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준 적은 없지. 저번에도 내가 풀어준 게 아니고 사슬고리가 벌어져서 풀린 것이었고."
"풀어주지 그래요?"
"내 강아지도 아닌데 맘대로 그럴 수는 없지..."
"불쌍하잖아요! 그냥 풀어줘요."
"나도 불쌍하게 생각해. 그렇다고 주인이 있는 개를 내 맘대로 풀어주면 안 되지. 잃어버리면 내 책임이고."
"선생님이 데려다 키우면 안 돼요? 주인한테 말해서요..."
"어떻게 남의 개를 달라고 할 수 있겠니? 만약 그렇다고 해도우리 집에 강아지 두 마리가 있다고 했잖아. 다른 강아지를 보면 엄청 짖어대는 데다 크기도 너무 차이가 나서 더 무서워하고 싫어할 거야."
아이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생각을 한 마디씩 보태가며 대화를 계속 이어가려고 했지만 난 수업을 계속하자며 흰둥이 이야기를 중단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집에서 기르던 황구가 있었는데 1년 정도 함께 살다가 팔려 갔던 다른 강아지들과 달리 그 녀석은 이후에도 한두 해를 더 함께 살았다. 메리라는 이름의 암컷 강아지는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고 그동안 키워 본 개들 중 가장 덩치가 컸다. 그 시절에 개는 당연히 마당에서 묶어서 키우는 가축이었고 목욕을 시킨다는 개념도 없었으니 자라면서 개의 몸과 개집 주변에서 냄새가 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언제부터인가 냄새가 심해지기 시작했는데 이전에 맡았던 냄새와는 뭔가 다른 비릿하고 역한 냄새였고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져서 메리 옆에 가면 숨쉬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어느 날 나를 보고 꼬리 치며 좋아서 점프하는 메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목덜미의 털을 만졌던 나는 "아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축축하니 손에 묻어나는 게 뭔가 하고 봤더니 핏물이었던 것이다.
"할머니! 할머니이이이!"
나의 외침에 방문을 벌컥 열고 나온 할머니에게 메리 목에서 피가 난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메리는 우릴 보고 펄쩍거리며 뛰면서 웃는 표정으로 헥헥거렸고 한 번씩 도리질하며 머리를 털 때마다 비릿한 냄새가 진동했다. 간신히 메리의 머리를 붙들고 보니 꽉 조인 목줄 주변의 털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것이 보였다.
목과 줄 사이에 빈틈이 없어서 가죽으로 된 목줄을 자르는 일은 꽤나 조심스럽고 어려웠다. 커다란 가위를 보자 겁을 먹고 계속 목을 돌리며 피하는 메리를 간신히 붙들고 목줄을 자르고 보니 줄이 살을 파고 들어가 피부가 벗겨지고 핏기가 도는 진물이 흐르고 있었다.
목줄이 풀린 녀석은 아픈 기색도 없이 그저 좋아서 폴짝폴짝 뛰었고 나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얼른 방에서 연고를 가져왔다. 할머니는 상처 난 곳에 바르는 항생제 연고를 매리의 목에 발라주며 혀를 끌끌 찼다.
"시상에 얼마나 아펐겄냐. 이렇게 된 줄도 모르고 맨날 냄새난다고 뭐라 그랬재. 짠허다이..."
철물점에서 새 가죽끈을 사다가 헐렁하게 목에 둘러주고 한동안 열심히 약을 발라주었더니 매리의 목에 난 상처는 금방 나았다.
