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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Apr 30. 2023

600에서 500으로 줄였다.

아빠의 과감한 결정

2023. 4. 19. 고추모종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다리 아프니까 올해는 나도 같이 고추 심어 볼까?"

"심을 줄이나 아냐? 아무나 심는 거 아니다. 잘 심어야제 잘못 심으믄 안 돼."

"그냥 심으면 되지. 쪽파도 심고 마늘도 다 심어 봤는데 뭐."

"고추는 아빠한테 심으시라고 하고 너는 모판이나 갖다 드려라. 옆에서 심부름이나 하고."


일단 엄마한테서는 거절당했다.

올봄 갑자기 엄마 무릎 상태가 심하게 안 좋아져서 나는 나름 생각해서 한 말이었다.


처음에 친정에서는 올해 가볍게 고추 모종 600주를 심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엄마의 관절염 때문에 100주씩이나 줄여서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건 정말 과감한 결정이었다.) 아빠가 구입하신 모종은 500주였다.

나도 심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다른 작물은 몰라도 부모님은 고추 심는 일에 대해서만은 엄격하시다.

틀림없이 내가 못 미더우신 거다.

다른 많은 일은 선뜻 맡기면서도 그 일만큼은 쉽사리 내게 기회가 오지 않는다.

원래 못하게 하면 더 안달나는 법 아닌가.

최근 몇 년 동안 곁에서 부모님의 농사를 간간이 도와온 경력을 보자면 그래도 이 정도면 도회지에서 갑자기 귀농 후 농사일을 막 시작한 이들보다는 내가 훨씬 더 나으리라는 자신이 있었는데 말이다. 게다가 내가 옆에서 일을 도우면 엄마는 아주 흡족해하시며,

"니가 다른 어매들보다 낫다."

라며 종종 나의 자신감을 한껏 올려주는 발언을 하셨으므로 올해는 감히 고추 심는 일까지 농사 영역을 넓혀보려는 야망을 가졌다.

2023. 4. 19. 나는 빼고 아빠는 심고

"아빠, 500주나 되는데 나랑 같이 심읍시다. 나도 심을게. 언제 아빠 혼자 다 심고 있겠수?"

"너는 냅둬라. 이까짓 거 나 혼자 열 번도 더 심는다."

아빠에게서도 역시 거절당했다.

아빠에게선 뭐랄까, 70 평생 농부로서의 자부심 같은 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젠 연세도 있으시고 농사일이라는 게 힘에 부치는 것들이 많아서 걱정스러운 내 마음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그동안 항상 엄마가 옆에서 같이 농사를 지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텐데, 당장 관절염이 심해진 엄마는 이젠 더 이상 같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보였다.

내가 더 부지런해져야 할 이유가 생겼다. 단순노동이라도 안 돕는 것보다는 하찮은 일이라도 손을 넣어주면 조금 더 수월해지겠지.

물론 엄마만큼은 아니겠지만, 결코 그렇게 되기도 힘든 일일 테지만 말이다.


여태 날이 선선하더니 꼭 고추 심을 때가 되면 땡볕이 내리쬔다. 그날도 선크림조차 바르지 않고 덤볐던 나는 행여라도 얼굴이 탈까 봐 모자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기에 급급했고, 초여름 같던 봄날에 따가운 볕 아래서도 아빠는 홀로 고추를 심으셨다.

"아빠, 이렇게 더운데 왜 모자도 안 쓰고 일하셔?"

"이런 날이 뭐가 덥냐?"

이 정도의 따가움은 애교라는 듯 아빠는 신경도 쓰지 않으셨다.

까맣게 그을린 주름진 목덜미가 애처롭게만 보였다.

선크림이 다 무어란 말인가. 언제 부모님이 그런 사치스러운 것을 피부에 바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으셨던가? 온전히 그 뜨겁고도 아픈 것을 그저 온몸으로 받아내기만 하셨지, 굳이 애쓰지도 않으셨지. 맨발로 거친 흙을 그대로 다 밟고 울퉁불통 그 마디 굵은 손으로 상처가 나면 나는대로 그저 그럴 뿐이었지.

나는 잽싸게 모자를 챙겨 와 아빠 머리에 씌워 드렸다.

봄볕을 다 가리기엔 턱없이 모자란 챙이었지만 그날 딸이 아빠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늘은 그게 다였다.

한 번씩 시원한 물을 드리고 새참을 나르고 모판에서 고추 모종을 하나씩 빼서 심을 위치에 적당히 늘어뜨려 놓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도 그뿐이었다.


항상 엄마가 아빠 옆에 있었는데, 이젠 아빠 혼자다.

언젠가는 정말 두 분 중에 한 분만 남게 되는 날도 오겠지.

지금도 분명히 엄마는 집에 계시지만 많은 농사일을 이젠 아빠 혼자서 감당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 아찔하다.

서로에게 잔소리해 가며 두 분이서 티격태격하면서도 항상 옆자리를 지켰던 부부였다.

엄마는 집에 계신 날이 많아졌고, 그만큼 아빠는 더 부지런히 두 사람 몫의 일을 해나가시느라 더 일찍 밭에 나섰고, 더 늦게 돌아오시는 날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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