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임자 Mar 02. 2023

그 담임 선생님, 기억하고 있었어?

부모된 도리

23. 3. 1. 어디서 보던 분

< 사진 임자 = 글임자 >


"최소한 아이들 반이랑 담임 선생님이 누군지는 알고 있어야겠지?

"응. 그래. 알고 있어야지. 근데 그 선생님 예전에 합격이 담임 선생님 아니셨나?"

"아니 어떻게 알았어?"


나는 그 사람이 아이들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줄로만 알았다.

아무리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일러 줘도, 한 소리를 하고 또 하면서도 못 미더웠다.

몇 번 얘기했을 때 시큰둥한 반응이 많아서 나도 더 이상은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간혹 강요를 해서라도 부모 된 의무를 어느 정도는 져야 한다고 생각했으므로, 더군다나 자식 일이었으므로 끈질기게 새로운 정보를 입수할 때마다 급히 전달하곤 했다.


"아빠가 그 선생님을 어떻게 알지?"

"그러게. 벌써 2년도 더 지난 일인데, 그리고 그 선생님은 2학기에 복직해서 반년밖에 안 하셨는데 말이야."

딸과 나는 그 미스터리한 일 앞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과연 그것은 남편의 지극한 관심의 결과물인가 아니면 어쩌다 뒷걸음질에 문고리를 제대로 잡아버린 것인가.

남편은 무심한 성격이라고만 단정 짓고 살아왔던 세월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아이들과 관련된 일은 가능한 한 많은 일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마음에 내가 인간 가정 통신문이 되어 의식적으로라도 반드시 남편에게 새 소식을 물어 날랐다.

학교에서 오는 각종 문자나 가정 통신문은 무조건 바로 전달하기 바빴다.

처음에는 뭘 알려줘도 별 대꾸도 없고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으니 나만 헛수고하는 게 아닌가 싶고, 도대체 저 사람은 아이들한테 관심이 있기나 한 걸까 의심마저 들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유치환-그리움)'

절로 시가 읊어졌다.


"내가 보낸 거 봤어?"

"어? 뭐 보냈어?"

이런 반응이 나오면 나도 갑자기 화가 나려고 하는 것이다. 그게 무어 그리 화낼 일이라고.

"내가 보내주면 읽어보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거 아냐? 대체 애들한테 관심이나 있긴 한 거야? 부모가 돼서 애들이 학교에서 어떻게 사는지는 대강이라도 알고 있어야지! 애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딱 둘인데 잠들기 직전까지 핸드폰 들여다볼 시간은 있으면서 보는데 30초도 안 걸리는 걸 그것도 안 봐?"

예전에는 나도 이런 식으로 말했었다.

물론 기원전 5,000년 경의 일이다.

아이들에게 무관심하다 느껴졌으므로 내가 더 서운했던 것이다.

"자기가 다 잘 알아서 하잖아."

남편이 이렇게 말하면 더 울화가 치밀기까지 했다.


"내가 알아서 하는 건 하는 거고, 최소한 알아야 될 것들은 알고 있어야지. 도대체 애들한테 관심이 없어. 그건 부모의 기본 의무 아니야?"

과거의 나는 그렇게 말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면 또 오랜만에 '된소리와 거센소리의 향연'이 우리 집에 펼쳐지게 된다.

그럴 때 쓰라고 세종대왕님께서 한글 창제를 하셨을 리는 결코 없을 터인데 말이다.

다 옛날 얘기다, 물론.


남편에게 전화 상담을 직접 하라는 것도 아니고 교통 봉사를 하라는 것도 아니고 무슨 교육이 있으면 거기 꼭 참석하라는 것도 아니며 때때로 요구하는 각종 설문조사지를 작성해 내는 일 이런 것들을 직접 나서서 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런 건 내가 할 테니까(남편이 안하니까 내가 해야지 별 수 있나, 하지만 또 왜  그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항상 나여야만 하는 건지 억울하기까지 했고 몇 차례 남편에게 권해봤지만 모두 거절하셨다. 한 번을 수락하지 않으셨다.) 알고나 계시라고, 내가 원하는 것은 단지 그뿐이었다.

물론 내가 한두 번 권했을 때 흔쾌히 하겠다고 나서면 나야 반가운 일이지만(그 은혜는 백골난망하리라.) 여간해서는 그런 쪽으로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므로, 나는 그것을 자녀에 대한 관심의 정도와 비례한다고 착각을 한 나머지 남편을 닦달 해댔던 것이다.

그런 그가 무려 2년 전의 딸의 담임 선생님을 여태 기억하고 있었다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라는 그 말이 시의적절하게 맞아떨어진 상황이다.


"그 선생님 좋은데."

누나가 동생 앞에서 살짝 고급 정보를 흘려주었다.

"아. 그래? 진짜?"

아들은 벌써부터 기대 만발이다.

"엄마도 잘은 모르지만 그래도 누나 맡았던 선생님이라 어느 정도는 마음이 놓인다."


엊그제 반 편성이 끝나고 딸과 아들의 담임 선생님들이 장문의 문자를 보내오셨다.

그제야 비로소 학년이 바뀌고 아이들이 한 살 더 먹은 실감이 났다.

아이들이 새 학년이 되면 어떤 친구들을 만날지도 궁금하지만 정작 엄마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과연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이실까?'

지금 이 순간 오로지 그게 가장 궁금하다.

그리고 두 어린이들은 오늘 어떤 급식 메뉴가 기다리고 있는지가 또 최대 관심사이고.


아이들에게 좋은 분들이기를(좋다는 기준은 어디에 두어야 할지도 막막하지만), 최소한 편견 없이 아이들을 대해주시기를 바라본다.

아이들이 하교할 때까지의 그 시간은 아마도 더디 갈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남편의 직렬은? 쇼핑직 혹은 기사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