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죽과 고구마

아버지는 모르는 할머니의 레시피

by 엘 리브로

어젯밤 자정이 지나면서 격리 해제가 되었다. 그렇다고 코로나19의 증상에서 해제가 된 것은 아니다.

목은 여전히 아프고 음식을 삼키는 것에는 여전히 고통이 수반된다.


쌀밥도 야채죽도 삼키기 힘들어서 밥을 끓여 반찬 없이 먹다가 고구마 라테를 만들어 먹어봤다.

고구마의 양이 많으면 포만감이 더 오래가고 단맛이 강해서 평소에는 이유식처럼 걸쭉한 고구마 라테를 아침 대용으로 만들어 먹곤 했었다.

그러나 되직한 고구마를 넘기는 것은 목구멍을 찢을 듯이 아프게 만들었고 어쩔 수 없이 숟가락을 쓰지 않고 들이마실 수 있을 정도로 만드니 훨씬 나았다. 그런데 그렇게 먹으니 배가 고프다.


저녁엔 다시 밥을 끓이다가 갑자기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찐 고구마의 껍질을 벗겨 듬성듬성 잘라 넣었다. 뜨거워진 고구마는 숟가락으로 쉽게 잘게 부술 수 있고 으깨기도 쉬워 따끈한 고구마 죽으로 변신했다.

찐 고구마보다 부드럽고 밥으로 만든 멀건 죽보다 맛있었다. 숟가락 끝으로 부드럽게 후루룩 먹을 수 있어서 숟가락을 입안에 다 넣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릴 필요도 없으니 목구멍의 통증이 훨씬 덜했다.




어렸을 때 할머니는 가끔 그렇게 흰 밥에 고구마를 넣고 죽을 끓여 주셨다. 그때는 그 죽이 너무나 맛없어서 먹기 싫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달콤한 고구마만 쏙쏙 빼먹고 혼났던 기억이 난다. 그 싱거운 죽은 반찬과도 어울리지 않았고 왜 그걸 먹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제야 짐작해 본다. 어쩌면 그때 할머니도 심한 목감기를 앓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아버지는 내가 먹어 본 흰 죽과 고구마를 드신 적이 있을까? 내 기억엔 없다. 난 아버지의 어머니인 할머니가 키웠지만, 아버지는 아버지의 외할머니 손에서 컸다고 했다.

할머니는 스물다섯의 나이에 일찍 남편을 잃고 혼자서 3남매를 키우며 전쟁을 겪었다. 이후 사업체를 일구고 확장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할머니는 셋째인 나의 아버지를 친정어머니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과거에 대한 얘기를 거의 안 했던 아버지는 치매의 초기 단계에선 종종 그 시절을 회상하곤 했다.

할머니가 사업을 하면서 생활비를 보내주어도 외증조할머니(아버지의 외할머니)는 간장 하나에 밥을 줬다고 했다. 정치사범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살이를 하고 있는 아들(아버지의 외삼촌)의 구명활동을 하기 위해 돈을 다 썼다는 것이다.


어쩌면 고구마 죽을 차려 준 할머니는 몸이 아팠던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미 집안의 가세는 기운 지 오래되었고 변변한 반찬거리가 없었던 것인지도... 내가 기억하는 '흰 죽과 고구마'는 아버지가 기억하는 '맨 밥과 간장'과 같은 맥락인지도 모르겠다.

모르는 것이 많아져버렸다. 추측만 할 뿐 진실에 닿을 수 없는 것들이 많은 이유는 내 질문에 답해줄 그들이 더 이상 곁에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더 많은 얘기를 나눴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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