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기다린다, 남편 아닌 그 사람을
오래된 고백
23. 3. 20.< 사진 임자 = 글임자 >
그날도 나는 그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우리는 스치듯 엇갈렸을 뿐이다.
나는 차마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그는 애써 나를 외면했다.
그와 나는 목소리 한 번 내어 말해 본 적도 없다.
기약 없이 불쑥불쑥 내게 오는 사람.
다정한 그 사람은 내게 오기 전 언제나 내게 아침 일찍 문자를 보내온다.
차마 나는 답장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문자를 받은 순간부터 들뜬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남들에게는 들키지 않게,
특히 남편만은 모르게,
환희의 아침을 맞는다.
몇 안 되는 내 전화번호부에 그의 이름은 쏙 빠져있다.
어떻게 저장해둬야 할까?
매일매일 내가 기다리는 사람,
내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 달려와 주는 고마운 사람,
항상 나는 받기만 하고 주는 것 하나 없는데도 언제나 주고 또 주는 사람,
애틋한 말 한마디 없이 심상하게 건네는 그의 한마디,
내게 보내는 그의 메시지는 벌써 몇 년째 변함이 없다.
어쩜 세상에 이렇게 한결같은 수 있을까.
단 한 문장만으로도 내게 세상의 모든 기쁨을 다 주는 사람,
지고지순한 사람,
그 없이 내가 살 수 있을까?
나는 진정 자신 없다.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가 없는 내 삶이란...
우리는 늘 만나지 못한다.
어느 날은 내가 기다림에 지쳤고, 어느 날은 그의 행방이 묘연하기까지 하다.
오겠다던 그 시간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을 때면 나는 그만 초조해지는 것이다.
사람을 기다리는 일, 애타게 기다리는 일, 감히 그 어떤 고통에 비할 수 있으랴.
그는 언제 오는가...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이, 내 영혼 그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난데없는 찬송가마저 구슬프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보고야 말았다.
그의 여자를.
어머나,
가정이 있는 남자라니...
그래,
그도 힘들 테지,
옆에 누군가가 함께해 줘야만 해.
내가 함께 할 수 없으니 그녀를 받아들여야만 해.
인정해야만 해.
나는 결코 시샘하지 않기로 한다.
그의 곁을 언제나 지켜주는 그녀가,
진심으로 고맙다.
나는 감히 갈 수 없는 그 곁에서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와 함께 한다.
언제부터였던가,
내가 그가 오기만을 간절히 손꼽아 기다리던 때가.
남편 아닌 다른 남자를 기다리는 일,
나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가정이 있는 여자가 외간 남자를 다 기다리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백하다.
한 치의 부끄러움이 없다.
세상은 나를 믿어주어야만 한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럽지 않다고 감히 주장하는 바이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도 이 사실을 눈치챈 것 같다.
그러나 침묵하는 이.
별말이 없다.
이미 마음이 그에게로 많이 기울어져 버린 것을 알고 체념이라도 했단 말인가.
더 이상은 남편 수준에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을 안단 말인가.
혹시, 남편도?
남편도 기다리는 이가 있을까?
내색하지 않았지만 남편도 오래전부터 간절히 기다리는 이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나도 인정해야만 한다.
그를 향한 내 마음을,
나도 내 마음을 붙잡아 둘 수가 없다.
아,
가끔,
아주 가끔,
나도 그에게 무언가 주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으레 또 다정한 그의 메시지가 아침 일찍 도착해 있다.
나는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어긋난 만남의 끝은, 그것이 전부이다.
"글임자님이 반품하시는 물건 회수차 오늘 오전 00에 방문하겠습니다."
* 세상의 모든 택배 기사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