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고 블로그라도 해보라고 한다, 남편께서.
< 사진 임자 = 글임자 >
최근 육아휴직을 3년 하는 동안에도 그랬고 올해 아예 의원면직을 하고 나서도, 난 스케줄이 꽤 있다.
해야 할 일은 많고, 하고 싶은 일은 더 많아서 그동안 공무원 생활하면서는 내가 어떻게 살았던가 싶다.
물론 일목요연하게 시간 정확히 지켜가며 차례대로 하는 반듯한 스케줄은 못될지언정 하루 24시간 중에 잠자는 시간 말고는 늘 뭔가를 하고 있다.
한 달 정도 전엔가 남편이 또 그랬다.
"이제 일도 안 하는데 그냥 무료하게 있지 말고 어디 글이라도 써 보는 거 어때?"
"갑자기 왜?"
나는 무료한 게 뭔지를 모르는 사람인데.
"자기는 책을 보는 걸 좋아하니까 책 리뷰 이런 걸 하면 잘할 것 같은데."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리뷰까지 좋아한다고는 한 적 없는데?"
"그래도 책을 많이 보니까 그냥 읽지만 말고 리뷰까지 하면 더 좋을 것 같아."
"난 그냥 보는 게 좋아. 나 아니어도 이미 많은 능력자들이 충분히 하고 있어."
저 말을, 내가 일을 그만둔 지,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의원면직 통지를 받고 난지 이틀인가 되어서부터 들어왔다. 1월 말경부터였다.
그 후로도 저런 얘기를 자꾸 한다.
의도가 뭘까.
"그거 아니어도 무지하게 바쁜 사람인 거 몰라? 일단 몸이나 좀 추스르자. 당장 애들 뒷바라지하기도 바빠. 살림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닌 거 잘 알 테고(남편이 육아 휴직하고 난 후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세 가지로 묶인 소위 살림이라는 것, 아이들 뒷바라지하는 거, 단지 저 두 가지, 단지 5일 만에, 일주일도 안 돼서 너무너무 힘들다고 나에게 분명하게 말했던 거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반찬 따위는 만들지도 않았는데, 거의 매일 아이들에게 달걀만 먹여댔다고 한다.) 부모님이 바쁠 땐 가서 농사일도 도와줘야 하고. 맨날 엄마가 우리 먹을거리는 다 책임지고 맡아서 주시는 건 알지? 나도 양심이 있으니까 그냥 받아만 먹을 수 없어. 손을 넣어줘야지. 어차피 돈 주고 사 먹어야 하는 것들인데 믿을 수 있는 부모님한테서 다 받아먹으니까 더 열심히 도와줘야지. 맨날은 못 도와드려도 바쁠 땐 안 불러도 가서 도와야지. 알잖아? 자꾸 아프다고 집안에만 박혀서 쳐져 있는 것보단 논밭에라도 나가서 몸을 움직이면 더 기운이 나니까. 그러고 남는 시간에 나도 책 보고 운동도 하고 그러고 있는 거야. 내가 항상 말했잖아. 비록 직업은 없지만 난 스케줄이 있는 사람이라고."
"알지. 알긴 아는데 그냥 자기가 뭔가 활력이 생길만한 일을 했으면 해서 그러지."
"지금도 충분히 활기 넘쳐.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잊을만하면 블로그 타령이다.
'나혜석'이 '이혼 고백장'을 써 내려가듯 남편은 아직 내가 매일 블로그를 들락거리며 무언가를 회개하고, 어떤 일을 기억하고, 누군가를 고발하는 사실을 모른다.
한 달 전쯤이었을 것이다.
남편이 다소 흥분하며 말했다.
"자기야. 나 '티스토리' 시작했어. 자기도 한 번 해 봐. 블로그 어때? 그거 만들기도 쉽고 하나도 안 어려워."
"그래? 그런 게 다 있어?"
난 올해 3월부터 블로그를 이미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혹시 나중에 공무원을 하겠다고 하면 도움이 될까 싶어 내 경험들을 기록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듯이 내가 블로그를 하고 있다는 걸 남편이 모르게 한다.
