활동으로 수입을 얻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야기하다가 끝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본인 혼자서만 힘들게 일하고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또 스쳤겠지.
남편은 내가 집에서 쉬고 있다고 생각하고, 말한다.
사람들이 부인은 뭐 하냐고 하면
"집에서 쉬어요."
라고 대답한다는 그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결혼 전부터 13년 동안 내가 어느 직장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쏙 빼는다.
당사자인 남편부터 직장을 안 다니면 집에서 쉰다고 생각하는데 하물며 남들 눈에는 어떻게 비치랴, 싶었으나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치든, 남편이 어떻게 생각하든 나는 쉬고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가볍게 무시하기로 한다. 구구절절 나는 쉬는 게 아니다, 놀고 있지 않다, 그런 말들로 호들갑스럽게 대응할 가치조차 이젠 느끼지 않는 것이다.
외벌이 가장의 심리적 무게감에 대해 내가 갖는 그 안쓰러움은 안쓰러움이고, 내 처지에 대해 경솔하게 판단하고 말하는, 어쩌면 그의 진심에 가까운 뾰족한 말을 또 온전히 인정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걸핏하면 부부싸움이나 하고 출근하면 거기서도 좋을 건 없잖아요?
많이 벌지는 않아도 잘 살고 있는 가정에 돌팔매질은 그만할 때도 됐다.
맞벌이는 맞벌이대로, 외벌이는 외벌이대로 그럭저럭 살아가면 이 나라도 잘 굴러가지 않겠어요?
"그래도 자기가 집에 있어서 나 많이 챙겨 주니까 정말 좋다."
라고 남편이 내게 했던 그 말을 들은 지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