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어버이날을 스포 하는 방법

선량한 어머니의 아들은 어떻게 어버이날을 준비하는가

by 글임자
2023. 5. 8. 아들의 러브레터

< 사진 임자 = 글임자 >


"엄마, 나중에 거기 한 번 가봐요. 의자 있는데 말이야."

"어딜 말하는 거야?"

"아빠 운전 빨리해서 카메라에 찍혀서 돈 내라고 오는 거 넣는 데 있잖아."

다행히 내가 범한 행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눈치다.

"아, 우편함 말이야? 거기를 우편함이라고 하는 거야."

"아, 그래? 응, 그 우편함에 가봐요. 가면 뭔가 와 있을 거야."


슬슬 감이 오기 시작했다.

저 대화를 주고받았던 때가 불과 일주일 전이다. 그리고 어제가 어버이날이었니까 아들이 준비한 것이 무엇인지 난 대번에 알아차리고 말았다.

난 어쩌자고 이렇게 눈치가 빠른 거람?


일주일 전, 시장에 갔다 오는 길에 나는 그 무리를 보고야 말았다.

왠지 선생님 뒤를 졸졸 따르는 그 어린이들 중에 내 아들이 거기 꼭 끼어 있을 것만 같다. 확실한 물증은 없지만 저기 앞서 가시는 그분이 내 아들의 담임 선생님만 같다. 나의 직감은 역시나 틀리지 않았다. 줄 중간에 까불까불하며 친구와 장난치면서 걷는 내 아들을 단번에 알아봤다.

손을 살짝 흔들어 주고,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기 전에, 행여라도 선생님이 길거리에서 학부모와 번개 상담을(할 일은 전혀 없겠지만)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얼른 자리를 떠야만 한다.

만에 하나 선생님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면 이를 어쩐다? 그날 내 행색이 어땠던고? 화장은 하지 않았지만 모자와 마스크로 온통 무장한 결과 선량한 미풍양속을 해칠 정도의 외모는 아니다. 나는 항상 주장해 왔지. 얼굴만 잘 가리면 돼. 그 누구라도 내가 아는 사람이 나를 못 알아보기만 하면 돼.

다행히 그날은 전에 출근하던 옷을 입고 외출을 했으므로 동네를 하릴없이 어슬렁거리는 무직자로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고 나만 생각했다 물론.

아들도 이내 나를 알아보고는 손을 신나게 흔들어 주었다.

그러나 나는 들었다.

"누구 엄마야?"

아들 뒤에 따라가던 한 남자 어린이가 물었다.

"우리 엄마야. 얘들아, 우리 엄마야, 우리 엄마! 저기 우리 엄마 있어! 저기 있잖아, 저기! 우리 엄마라니까!

엄마! 엄마!"

아들은 목청껏 소리쳤다. 느닷없이 길거리에서 친구들에게 엄마 소개를 하면 어쩌자는 거라니?

아들에게 엄마는 빨리 사라져 줄 테니 어서 선생님 뒤나 잘 따라가라고 손짓으로 말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오늘 나 봤지?"

"응. 봤지. 우리 아들이 어디 있어도 엄만 금방 알아볼 수 있어. 엄만 우리 아들이 거기 있을 거란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니까!"

"어떻게?"

"엄마가 우리 아들을 많이 사랑하니까 다 알지."

"아, 그렇구나."

"근데 오늘 무슨 수업이 있었는데 밖으로 나온 거야?"

"응, 나중에 알게 돼."

평소의 아들답지 않게 진중한 모습을 다 보여 주셨다.

그제야 그날 아침의 일이 문득 생각났다.

"우리 아들, 혹시 오늘 준비물이나 숙제해 가야 하는 건 없어?"

매일 하교하면 바로 확인을 하고 저녁에 한번, 또 다음날 아침에 확인을 한다.

"아, 맞다! 집 주소 알아 오랬는데."

"그래? 집 주소 알아?"

