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삐에게 뭔가 큰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밥도 잘 먹지 않았고 갈수록 머리를 조아리듯이 끄덕끄덕 움직이는 증상이 심해졌다.
활발하게 뛰어놀지도 않는 그 작은 강아지는 마루 밑이나 부엌의 부뚜막 옆에 웅크리고 있었고 누군가 사람이 나타나면 비틀거리며 일어나려다가 자리에 다시 주저앉곤 했다.
그러면서도 희진이 눈앞에 보이면 기어이 일어나 다가왔고 꼬리를 흔들었다.
듬성듬성 빠지던 털이 점점 더 많이 빠져서 이젠 대머리가 되었고 머리에 붙여놓은 거즈에는 진물과 약이 뒤엉켜 꼭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아 지저분해지고 냄새가 났다.
가축병원에 데려가봐야 하는 게 아닐까 말해보았지만 할머니는 돈이 없다고 했다.
"큰 병이 든 것 같은디... 병원비가 많이 나올 것이여. 하숙생도 많이 떨어져 나갔고 남은 학생들도 방학이라고 다들 시골집으로 내려가브러서 집에 돈이 없어야..."
2학기가 되자 시골학교에 다니고 있던 사촌 오빠가 와서 함께 살게 되었다.
내년에 중학교 진학을 광주에서 하려고 미리 올라온 사촌 오빠 혁은 희진보다 한 살 위였다. 시골 국민학교의 선생님인 고모네 가족은 관사에서 살고 있었는데 농번기나 방학 때마다 집에 오는 사촌들과 노는 것은 희진에게 가장 즐거운 일이었다.
어느 날 사촌 오빠는 희진에게 뽀삐를 내다 버리자고 말했다.
"어떻게 그래? 너무 불쌍하잖아..."
"저거 곧 죽을 것 같은데? 많이 아파 보여. 집에서 죽는 걸 보는 게 너는 좋겠냐?"
희진은 할머니에게 뽀삐를 병원에 데리고 가자고 몇 번 졸랐지만 그럴 형편이 안 된다는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혁이 말대로 갖다 버리는 것이 낫것다. 사람도 병원 갈 돈이 없는디 무슨 똥개를 병원 치료를 한다냐. 간단히 배탈이 난 것도 아니고 머리는 계속 떨고 다리에 마비가 왔어야. 잘 먹지도 않고 곧 죽게 생겼다."
"그래도 어떻게 버려? 살아 있는데. 불쌍하다고!"
이야기는 늘 희진의 한바탕 울음으로 끝이 났다.
학교에 갔다 오면 희진은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는 피아노 학원에 다녀왔고 돌아오면 골목으로 나가 해가 질 때까지 친구들과 뛰어놀았다. 고무줄놀이, 공깃돌, 땅따먹기, 술래잡기를 하며 실컷 놀다가 집에 들어오면 저녁밥을 먹고 학교 숙제를 했다.
잠자기 전까지 텔레비전을 보거나 사촌 오빠와 보드게임을 하느라 바빠서 병든 강아지 뽀삐를 향한 관심이 차츰 멀어지고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친구들이 집에 올 때마다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뽀삐의 존재가 차츰 부담스러웠다.
"희진아, 너네 개 왜 저래? 어디 아파?"
"야, 냄새난다. 다가오지 마, 징그러워!"
친구들은 강아지를 병균 보듯 했고 희진은 창피했다. 그러다가 덜컥 죽으면 어쩌나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희진의 생각을 알 리 없는 강아지는 희진이만 보이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려고 했다. 걷다 앞으로 고꾸라지고 일어서다 다시 넘어지면서도 절뚝거리며 희진을 쫓아다녔다.
어느 일요일 오후, 희진은 사촌 오빠인 혁이와 함께 뽀삐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플라스틱 재질의 구멍이 뻥뻥 뚫린 시장바구니에 담긴 작은 강아지는 바구니의 판판한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흔들거리는 장바구니 안에서 한 번씩 힘없이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렸다. 희진과 혁은 장바구니의 손잡이를 하나씩 잡고 말없이 걸었고 냇가에 이르자 자갈밭에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혁이 강아지를 들어 올려 자갈 위에 내려놓았다.
뽀삐는 낯선 장소의 냄새를 맡느라 정신없이 자갈 사이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며 한 발씩 내딛다가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아이들이 천천히 발걸음을 떼자 뽀삐도 따라오며 자갈틈의 물을 홀짝거리며 먹기도 했다. 희진의 눈에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가자!"
장바구니를 집어 들면서 동시에 소리치던 혁은 뛰기 시작했다.
희진은 자기도 모르게 따라서 뛰고 있었다. 희진이 뒤돌아 보았을 때 강아지는 아이들이 갑자기 뛰어가는 곳으로 허둥지둥 따라 오려다가 넘어지고 있었다. 희진은 입을 틀어막고 울며 뛰었다.
혁은 희진이 어디만큼 뛰어오고 있는지 신경도 쓰지 않고 혼자서 저만치 앞서 내달리고 있었다. 누군가 뒤에서 쫓아와 곧 뒷덜미가 잡힐 것만 같아 쉬지 않고 달렸다.
희진도 달렸다. 비틀거리다 넘어지며 두려움에 떨고 있을 강아지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지만 그냥 달렸다. 후회와 두려움, 연민의 감정이 소용돌이처럼 몰아쳤지만 뒤돌아보지 않았다.
집까지 한달음에 뛰어들어온 아이들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도 아무 말 않고 아이들과 장바구니를 번갈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린 희진이 할머니의 가슴에 달려들며 울음을 터뜨렸다.
"쯧쯧, 불쌍한 것. 그래도 강아지가 고통받는 것보다는 얼른 죽는 것이 나을 것이여..."
그날 밤 희진은 처음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친구를 따라 가끔 놀러 갔던 교회에서 예배시간에 했던 기도와는 다른 진심 어린 마음이었다.
'하느님, 제발 우리 뽀삐를 살려주세요. 착한 사람이 나타나 뽀삐를 데려가서 치료받게 해 주세요...'
희진은 믿었다, 분명히 누군가 뽀삐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데려갔을 것이라고, 강아지를 사랑하는 마음씨 착한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잘 살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야 울지 않을 수 있었고 더 이상 슬퍼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희진은 매일 뽀삐가 건강한 모습으로 뛰어다니는 상상을 하려고 애썼다. 도망가는 아이들을 따라잡기에는 너무나 연약했던 작은 생명. 죄책감을 털어버리기에는 너무나 선명히 남아있는 희진을 향한 애정 어린 몸짓들...
그것은 열두 살의 희진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깊은 상처였다.
다시 꺼내 보기 두려워 무의식의 깊은 바닥으로 꽁꽁 숨겨버린 채 잊어버려야 할 그 무엇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