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감사일기를 쓰면서 인생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성공한 사람들의 말과 글을 통해서 수없이 접했다.
'그래 나도 이제부터 감사일기를 쓰자!'라고 다짐하기도 수십 번.
'감사일기를 쓰면 내 삶이 달라질 거야, 지금보다 훨씬 행복해질 거야.'
그러나 나는 감사일기를 쓰지 않는다. 쓰겠다고 작심은 했으나 실천은 없었다.
그러니 나의 삶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나의 마음은 예전보다 여유로워졌고 충분히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감사일기를 쓰지는 않았으나 수십 번 다짐하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00를 해야 돼', '00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네', '00를 했어야 했는데 오늘도 못했어, 역시 난 안돼...'
그동안 강박적으로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나열하며 그것을 다 해내지 못한 나를 질책해온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늘 시간이 부족했다. 다른 사람들은 직장에서의 업무도, 집안 살림도, 취미생활도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허둥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직장생활 하나만으로도 버거웠고, 하고 싶은 일들은 많았으나 시간도 체력도 안돼서 시도조차 할 수 없다며 현실을 원망했었다. 그것이 나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으나 진심은 아니었다.
내가 힘들게 일하면서도 그만둘 수 없는 것은 남편이 많이 벌지 못해서이고, 내가 남편을 선택한 것은 불우한 가정환경 탓이고, 내가 잠시도 쉬지 못하는 것은 집안일을 돕지 않는 가족 때문이라고...
나는 늘 그렇게 외부의 탓만 하고 살아왔다.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아우성치는 나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겉으로는 입을 열어 도움을 청하지도 않고 말이다.
'무언가 잘못됐다.' '이러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다.' '먼저 살고 봐야겠다.' 하는 생각들이 순차적으로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난 일을 그만두었다.
직장을 그만 두면 그동안 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는 모든 것들을 다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시간이 부족했고, 하고 싶었던 것들의 절반도 못하고 하루가 저무는 날의 연속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두 달만에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시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일주일 전에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사를 하는 과정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갑자기 올라버린 금리 때문에 전세가 나가지 않았고 새집으로 이사를 한 뒤에도 계속 마음은 불안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갖기로 했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를 펴고 '감사할 일'을 적지는 않았다.
그저 깨어있는 시간 동안 불편한 마음이 올라올 때마다 '감사'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빚더미에 앉게 될지도 몰라...라는 불안한 마음을 '감사'라는 글자로 눌렀다.
감사할 일은 많았다.
새 집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도, 창밖에 늘 푸른 소나무 숲이 보이는 것도, 나의 강아지가 새 집에서 금방 적응한 것도, 뜻 밖에도 이전 동네에서 강아지 산책 중에 알게 된 이웃을 새 아파트에서 이웃으로 만나게 된 것도...
전세가 안 나가는 집에 리모델링 비용까지 들어가면서 통장의 잔고가 바닥을 보이려 할 때도 초조해지는 마음을 붙잡았다.
'괜찮아, 난 다시 일할 수 있잖아. 일자리를 다시 구할 수 있을 거야.'
어쩌다 보니 세금 문제에 걸려서 이전 집을 팔 수가 없게 되어 빚더미인 두 채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감사해야지, 나에겐 집이 있잖아.'
이사 온 단지 내에서 바라본 오후의 숲
걱정 대신 감사하기로 했다.
전세는 안 나갔지만 월세입자가 나타났다. 빚의 일부를 갚을 수 있게 되었다. 이자 감당의 몫을 줄이기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내가 다시 일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니 감사하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서일까? 아니면 집 터가 좋은 건지도...
이사 온 후로 잠을 잘 잔다.
평생을 수면부족으로 힘들어했는데, 쉽게 잠 못 들고 자주 깨던 내가 요즘은 금방 잠들고 아침까지 잘 잔다.
잠이 부족하면서도 잠을 더 줄여가며 무언가를 배우려 하고 읽으려 했던 습관도 버리기로 했다.
'00를 해야 돼', '00를 했어야 했는데 못했어.'라는 생각도 버리기로 했다.
내가 강박적으로 만들어낸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고 나니 홀가분하다.
거실 창밖으로 보이는 소나무 숲
앞으로도 난 하고 싶은 일들에 도전을 할 것이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해내기에는 하루가 모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