"아니. 우리 집이 어디지?"

행여나 했지만, 역시나 우려했던 일이 발생했다.

"아니, 네 나이가 몇인데 여태 집 주소 하나도 못 외우고 있는 거야? 네 누나는 4살부터 책을 읽었고 5살에 한글을 다 떼고 가족 이름을 다 줄줄 써 내려갔어. 뿐이니? 자그마치 6살엔 한자를 공부했으며 유치원에서는 영재 테스트를 한 번 받아보라는 권유까지 수 차례 받았었는데 넌 10 살이 되도록 집 주소 하나도 못 외운다는 게 말이 나 돼? 그거 길면 얼마나 길다고 그거 하나를 못 외웠어?"

라고는, 결코 누나와 비교하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물론.

잠시 딸의 유아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우리 아들도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하는데 무어 그리 비교할 일이라고 비교를 하겠는가.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걸.

우리 아들은 대기만성형이야.

암, 그렇고 말고.


"자, 잘 들어봐. 엄마가 주소를 불러 줄 테니까 잘 기억해."

"응. 불러줘 봐. 내가 따라서 외워볼게."

"헷갈릴 수 있으니까 알림장에라도 써 가는 게 어때? 새 주소라 중간에 숫자도 들어가고 좀 복잡할 수 있어. 어른들도 잘 몰라."

"에이, 괜찮아. 엄마 내가 기억을 얼마나 잘하는데?"

그러나 호언장담하던 아들은 두 번 반복하다 말고 알림장을 스스로 펼쳐 보였다.

"그냥 써가야겠다."

"그래. 정확히 써 가야 혹시 생각 안 나면 볼 수도 있잖아. 그렇지?"

"응, 엄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

"엄마도 안 적어 두면 잘 잊어버려. 그래도 적어두면 나중에라도 보고 확인할 수 있잖아."

"아, 그렇구나. 그거 좋은 생각이네."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다 마치고 신발을 다 신고서 아들은 전날 숙제로 집 주소 알아오기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 냈던 것이다.

딸도 3학년쯤엔가 '우리 동네 알아보기' 이런 주제로 동네 투어를 종종 했던 기억이 났다.

아들도 지금 그 단원을 공부 중인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날 하교하고 난 아들은 제 입이 근질거려 끝내 어떤 비밀을 발설하고야 말았다.

"엄마. 오늘 나 어디 간 줄 알아?"

"동네 알아보기 그런 수업한 거 아니었어?"

"아니. 우체국에 갔지."

"우체국에? 무슨 일로?"

"그건 비밀이야."

하지만 나는 우체국에 갔다는 말만 듣고도 귀신같이 아들이 어떤 일을 했는지 다 알 수가 있었다.

'어버이날이라고 편지 써서 우체국에서 부쳤나?'

아니나 다를까, 아들은 (인간적으로 적어도 어버이날까지는) 저 혼자만 간직해야 할 대단한 서프라이즈 비밀을 자꾸만 내게 발설하려고 했다.

"엄마. 근데 내가 우체국에 왜 갔는지 알아?"

"아니, 엄만 전~혀 모르겠는데?"

"사실 말이야. 다음 주에 어버이날이 있잖아. 그래서 갔는데 왜 갔는지는 비밀이야."

"그래? 엄만 그래도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 그럼 내가 조금만 알려줄까?"

아니! 아서라!

이미 진작에 이 엄만 눈치챘단다.

"진짜 궁금하네. 왜 갔을까?"

"그럼 내가 조금만 알려줄게. 나중에 뭐가 올 거야. 거기 아빠 돈 내라고 오는데 말이야. 거기 한번 매일 가봐요."

우편함을 아빠의 속도위반 과태료 고지서 수거 전용공간으로 기억하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 무슨 일인데 거길 가보라는 걸까? 진짜 모르겠어."

"모르겠지? 후훗~아무튼 엄마한테 뭐가 도착할 거야. 뭐가 도착할지는 비밀이야."

