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3. 30. 무거워서 그래< 사진 임자 = 글임자 >
"당신의 몸무게는~OOKg입니다. 운동 좀 하세요!"
"진짜야?"
"방금 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래."
"진짜 신기하다. 나 자기가 이렇게 몸무게 나가는 거 처음 봐."
"물을 많이 마셨다니까 그러네!"
"가만 보니까 진짜 살이 찐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솔직히 나한테 할 소린 아니지. 안 그래?"
말하는 저울이 근래에 가장 높은 수치의 몸무게를 거실에 쩌렁쩌렁 울리게 발표했다.
어떤 패턴으로 기계적으로 성의 없이 반복되는 녹음 내용이 나온다.
아니, 몸무게 재는 저울이 다 됐나?
요즘 좀 이상한 것 같다.
손 좀 봐줘야겠어.
나도 이런 몸무게는 둘째를 낳고 처음 본다.
그러니까 10년도 넘게 유지되던 몸무게였는데 최근 살~짝, 아주 살~짝(물론 내 기준에서만 너그럽게 보아주었을 때이다.) 몸무게가 늘었다.
"그래도 자기는 그 나이 돼도 살은 안 찐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 먹고 살찌기도 하던데."
아니, 내 나이가 어때서?
"하긴 자기는 조금씩 먹으니까 그렇지."
조금씩은 조금씩인데 자주, 아주 자주 먹는다.
그러나,
최근에,
많이씩, 자주 먹기 시작했다는 것을 남편은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무래도 진짜 물을 많이 먹어서 살이 쪘나 봐."
애먼 물 타령만 해댔다.
"그래도 그 정도면 찐 것도 아니지."
짐짓 심각해지려는 내게 남편이 심상하게 말했다.
"어머~ 역시 자기는 관대해. 내가 보기에도 요즘 내가 살이 찐 것 같은데. 말이라도 정말 고마워. 역시 자기가 최고야!"
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물론.
"몸무게 보고도 그래? 내가 언제 이렇게 살찐 적이 있었어? 아무리 남의 일이라고 어쩜 말을 그렇게 해? 갑자기 살이 찌면 안 좋은 거야. 어디가 또 안 좋은 건가? 전하고 다른 것 같기도 한데. 하여튼 남편이라는 사람이 관심이 없어도 없어도 이렇게 없을까."
라며 괜히 발끈했다.
"그 정도면 살도 없는 편이지. 괜찮은데 그래?"
"그래. 나 정도면 괜찮을지 몰라도 자긴 아닌 것 같다? 진짜 살 좀 빼야 되겠어. 나이 먹고 뱃살이 찌면 그게 제일 안 좋다던데. 날마다 운동한다 한다 하더니 어느 세월에 하시려고 그래? 그냥 하는 소리 아니야. 내가 보기엔 진짜 빼야 될 것 같아. 나도 그렇고. 다 건강을 위해서지 뭐. 살쪄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잖아."
라며 엉뚱한 남편의 다이어트를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강요를 해서라도 운동도 하고 살을 좀 빼게 하고 싶었다.
남편도 흔쾌히 이에 동의했으므로,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뒤라 크게 반발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 의지의 한국인은 운동도 하지 않았다.
내 강요에 반발도 하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고, 나는 참으로 그의 일관성이 감탄스럽다.
"아무래도 나 근육 생긴 거 아닐까? 살이 아니라 말이야."
그러나 남편은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요즘 매일 운동하잖아. 그래서 근육이 생겨서 몸무게가 늘었나 봐."
갑자기 없던 근육이 며칠 만에 부쩍 늘어날 리는 결코 없겠지만 근육이라고 믿고 싶었다.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바보 같은 발상이란 말인가.
그렇지만, 고백하건대 내가 근육이 생길 만큼 운동을 한 것은 아니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 남편이 이의를 제기할까 봐 이내 입을 다물었다.
뭘 모르는 나지만 근육이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란 것쯤은 잘 안다.
게다가 경험상 꾸준히 근력운동을 해 주어야 근육이 는다.
근력운동을 꾸준히 할 경우, 몸무게는 그대로여도 근육이 생긴다고 했다.
그러니까 결론은 제자리 몸무게에서 근육이 붙을 수는 있지만 근육 자체가 몇 Kg씩 늘지는 않는다는 비보를 과거에 전해 들은 바 있다.
"그러고 보니까 살이 찐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 진짜. 그렇게 봐서 그런가?"
가만히 듣고만 있던 남편이(안 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불쑥 한마디 뱉었다.
"어디가 찐 것 같아?"
"어디 보자."
"보긴 뭘 봐? 근육이라니까!"
안 봐도 나는 본능적으로 알 것 같았다. 굳이 남에게 확인받지 않더라도 말이다.
내가 현실을 직시하고 있으면 된 거다.
적어도 나는 현재 내 상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애써 위안 삼는다.
"아! 알았다. 몸무게가 왜 늘었는지 알겠어!"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내가 소리쳤다.
"왜 늘었는데?"
도대체 그렇게까지 환희에 찬 이유가 뭔지 이유나 들어 보자며 남편이 귀 기울였다, 고 생각했다.
"요즘 이상하게 얼굴에 뾰루지가 많이 나더라고. 그거야 그거!"
내가 아무 말 대잔치를 시작했다.
"무슨 뾰루지가 무게가 나가?"
얼토당토않은 소리, 세상 영양가 없는 소리 다 들어본다는 듯 남편은 반발했다.
"몰랐어? 뾰루지가 얼마나 무거운데?
당사자가 아니면 결코 알지 못할 그 참을 만한 무거움에 대해 말했다.
"또 이상한 소리 한다."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남편은 가뿐하게 나의 아무 말 대잔치를 폐막식으로 이끌고 갔다.
"봐봐. 얼굴에 여기저기 여러 개 났잖아. 이것 때문이었어. 그러니까 몸무게가 는 것은 이 뾰루지 무게 때문이었던 거야!"
그에 굴하지 않고 나는 어떤 근거도 없는 주장을 거세게 밀고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