"오늘 처음 만들었는데 세상에 3명이나 왔어. 너무 신기해."
"어쩌다가 그 사람들이 거기 들렀지? 잘못 클릭했나 보다."
"몰라. 그래도 너무 기분 좋다. 세상에 3명이나 하루에 오다니."
"그래. 3명이나 와서 좋겠다."
"내가 쓴 글을 보는 사람이 있나 봐."
"근데 그거 3명이 거기 운영자랑 누구랑 뭐 관련된 그런 사람들이 새로 만든 거라고 검사하느라 들어온 거 아닐까?"
"그런가?"
"새로 생긴 거니까 어떤지 살펴보려고."
"그럴 수도 있겠네."
"아니면 실수로 들어왔을 수도 있고."
"정말 그럴 수도 있겠네. 그래도 아무튼 3명이나 들어와서 정말 기분은 좋다."
소박하기도 하셔라.
욕심 없는 당신, 횡령 따윈 절대 하지 않을 공무원, 교육행정직렬의 진정한 법정 스님, 여기 있다네.
그러면서 자꾸 또 블로그 타령을 시작하는 거다.
"자기도 이런 거 한 번 해 봐. 별거 아니라니까?"
"왜 자꾸 해라 마라야.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이미 시작했는데 뭘 또 해? 벌써 알아서 다 했다고!)"
"그냥 매일 하나씩이라도 글 올리고 길게 잡아서 10년 정도 쓴다고 생각해 봐. 해 두면 없어지는 거 아니니까. 그냥 기록으로 남긴다 생각하고."
"생각 좀 해 볼게."
"자긴 그런 거 잘 못하니까 내가 알려 줄게. 일단 블로그를 만들어서 글을 쓰면 돼. 모르겠으면 나한테 다 물어봐. 그리고 사진도 넣고 싶으면 나 불러. 내가 자세히 알려 줄 테니까."
남편한테 운전 배우는 건 가정불화의 불씨가 되나니, 애초에 운전은 남한테 배워야 하듯, 손가락만 까딱할 수 있으면 너튜버들이 다 알려주는데 내가 굳이 왜? 남편한테?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나의 기쁨, 나의 고통, 아무리 부부 사이지만 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 있음을 깨달아야 하리.
그로부터 삼사 일이나 지났을까?
"어때? 요즘도 설마 자기 글 보러 들어오는 사람이 있어?"
"아니. 일주일째 한 명도 없어."
"뭐? 진짜야? 설마!"
"아까도 봤는데 아무도 안 왔네."
"그럼 그때 처음에 3명 첫날 들어온 건 진짜 실수로 들어온 거 맞는 거 같네."
나는 농담했지만 남편은 너무 시무룩해 있었다.
"진짜 자기 말이 맞았나 봐."
"사람들이 방문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거지. 부담 없이 그냥 하는 거라며?"
"그러긴 한데. 너무 안 오니까 좀 그러네."
난 사람들이 남편을 별로 안 찾을 것 같은 직감이 있었다.
내 블로그도 뭐 사람들이 많이 찾진 않는다.
남들이 한다고 쉬워 보였나 보다.
결코 쉽지 않던데 말이다.
요즘 남편은 블로그에 확 마음이 쏠려서 나 보고도 자꾸 해 보라고 닦달하고 본인도 처음엔 나름 열심히 했었다.
그런데 찾는 이 없는 그 공간은 남편만 괜히 의기소침해지게 만든다.
"자기야, 내가 민방위 사이버 교육받은 거 생각나서 그거 올렸더니, 세상에 5명이나 봤어."
"그래? 그렇게나 많이?"
다소 과장된 몸짓으로 응해줘야 아내다.
"근데 나는 경제 관련 글을 올리는 건데. 그냥 민방위는 올려 봤는데 그것만 사람들이 다 보고 딴 건 안 봤어."
남편이 나를 웃게 한다.