비밀은 무슨. 뻔하지, 편지밖에 더 있겠어?

"엄만 하나도 모르겠어. 우리 아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그럼 하나만 더 알려 주지. 사실은 말이야. 우체국에서 내가 뭘 보냈거든. 엄만 내가 우체국에 가서 뭘 보냈는지 아마 생각도 못했을걸? 아마 깜짝 놀랄 거야."

(우체국에서 보낼 만 한건 뻔한 거 아니야?

편지나 택배, 그런 거 말고 뭐가 있겠어? )

"과연 우리 아들이 뭘 보내셨을까. 진짜 궁금하다."

"정말 궁금해?"

"응."

"그럼 하는 수 없지. 내가 알려주는 수밖에. 그게 말이지."

"아니야! 우리 아들, 말 안 해줘도 돼. 그냥 계속 궁금해하고 있을게. 응? 제발 말하지 마!"

"그래? 알았어. 아무튼 날마다 밖에 나가서 확인해 봐요. 다음 주 어버이날이랑 상관이 있어. 근데 비밀이야. 절대 모르겠지?"

"응. 정말 모르겠어."


얘가 지금 답이 뭔지 뻔한 스무고개를 하자는 건가?

아들 성격에 그래도 많이 참았다, 저 정도면.

그 편지를 부치고(편지라고 나는 진작에 확신했으므로 편지가 아닐 리가 없었다.= 편지여야만 한다.) 아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물어보기 시작했다.

"엄마. 밖에 나가 봤어?"

"아니."

"얼른 나가봐."

"아까도 가 봤는데 아무것도 없던데?(=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잘 배달될까=진득하니 좀 기다리거라.)"

"그래? 왜 안 오지? 내가 뭘 보냈는데."

나는 아들에게 일주일을 시달렸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우체국에 가서 미리 찾아와 버리고 싶었다.

아들이 기억해 낼 수만 있다면 내게 썼던 편지 내용 그대로 술술 내 앞에서 그냥 읊어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일요일 밤에도 아들은 끈질기게 물어왔다.

"엄마, 밖에 나가 봤어?"

"일요일은 우체부 아저씨가 안 오시지."

월요일이 되었다.

하교 후 오자마자 대뜸 물었다.

"엄마, 밖에 나가봤어?"

"응, 나가봤지."

"그거 안 왔어?"

"아직 안 왔는데?"

안 왔어도 왔다.

왔다고 치자 그냥, 아들아.

"왜 안 오지? 이따가 또 나가봐요. 뭔지는 대충 짐작했겠지만."

"아니, 엄만 전혀 짐작도 못하겠어. 정말 너무너무 궁금해."

"그래? 하긴 엄만 모르겠지. 아무튼 기다려 봐요."


사실 어제 아침에 우편함에서 그것을 드디어 발견했다.

그런데 깜빡하고 아직 안 왔다고 아들에게 대답했다.

진작에 개봉해서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에 버금가는 띄어쓰기를 철저히 무시한 그 행태가, 의문 부호와 쉼표를 제외하고 나머지 마침표가 거의 빠졌다는 점이 자꾸 신경 쓰였지만, 초등학교 3학년 남자 어린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너그러이 넘어가 줄 수는 있었다.


자, 그럼 이제 아들에게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하는 거람?

최대한 호들갑을 떨어야겠지?

우리 아들이 최고라고, 엄만 생각도 못 했는데 이렇게 편지까지 다 써주고, 정말 감격스럽다고, 우리 아들이 엄마 아들인 게 정말 정말 자랑스럽다고, 역시 우리 아들밖에 없다고, 엄만 평생 그 편지를 가보로 간직할 것이라고, 이 정도면 될까? 사실이 그러하기도 하니까.

너무 의도한 티가 나지 않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어색하지 않게 반응하자.

아직은 적당한 시치미는 눈치 못 채고 감쪽같이 넘어갈 나이다, 10 살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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