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요양병원에 들어가시다

쉽지 않았던 선택

by 엘 리브로

더 이상은 입원 치료를 미룰 수 없게 된 아버지의 상태를 동생들에게 말하고 입원을 결정했다.

그나마 동생들과 고모들(아버지의 누나들)이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근무하고 있는 요양병원에 아버지를 모시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입원 일정을 잡고 나서 분주해졌다. 혹시나 의료비 혜택을 받을 수 있을까 해서 이것저것 서류를 준비하고 아버지를 모시고 동사무소에 갔다.

아버지의 은행 통장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을 하나의 계좌로 통합했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렸기 때문에 변경해야 해서 여러 은행에 직접 모시고 다녔다.

"지금 어디 간다고?"

"농협 은행이요, 아빠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셔서 변경해야 돼요"

"나중에 가자"

"제가 일해야 해서 시간이 없어요"

"나 혼자 가면 되지"

"요즘 기운 없다고 집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시잖아요"




입원하시기 몇 달 전부터 아버지는 집에서 거실 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 꼼짝하지 않으려 했다. 음식을 갖다 드릴 때와 화장실 갈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누워만 지냈다. 내가 집에 들어갈 때마다 문을 빨리 열어주지 않아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아파트의 현관문 밖으로 크게 흘러나오는 TV 소리와 내가 누른 벨소리 음악, 문을 두드리며 아버지를 부르는 나의 목소리까지 몇 분 동안 시끌벅적하게 울린 후에야 문이 열리곤 했다. 열쇠를 가지고 다녔지만 잠금장치 꼭지까지 눌러버려서 열 수가 없었고 번호키는 기억을 못 할 것이 분명하니 설치할 수도 없었다.

한동안 씻지 않고 이발도 하지 않고 손톱, 발톱 자르는 것도 마다했다.

미운 일곱 살보다 더 말 안 듣는 심술쟁이가 된 것만 같았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지 돌아서면 또 밥이나 간식을 찾았고 종일 설탕물을 마시느라 설탕을 봉지째 이부자리 옆에 두고 있었다. 하루 종일 설탕물을 마시고 소변보는 것을 반복하면서 방바닥, 이부자리, 욕실 바닥은 끈적거렸다. 온 집안에 들큼한 지린내가 진동했다.

리모델링한 욕실 바닥은 요양보호사가 매일 락스로 닦아서 타일 바닥이 들뜨고 코팅이 벗겨졌다.

어느 날부터인가는 배변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이불이나 바지에 변이 묻어있기도 했다.

아버지의 자존심에 상처가 날까 걱정이 되어 조심스럽게 말하곤 했다.

"아빠, 바지에 뭐가 묻어서 빨아야겠어요."

"신경 쓰지 말아라, 내가 나중에 할 테니까."

"지금 다른 것도 빨아야 하니까 세탁기 돌리는 김에 같이 빨게요."

"내가 이따 돌릴 테니까 그냥 놔둬라."

나중에, 이따, 다음에... 아버지의 단골 멘트다.


매일 방문할 수는 없어서 며칠 동안 드실 과일을 사다 놓으면 아버지는 누가 훔쳐간다고 어딘가에 숨겨두기도 했다. 베란다 구석에서 곰팡이가 가득 핀 귤을 봉지째 발견하기도 했다.

요양보호사가 사다 놓은 반찬거리와 양념들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조리하지 않고는 먹을 수 없는 식재료들도 감쪽같이 없어지고 찾을 수가 없다고 요양보호사는 푸념을 했다. 사라진 음식을 찾기 위해 장롱을 열어봐야 하는 상황들이 연출됐다. 다 먹어버리거나 숨겨놓거나 둘 중 하나였다.




아버지를 입원시키기 전날 집에 가서 설명을 했다. 당뇨 치료 때문에 입원하셔야 한다고. 약을 규칙적으로 드셔야 하고 그래도 조절이 안되면 인슐린도 맞으셔야 한다고...

"내가 집에서도 알아서 약 잘 먹는다, 내가 인슐린 주사 놓을 수 있다, 내가 매일 병원 다니면서 혈당 검사하면 된다..."

아버지의 주장과 나의 설득은 무한반복 재생되는 노래처럼 몇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밤에 잠들기 전에도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낮에 했던 대화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어딜 간다고? 왜? 안 간다. 싫다. 다음에. 내가 알아서..."


입원하는 날 아침, 병동에 약속한 시간보다 두 시간 전에 아버지한테 도착한 나는 또 전날 했던 대화를 반복하다가 지치고 말았다. 누워서 인상만 쓰고 꼼짝도 안 하던 아버지는 "그럼, 입원하지 말고 혈당 검사하고 약만 받아 오시게요~~"라는 말에도 "나중에!"라고 대답했다.

"병원 갔다가 오는 길에 드라이브하고 맛난 거 사드릴게요."라는 말에 겨우 몸을 일으켰다.


여동생이 왔고, 멀리 울진에서 남동생이 새벽에 출발해 늦지 않게 아버지의 집에 도착했다.

동생들의 표정은 어두웠고 몇 날 밤을 잠 못 이뤘다며 초췌한 얼굴들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각자의 마음속에선 슬픔과 죄책감과 안타까움, 연민 같은 감정들이 차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드리면 툭 터져버릴 것만 같은 풍선처럼 가슴은 먹먹한 기운으로 가득 차고 점점 더 팽창하는 것 같았다.


함께 병원으로 가는 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둣 바깥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버지의 반복되는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도 마음은 딴 데 가 있다는 걸 서로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냥 그 순간의 슬픔을 외면하기 위해 무의미한 말들을 하고 있었다.

요양병원의 로비에서 동생들과 아버지는 헤어져야 했다. 팬데믹 때문에 내려진 조치로 외부인은 병동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동생들의 얼굴은 곧 눈물이 쏟아질 듯 인상이 찌푸려졌고, 난 아버지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병실로 모시고 올라가야 했다.


아버지는 병실에서 계속 반복해서 말했다, "여기가 어디냐, 내가 왜 병원에 와야 하냐?"

"아빠, 당뇨가 너무 심해서 치료를 받아야 해요. 곧 점심시간이니까 식사하시고나서 진료받으시게요."

아버지가 생활하게 될 병실은 4인실이었고 옆 환자들은 모두 조용하고 다른 환자들에게 우호적이었다.

그중 아버지와 비슷한 연령에 입원생활을 몇 년째 하고 있는 한 분에게 "저의 아버지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하고 소개를 드렸다.

"어? 아버지? 어!"라고 말하며 한가운데 2개의 이가 빠진 앞니들을 드러내며 활짝 웃는 어르신에게 손을 흔들고, 아버지에게도 "치료 잘 받고 계세요. 나중에 다시 올게요."하고 병실에서 나왔다.

직원들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도망치듯 병원을 나서며 울컥 올라오는 울음을 삼키느라 힘들었다.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생들의 눈가는 빨개져 있었고 여동생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다.


이제 아버지가 빨리 적응하시길 비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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