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된 아버지

아버지의 병원생활 1

by 엘 리브로

아버지를 병실에 두고 도망치듯 병동에서 나온 후 이틀 동안 마음은 온통 병원에 가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인지하고 받아들이고 있을지 추측하느라 나의 머리는 쉴 새 없이 시나리오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병동에 자주 전화할 수가 없었다. 매 시간 매 순간 확인하고 싶었지만 꾹 참아야 했다. 이미 활시위를 떠난 화살을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수는 없었기에...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치매 이전의 아버지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들이 떠오를 때마다 심호흡을 해야 했다.


이틀 후, 월요일. 저녁 근무를 위해 출근했을 때 병동의 문을 열자마자 들리는 고함소리.

"놔! 놓으라고! 안 놔?"

아버지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간호사실 데스크를 지나치며 흘끗 쳐다본 병실 복도의 중간쯤에 덩치 큰 두 남자에게 양쪽 팔을 붙들린 채 주저앉아 소리 지르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순간 눈물이 차올라 앞이 보이지 않았다.


늘 보는 광경, 거의 매일 마주하는 그 장면의 주인공은 내가 '어르신', 'OO할머니' 혹은 'OO할아버지'라고 불렀던 타인이 아니었다.

체격 좋은 남자 간호조무사와 건장한 젊은 남자 환자가 아버지의 양쪽 겨드랑이 아래에 팔뚝을 끼워 넣어 꼭 붙들고 병실로 끌다시피 해서 데리고 들어갔다.

주저앉아 버텨보려는 아버지의 몸은 너무 가벼워서 두 다리가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놓으라고! 집에 간다니까! 저리 안 비켜?!"


"페리돌 원 앰플 인젝하세요!"

Day번 조무사를 향해 빠르게 말하는 수간호사의 감정 없는 목소리가 내 귓속을 파고들었다.

'울면 안 돼. 울지 말자. 괜찮아질 거야...' 나에게 계속 주문을 걸었다.


인계를 받기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수간호사가 말했다.

"쌤, 괜찮아. 다 첨엔 그래. 울 아빠도 똑같았어. 몇 번 저러다 적응하실 거야. "

눈에 가득 차오른 눈물이 흘러내리기 직전에 얼른 고개를 숙여 인계노트로 시선을 돌렸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때문에 마스크의 안쪽이 축축해졌다.




내가 쉬었던 이틀과 그날 낮동안의 환자들의 상태변화, 검사 결과 수치 등을 듣고 있는 동안 아버지의 고함소리는 잦아들다가 멈췄다. 진정제인 페리돌을 주사 맞고 잠이 든 것이다.

인계가 끝나고 병실 순회를 하면서 아버지를 봤다.

양 손목을 침대 머리맡 난간에 묶인 채 입을 벌리고 태평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는 아버지...

"이제 막 잠드셨으니까 조금만 이따 풀어드릴게요..."

옆에서 같이 병실을 둘러보던 조무사가 말했다.

복도에서 질질 끌려가던 모습과 달리 너무나 천진스러운 표정으로 단잠을 자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었다.

아이처럼, 실컷 뛰어놀다 지쳐서 누가 업어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에 빠진 아이처럼, 푹 자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이제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낯 선 것이었다.


나의 오후 근무가 끝나는 밤 10시까지 아버지는 한 번도 깨지 않고 계속 잠을 잤다. 저녁 식사도 거른 채...




다음날 오후에 출근했을 때 다시 만난 아버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숟가락 드는 것도 힘들어할 만큼 기력이 없었다. 아침에 간신히 죽을 몇 수저 떴고 낮에도 죽을 드셨다는 인계를 받았다.

기력 없이 누워서 허공을 향해 양손을 휘젓고 있던 아버지에게 다가가 말을 걸어도 처음엔 못 알아듣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아부지~~~"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허공을 응시하는 듯한 아버지의 멍한 눈빛을 보았다.

아버지의 바로 코앞에 얼굴을 들이대고 마스크를 내리고 눈길을 맞추자 그제야 "어? 네가 여기 웬일이냐?" 하고 말한다.

"아빠, 저 여기서 일해요. 간호사예요."

"간호사라고? 네가? 그럼, 여기가 병원이라고?"

"네. 병원이에요. 아빠 당뇨병 치료하려고 입원하신 거예요."

"나 여기 있는 걸 네가 어떻게 알고?"

"저랑 같이 와서 입원하신 거예요. 깜박 잊으셨나 봐요."

"그래?... 근데 넌 여기서 뭐 하고 있냐?"


아버지와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었지만 난 바쁜 간호사였다.

"아빠, 저 얼른 다른 환자 보고 다시 올게요."

아버지의 입원 기간 동안 그 말을 지켜본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는 상태가 위중한 환자가 아니었으므로 항상 나의 우선순위 밖이었고, 급한 다른 일을 처리하다 보면 아버지의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다.

30분 동안 100명의 환자에게 인사를 하고 안색을 살피고 인계 시간에 들었던 내용들을 확인해야 했다.

병실을 한 바퀴 돌고 나면 매일 기록해야 하는 정해진 시간대별 환자 상태 기록을 했다. 특별한 변화가 없는 대부분의 환자는 거의 매일 비슷한 멘트를 복사해서 붙이는 식이지만 환자 한 명 한 명 클릭해서 입력하는데 한 시간이 소요됐다. 조금이라도 건강 상태의 변화나 행동, 데스크에 다가와 말로 표현한 내용이 있으면 꼼꼼히 기록했다.

그러고 나면 저녁식사 시간이다. 간호사 1명과 조무사 2명이 환자들의 식사 배식과 식사보조, 식사량을 체크하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병동을 누비고 다닌다.


배고프다며 한밤중에 간호사실로 찾아온 아버지에게 동료 간호사가 건넨 두유를 드시고 맛있다며 미소짓는 아버지

매일 아버지를 만났으나 아버지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은 몇 분도 안 됐다.

그것은 다른 환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인력은 너무나 적고 할 일은 산더미였으며, 상태가 급격하게 나빠지거나 주시해야 하는 환자들 몇 명을 돌보는데만 해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주일에 한두 번 아버지의 집을 방문했을 때 보다 오히려 아버지의 얼굴을 보기가 더 힘들었다.

내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집에서 만든 간식거리나 과일을 담아 매일 갖다 드리고 빈 그릇을 챙기면서 잠깐 얼굴을 보는 것, 식사시간에 잘 드시는 반찬이 있으면 하나 더 챙겨드리는 정도였다.


'아빠, 그때는 그것이 최선인 줄 알았어요. 죄송해요, 아빠...' 너무나 늦은 후회가 수시로 엄습해 왔다.

남들보다 30분만 더 일찍 출근해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눌걸...

남들보다 30분만 더 늦게 퇴근하고 팔다리라도 주물러 드릴걸...

대학 졸업한 지 28년 만에 신규 간호사로 일하느라 모든 것이 서툴고 적응하는데 정신없었다

수간호사의 서슬 퍼런 눈길을 의식하느라 아버지의 병실 쪽은 일부러 가지 않기도 했다. 일반간호사보다 한 시간 더 남아 일하는 수간호사에게서 벗어나려는 듯 교대가 끝나면 정신없이 병동을 벗어나기 급급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기만 했던 아버지와의 시간...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나의 시간은 다른 차원에서 흐르는 것처럼 살았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아버지는 이미 나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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