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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임자 May 22. 2023

부부, 때론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가장 먼 여행처럼

둘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2023. 5. 21. 부부는 두 사람인데

< 사진 임자 = 글임자 >


"다른 사람들은 진짜 부부가 사이좋은가 봐. 남편이 집안일도 같이 많이 하고 잘 싸우지도 않는대."

"아니야, 어젯밤에 그 집도 부부싸움 했어."

"아니라니까. 직원들끼리 얘기하는 거 들어보니까 남편이 정말 잘해준다던데?"

"그런 집이 세상에 정말 있다고?"

"있나 봐."

"하필이면 잘해준 다음날 얘기를 했구만."


부부, '부'득부득 우기며 서로를 '부'인하는 사이, 가끔은 그렇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한때는 언제나 그런 것도 같았다.

어떻게 둘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걸까?

때론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음에 절망하며 차라리 포기하는 마음이 들 때마저도 있는 사람들이 부부란 것을...

설마, 나만?

설마가 나만 잡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지인과 그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아이들, 남편, 시가와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어느 면에서는 일부러 그렇게 맞춘 것처럼 꼭 닮은꼴에 진저리 쳐질 때도 있었다.

"다들 그냥저냥 비슷하게 그렇게 사는 거지 뭐."

결론은 특별한 사이랄 것도, 우러를 만큼 대단한 사이도 아닌 것이 가족 관계라며 애써 위안삼을 때도 있었다.

종종 생각한다.

특히, 그 부부 사이라는 것, 넘기 힘든 수미산보다도 높은 사이, 요망하고도 가증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그런 사이가 아닐까 하고.

물론 다행히, 항상 그렇지도 않기에 이렇게 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무슨 생각으로 '부부의 날'을 만들었을까?

개인적으로는 둘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그 발상이 조금 의아하긴 하다.

가끔 내게

"당신은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야."

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나 또한 복사해서 붙여 넣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나 천생연분이라니.

서로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들끼리 만나 기어이 결혼을 하고야 말았으니 이보다 더 이상적인 부부가 있을까.


찰나인 것만 같은 12년의 결혼 생활, 나는 무얼 바라 살고 있는 걸까?

'남'이었다가 '님'이 되고 그 님께서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까지 곤두박질치게 되는 경우는 또 얼마나 많은가. 

꼭 어떤 법적인 절차를 거친 후에라야 가능한 것도 아니다.

당사자 두 사람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때론 남에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전부가 아니다.

명목상은 '부부'라는 허울 속에 있지만 정말 상대가 어떤 속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지, 나에 대한 진심이 무엇인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때 지독한 타인처럼 느껴지곤 한다.


부부라고 해서 가까운 사이일까, 부부이기 때문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는 안 된다.

부부라고 해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해 줘야 할까.

부부이기 때문에 무조건 받아들이고 이해해서도 안 된다.

어쩌면 그런 일들을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내지는 '최소한의 양심'의 문제로 인지하것을 둘째로 치더라도 종종 각성하고 살아야 하지는 않을까.

결국 아무리 부부 사이라지만 발버둥 치며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써본다 한들 내가 결코 상대가 될 수 없음을, 상대 또한 내가 될 수 없음을.

결혼 전에 깊이 생각해 보아야 했을 일을 뒤늦게서야 깨달은 어리석은 이에게 유독 의구심이 많이 든 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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