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할 성싶은 어린이는 열 살 때부터 알아본다
내가 너를 어떻게 가르쳤는데...
2023. 9. 14.<사진 임자 = 글임자 >
"그런데 우리 아들은 왜 반장이 해 보고 싶어?"
"그러면 친구들한테 막 시킬 수 있잖아!"
아니, 얘기 지금 무슨 열 살짜리가 교실에서 갑질하는 소리야 지금?
아이고, 내가 잘못 키웠구나, 다 내 잘못이구나.
임원 선거 하루 전날 급히 연설 준비(라기보다 소소하기 그지없는 애교의 약속)를 하던 아들에게 내가 불쑥 물었다.
"우리 아들이 정말 반장이 해 보고 싶은가 보네. 그렇지만 그 자리가 절대 쉬운 건 아니다. 말이나 행동 매사에 더 조심해야 하고 그러는 거야. 그렇게 반장이 해 보고 싶어?"
"응. 반장 되면 친구들한테 뭐 시킬 수 있으니까 좋잖아."
"잠깐. 우리 아들이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게 무슨 소리야? 반장이 뭔데 친구들한테 시킨다는 거야? 너 잘못 생각하고 있어. 반장은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마구 시키는 그런 자리 아니야. 어쩌다가 우리 아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지? 너 그런 정신상태로는 절대 출마하면 안 돼! 얘가 진짜 큰일 낼 애네 정말. 그런 마음으로 선거에 나가겠다면 당장 그만둬. 동기부터가 너무 불순해. 너 갑질이란 말 들어 봤지? 그게 무슨 말인 줄 알아?"
"알지."
"잘 생각해 봐. 넌 지금 그런 못된 행동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 반장 그게 뭐라고 그래? 반장이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줄 알아? 아니야. 별 거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어른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긴 해. 무슨 직책을 맡으면 정말 대단한 사람이 된 줄 알고 사람들한테 함부로 하고 그런 어른들도 있긴 있는데 정말 창피한 일이지. 다른 건 몰라도 그런 건 어린이들이 절대 어른들한테 배워서는 안 돼! 우리 아들이 어쩌다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지? 우리 아들이 그런 말을 하다니 엄마는 너무 놀랐어. 큰일 날 소리 하지도 마!"
고작 열 살짜리에게 갑질씩이나 운운한 나도 좀 멀리 간 게 아닌가 싶었지만, '갑질할 성싶은 어린이는 3학년때부터 알아본다'고, 차마 나도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옆에서 남편은 더 흥분해서 한참 동안 일장연설을 할 수밖에 없었다.
반장이고 뭐고 잘못된 생각부터 바로 잡아야 했다.
자식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일은 그것뿐이었다.
아들이 어릴 때 남들 다 한다는 자음과 모음을 조합해 가며 낱말 익히기는 따로 안 시켰어도, 벽이며 문에 알파벳으로 도배는 안 했어도, 6살이 되도록 한글을 몰라 답답해할 때도 학습지 한 장 안 쥐어줬지만 그래도 사람 하나 만들어보겠다고, 사람 구실은 하고 살게 해야겠다는 그 원칙 하나로 10년을 키웠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란 말이더냐.
"너 만약에 그런 생각으로 반장이 된다고 해도 좋을 건 하나도 없어. 생각 자체가 잘못됐거든. 너도 한번 잘 생각해 봐. 정말 너희 반을 위해서 네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면 그런 친구들에게 도움도 주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는 게 최고인 거야. 그리고 그런 건 꼭 반장이 아니어도 괜찮아.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정말 네가 반장이 되고 싶은지 말이야. 진짜 네가 반장이 되고 싶은 이유가 뭔지 말이야."
한참을 고민하는가 싶더니 아들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니야, 엄마. 아깐 내가 잘못 생각했어. 나 사실 친구들한테 뭐 시키고 안 그래. 친구들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래? 반장이든 아니든 누구나 다 평등한 거야. 사람은 누가 더 위에 있고 아래에 있는 거 아니야. 너도 혹시 반장이 되면 반장이라고 뭐나 되는 줄 알고 친구들한테 못되게 굴면 절대 안 돼!"
"에이, 엄마는 나를 어떻게 보고. 절대 안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래, 엄마는 우리 아들 믿지. 그러면, 반장이 된다면 앞으로 어떤 각오로 활동할 거야? 인간적으로 공약사항 하나 정도는 걸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야 친구들이 다른 친구를 뽑으려다가도 너를 뽑아 주지 않을까? 넌 어떻게 할 거야? 한 번 해봐, 반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저는 즐겁고 멋진 3반을 만들겠습니다."
"그게 다야? 더 없어?"
"응. 더 있어야 돼?"
"아니,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 즐겁고 멋진 3반을 만들겠다는 건지 구체적으로 말하면 더 좋을 것 같긴 한데. 너 알아서 해. 네가 출마하지 엄마가 출마하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 아들, 이제 정말로 반장이 되고 싶다면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말해 봐. 장난치듯이 말하지 말고 진지하게 알겠지? 선거는 중요한 일이고 신중해야 돼. 엄마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응. 알았어."
그리하여 다음날 그 어린이는 '즐겁고 멋진 3반'을 만들기 위한 공약 하나만 뚝심 있게 내세워 부반장으로 당선되셨다.
아휴, 자식 키우는 거 정말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