오랜 세월 동안 잊고 살았던 그 목줄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한 TV 프로그램에서 떠돌이 개에 대한 제보를 받고 구조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고 나서였다. 그 개는 무슨 이유로 강아지 시절부터 오랫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고 몸이 자라면서 어렸을 때 착용한 목줄이 너무나 꽉 조여서 한눈에 봐도 숨쉬기조차 힘들어 보일 지경이었다. 결국 구조가 되고 짓무른 피부의 치료를 받게 된 그 개를 보면서 몇십 년 동안 잊고 있었던 메리에 관한 기억이 떠올라 가슴 아팠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이었고 보신탕집이 성행하던 시절이었다. 동물권에 대한 개념도 없었고 반려동물이라는 생각도 없었다. 개는 그저 마당에서 살며 집을 지키는 가축이었다. 개고기 먹는 사람들을 혐오했고, 개를 좋아하고 예뻐하면서도, 개를 대하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우리 가족은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메리를 어딘가로 팔아버렸다. 어딘지는 미루어 짐작했지만 나는 애써 묻지 않았다. 그리고 아마 나는 그때의 기억이 고통스러워서 무의식의 창고 속에 꽁꽁 숨겨버렸을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서야메리와 비슷한 대우를 받으며 나의 어린 시절에 함께 살았던 여러 강아지들이생각나면서 미안하고 불쌍한 마음과 걷잡을 수 없는 슬픔에 휩싸이게 되었다.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많은 프로그램들을 접하게 되면서 다시 의식의 수면으로 떠오른 아픈 기억들이다.
그때는 정말 몰랐다, 그들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생명체라는 것을, 그들에게는 나와 나의 가족이 세상의 전부였고 늘그리움의 대상이었다는 것을...
아기였을 때는 하루종일 끌어안고 놀며 예뻐하더니 몇 개월 자라자 갑자기 목줄을 채워 묶어두고 자유를 빼앗아버렸다. 어쩌다 한 번 쓰다듬어 줄 뿐 놀아주지도 않았던 야속한 나를 한없이 기다렸을 가엾은 강아지들.
가까이 가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고 눈이라도 한 번 마주치면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시했었다. 그러나 가족인 줄 알았던 사람들은 그들을 무자비한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다.
오로지 한 가족만을 마음에 품었던 그들은 그렇게 버림받고 잊혔다.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는 그들을 잊어버려야 했고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았다.
흰둥이의 목줄은 넓고 두껍고 튼튼하며 가죽으로 되어있다.
우리 집 마당에서 키웠던 모든 진돗개들의 목줄도 똑같은 가죽끈이었다.
어느 날 흰둥이의 목덜미를 만져주며 슬쩍 가죽줄과 목의 틈 사이로 손을 넣어보니 아직은 나의 세 손가락을 나란히 붙여서 절반쯤 밀어 넣을 수 있지만 더 여유공간은 없었다. 흰둥이의 성장이 지금 상태에서 멈춘 거라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더 몸집이 커진다면 목을 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죽끈에 뚫린 구멍의 자리가 여유분이 있어서 한두 칸만 뒤로 움직이면 되겠지만 버클 부분을 젖혀서 열려면 어쩔 수 없이 꽉 잡아당겨야하고 흰둥이가 몸부림쳐서 놓치는 일이 생기면 안 될것이기에엄두가 안 났다.
집에 돌아와 이리저리 궁리를 하다가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흰둥이의 목줄을 조금 느슨하게 해 달라는 글을 타이핑해서 A4용지에 출력했다. 밥을 주는 사람이 있으니 분명히 볼 것이라고 생각하며 흰둥이집 바로 옆 벽에 붙여놓았다.
열흘이 지났지만 투명테이프로 고정해 놓은 종이는 그대로 붙어있고 흰둥이의 목줄도 그대로이다.
글자를 더 크게 하고 색깔펜으로 강조해서 표시라도 해야 하나? 혹시 못 봤을 수도 있으니 기둥에도 붙여놓을까? 만약 글을 읽었다면 종이를 떼어냈겠지? 혹시 기분이 나빴을까? 나의 쓸데없는 오지랖인가?...
사람들에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다.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남의 생활방식이나 사고방식에 끼어들어 참견하는 것도 꼴불견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런 선택권이 없는 동물들에게 주어진 생활환경에 대해 보호자들이 (진정 보호자라면)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져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사람에게나 신경 쓰시오!"라고. (정말 나에게 그런 식으로 공격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인가?
흰둥이를 보면서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고 싶다. 그저 나를 보고 반가워하며 꼬리 치는 그 아이의 행복한 표정에 나도 기뻐하기만 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