요새 웃을 일 별로 없는데 참으로 내 정신건강을 건전하게 지켜주는 사람이로세.
경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 보겠다며 육아휴직 내내 의욕에 불타던 남편은 책도 보고 공부를 하면서 글로 정리를 해 나가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민방위 관련 글이 제일 인기 폭발이란다.
하루는
"자기야, 오늘은 4명이나 왔어!"
이러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그래? 축하해. 또 어떤 사람들이 잘못 클릭한 걸까?"
"모르겠네, 아무튼 오늘은 4명이야. 그래도 사람들이 오니까 좋네."
"그래. 좋기도 하시겠네."
이렇게 말한 지 반나절도 안돼서다.
"자기야, 근데 아까 4명 온 사람 말이야. 아무래도 내가 들어간 것 같아."
"무슨 소리야?"
"아까 낮에 내가 검색이 되나 찾아보려고 해 봤거든. 그렇게 들어가 본 게 4번 정도 돼. 딱 그만큼인가 봐."
이러면서 또 의기소침해지는 나의 기쁨, 나의 고통.
"아, 그래? 그런 건가?"
"아무래도 내 말이 맞는 것 같아."
"그럼 결론은 오늘도 아무도 안 오고 자기만 혼자 들락날락한 거네?"
"아마도......"
질풍노도의 사춘기 아이들도 이렇게 감정 기복이 심하지는 않을 거다.
다시 한번 갱년기가 도래한 게 아닌가 강한 의구심이 든다.
또 그로부터 사흘 정도 후였다.
"자기야, 자기야, 오늘은 3명이나 왔어!"
누가 보면 6급 승진 소식이라도 들고 온 줄 알겠다.
"그래? 어쩌다가 또 그 사람들이 잘못 들어왔대?"
"몰라. 그래도 3명이나 와서 좋다."
"근데 그 3명 말이야. 저번하고 비슷한데 어째?"
"응? 뭐가?"
"첫날에 3명 들어왔었다며?"
"응."
"그때 아마도 거기 운영자랑 관련된 그런 사람들이 검사차 온 것 같다고 내가 그랬잖아. 이번에도 그 사람들 아닐까?"
정말 내 말처럼 그런 게 있는지 없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해 본 말이다.
"아, 그런가? 그래도 3명이 어디야?"
"아, 알았다. 3명이 왜 들어왔는지."
"응?"
"그때 자기가 만든 그거 아직도 안 죽고 살아있나 그거 확인해 보려고 그쪽에서 또 확인차 들어와 본 것 같아."
"정말 그런 건가?"
나도 모른다.
점점 집착해 가는 남편, 이쯤에서 현실을 직시해야 할 텐데.
티스토리를 시작할 때 분명히 부담 없이 그냥 큰 기대 않고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남편은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근평 S 등급'을 바라는 것 같다.
그거 다 욕심이다.
하지만 어쩜 실수로라도 하루에 한 명도 안 들어와 볼 수가 있는 건지 그 또한 미스터리다.
전무후무,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러면서도 오늘 출근길에 나가며 나보고
"그냥 있지 말고, 블로그라도 해 봐."
또 이러신다.
블로그 못해서 죽은 구신이 붙었나. 왜 자꾸 블로그 타령이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는데 거 좀 적당히 합시다.
불쾌지수 자꾸 올라가요.
하지만 뒤이어 남편이 흘리듯 전해 준 그 말에 불쾌지수는 내려가고 온 집안이 쾌적해지는 것 같다.
"나 오늘 회식이야. 내일은 전 직원 야구장 가기로 했어."
"그래. 알았어. 늦게만 들어와!!! 아예 야구장에서 바로 다음날 출근하면 더 좋고."
- 2022. 7. 4. naroseon 블로그(이 나이에 공무원 퇴직) 글 -
오늘 아침 갑자기 생각나 물었다.
"근데 자기 티스토리 아직 무사해?"
"나도 안 들어가 본 지 오래됐어."
조만간 폐업 신고할지 모르겠다.
직장생활에, 일단은 전념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