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학교에 오시면 어떡해요?
하여튼, 너같은 엄마 꼭 있어.
23. 3. 18. 나 정도면 양호하지 않나?< 사진 임자 = 글임자 >
"어? 어머님, 웬일이세요? 전화 상담인데 직접 오셨어요?"
"네?"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지고 말았다.
전화상담이었다고라?
방문상담은 금지라고라?
"이번 학부모 상담은 전화로만 하기로 했는데요."
"아, 그래요? 제가 착각했나 보네요."
어쩐지, 사람이 너무 없다 했어.
2년 전, 딸이 3학년 때 학부모 상담이 있던 날이었다.
내가 신청한 날짜, 그 시간에 맞춰 학교에 당도했다.
학교는 휑하니 썰렁하다 못해 괴괴하기까지 했다.
'여기 학부모들은 상담에 별로 관심이 없나? 사람이 너무 없네. 다들 뭐가 그리 바쁘다고, 선생님과 자식 일로 상담을 하자는데 이렇게나 비협조적이라니, 쯧쯧.'
나는 당시 달리 바쁜 일도 없었고 그런 일에 적극적으로 참석하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육아휴직 중이었으므로 당연히(물론 내 생각에서는 육아휴직자의 필수적이고도 세상 가장 중요한 의무쯤으로 여기던 차라)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는 마음이었으므로, 순식간에 학교 방문을 하지 않은 대다수의 학부모를 세상 자식 일에 무관심한 무정한 학부모라 생각하고(물론 말도 안 되는 오해다.) 나 혼자 우쭐해하기까지 했다.
내가 신청한 상담 시간이 다 되었다.
이상하게 다른 반에도 학부모로 보이는(적어도 추정되는) 외부인 한 명 보이지 않았다.
그때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이를 가볍게 넘긴 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나저나 왜 선생님이 문도 안 열어 놓고 계시지?'
이 생각만으로 가득했다.
복도에서 뒷문 쪽으로 다가가 교실 안을 기웃거려 보았다.
분명히 선생님이 앉아계신다.
그런데 나와 상담할 시간이 다 됐는데도 왜 나를 맞이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시지?
'바빠서 깜빡하셨나?'
급기야 열지 말아야 할 그 문을 열고 내가 들어갔다.
당황하신 선생님 앞에 나는 더욱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정통신문에 다 안내했는데요. 이번엔 전화로만 상담한다고."
어쩐지, 1층에서 발열 체크를 하던 분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도 같았어.
학교에 사람이 없는 게 당연하지, 방문상담은 아예 없다고 그랬는데 올 사람이 있을 턱이 없지.
그때만 해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여전했었고, 민심이 흉흉할 때였으며, '가급적 외부인의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안내문(그런 시국이 아니었을 때부터 줄곧 수 년 전부터 형식적으로 항상 붙어 있었다.)이 학교 입구쪽에 여러 개 붙어 있을 때였다.
어떻게 상담을 마치고 나왔는지 모르겠다.
일목요연하게 궁금한 사항별로 정리해서 집에서 예행연습까지 하고 가려고(했으나 의욕만 앞서고 실천하지 못했음은 물론이다.) 나름 신경 썼지만 결과적으로는 뭔가 암울해지기까지 했다.(나, 절대 극성 엄마는 아니다. 그러나 그 선생님에게는 세상 극성 엄마라는 인상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엉뚱한 말만 잔뜩 늘어놓고 온 기분이었다.
선생님과 상담을 위해 학교에 간 게 아니라 선생님이 안내한 알림장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등교한 초등학생이 되어 꾸지람을 들은 기분이었다고나 할까.(물론 선생님은 전혀 그런 내색하지 않으셨고,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셨다.)
상담을 마치고 화장실에 가서 얼굴을 보고 나는 또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차리리 절망적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공들인 아이라인이 선을 넘었다.
넘어도 한참이나 넘었다.
아니, 내 눈두덩은 차라리 아이라인 범벅에 가까웠다.
'뭐야? 여태 이러고 선생님이랑 상담한 거야?'
어쩐지, 선생님이 자꾸 내 눈을 피하더라니, 그러고 보니 눈길을 자꾸만 교실 바닥으로 향했었어.
가뜩이나 마스크를 착용했으니 눈 말고는 밖에 나온 데가 없는데, 처참한 내 두 눈은 당사자인 내가 봐도 못 봐줄 지경이었다.
왜 엉뚱한 부위에 그라데이션 했누?
과거 직장생활을 할 때 나를 제외한 거의 모든 여직원이 아이라인 문신을 했었고, 그들은 줄기차게 내게 강력히 그것을 권했었다.
그때 콧방귀도 뀌지 않았던 건 내 불찰이었는지도 모른다.
아프다고 해서, 너무 아프다고 해서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간만의 외출로 사람 행색을 갖추고 신부화장(평소에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 환경 보호 차원에서, 그게 얼마나 환경 보호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마는, 워낙 화장을 하지 않으니 그날은 당장 식장에 들어서도 좋을 만큼 나름 신경 썼다는 의미다.)에 가까운 화장을 하고 환골탈태한, 전혀 극성맞지 않은 학부모의 화장술의 끝은 판다 눈두덩이었다.
비록 아이라인 문신은 패스했으나 맨얼굴에 마스크로 대충 얼굴을 가리는 등(남편이 '인간적으로 화장은 하고 가야지. 그게 예의야.'라고 진지하게 말했으므로) 선량한 미풍양속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나름 변장한다고 한 것이었거늘.
"전화상담만 있었는데 내가 건성으로 확인해서 학교 갔더니 선생님이 엄청 당황하시는 거 있지."
"어이구, 그것도 제대로 확인 안 했어?"
그날 저녁 퇴근한 남편에게 (뭐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얘기했더니 한 소리, 아니 열 소리는 신물 나게 듣고 또 들었다.
초등 교사인 친구에게 무용담을 늘어놓듯 사건의 전말을 밝히자
"하여튼 너 같은 엄마들 꼭 있어. 가정 통신문 좀 제대로 읽어 봐! 제대로 읽어 보지도 않고 딴소리하는 엄마들 꼭 있다니까."
라며 건성이다 못해 칠칠맞지 못한 내 행동에 (그건 비난에 더 가까웠다고 나만 생각한) 핀잔을 잔뜩 들었음은 물론이다.
'쟤 지금 제 학부모들에게는 말도 못 하고 괜히 나한테 뭐라 하는 거 아냐?'
라고 생각만 했지 입 밖으로는 한마디도 불만의 의사표시는 하지 않았다 물론.
죄지은 자는 다만 조신하게 행동해야 했다.
"선생님이 속으로 나보고 뭐라 했을까?"
"사람에 따라 다르지."
"아무튼 네가 담임이 아니라 다행이다. 그 선생님 되게 좋아 보이던데, 차분하고. 합격이도 선생님 좋아하고."
"아무튼 너 같은 엄마는 진짜..."
뜻하지 않게 강한 인상만 남기고 끝낸 상담날이었다.
극성 엄마 되는 건 순식간이다.
다시 읽어 보니, 가정통신문에는 과연 그런 말이 있었다.
'방문 상담이 아닌 전화상담만 가능'
세종대왕께서 대한민국의 학부모들을 널리 이롭게 하기 위하여 친절하게 가정통신문에 적극 활용하라고 한글을 창제해 주셨는데,
한글을 알면서 왜 글자 그대로 읽지를 못하니...
나는 굳게 다짐했다.
가급적 학부모 상담은 방문이 아닌 전화 상담만 해야겠다는 게 아니다.
가정통신문을 꼼꼼히 살펴봐야겠다는 게 아니다 물론.
아이라이너는, 앞으로 기필코 '땀과 물에 강한' 것으로 장만해야겠다는 게 전부였다.(그러나 처음 그것을 구입할 때 나는 '번지지 않는다.'라는 흔해빠진 상술에 덥석 구매한 사실이 있다.)
무엇보다도 급한 것은 그것이었다.
드레스도 드레스지만 (그것이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미하겠지만) 그보다도 여전히 마련하지 못한 그 아이라이너 '덕분에' 올해도 전화상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