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정리를 하다가 대학 1학년 때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펼쳤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여름의 이야기들과 전혀 기억나지 않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나는 남자 사람 친구로 여겼으나 나를 여자 사람이 아닌 여자 친구로 만들고 싶어 하는 그들과의 대화, 중고등학교 다닐 때 단짝이었다가 서로 다른 대학에 진학하면서 소식이 뜸해진 친구와의 해후, 어쩌다 한마디 건넸는데 쌩하니 찬바람이 돌던 엄마와의 대화가 생생하게 적혀 있었다.
한참을 추억에 잠기며, 기억을 더듬어가며 페이지를 넘기다 보니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툭 튀어나왔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에는 없었던, 나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시절의 이야기들과 아버지의 사랑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온화한 듯하면서도 엄격한 기준이 있었고, 선택이나 결정의 상황에서는 누구의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했다. 집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무심해 보였고 속마음을 내비치는 대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한은...
그런데 내 손으로 쓴 일기장에는 나를 향한 아버지의 염려,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 중 어느 날 아버지와의 대화 내용은 이랬다.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불편하면 따로 나가서 살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씀에 나는 그냥 참아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신경 쓰시는 게 오히려 더 힘들어요..."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어른들의 일을 네가 이해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는 없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묵묵하게 있는 걸 많이 보아왔고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부자연스럽게 지금 나갈 필요는 없어요. 전 이 집이 좋아요. 엄마와는 잘 못 만났다는 생각 외에 원망은 없어요."
아버지와 뭔가 내면의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는 방학 중에 서울에서 잠시 내려온 친구를 따라 서울에 간 것이었다. 친구 집에서 자고 놀다 오겠다는 나를 말리려는 아버지의 말을 내가 듣지 않았다. 그때까지 서울에 한 번도 가본 일이 없었던 나의 안전을 걱정한 것인 줄 알고는 있었지만, 같은 이유로 대학을 서울로 보내주지 않은 아버지에게 시위라도 하듯 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다음에 가거라!"
"늘 그러셨잖아요. 오늘이 그 '다음'이에요!"
허락을 구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셨는지 아버지는 결국 차비를 주셨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 나에게 집에서 나가서 살고 싶으냐고 물으신 것이다.
그랬을까? 정말 원망의 마음이 없었을까? 아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얼음처럼 차가운 엄마와의 숨 막히는 신경전에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까지 가세해서 매 순간 분노로 폭발할 것만 같았다. 나에게 그런 인간관계를 맺어 준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컸다. 그런데도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와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매일 나를 보러 할머니 집에 들렀던 아버지와 아무 죄 없는 동생들을 생각하면서 내색하지 않고 참았다.
밖으로 내놓지 않은 원망의 말들은 나를 잠식해 갔다. 그런 태도는 결혼 후 남편과 시댁과의 갈등에서도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듯하며 참아내고 안에서 꼭꼭 다져져 무거운 돌덩이처럼 나를 짓누르게 만들었다. 어딘가에 내놓고 달래주어야 했던 나의 증오심(더 이상 엄마만을 향한 것이 아닌...)은 나의 가슴 어느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점점 덩치를 키우고 있다가 결국은 나를 공격했다.
다행히 그것이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나는 주위에 도움을 요청하고 극복할 수 있었다.
일기장을 읽고 나서 나의 기억이 모두 맞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걸 새삼 확인했다. 기억의 왜곡은 어느 시점에서나 있을 수 있다. 유년기의 첫 기억에도 나의 감정이 덧 씌워진 것이리라.
아버지는 내가 생각해 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나를 염려했던 것이 분명하다. 고등학교 때, 그 당시에는 학기 초에 담임 선생님이 모든 학생들의 가정을 방문했었다. 가정환경, 학습여건 등을 살피기 위해서였는데 낮 시간에 이루어지는 가정방문에 집집마다 어머니들이 다과를 차려놓고 선생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아버지는 가정방문 날이면 회사에서 조퇴를 하거나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집에 들어와 담임을 맞이했다. 철없던 나는 그것이 창피했지만 아버지의 사랑법이라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동생들에게는 보여주지 않은 다른 방식의 사랑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서야 마치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처럼 명확하게 보이는 것이 있나 보다. 나에게 상처를 준 엄마는 사실 나보다 훨씬 더 깊은 상처를 받으며 살았던 나약한 존재였을 뿐이라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아침, 아버지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기 직전 꿈속에서 아버지의 진화를 받았다.
"잘 지내냐?"
"그럼요, 잘 지내죠. 아빠는요? 어쩐 일이세요?"
"나야 잘 지내지. 너네 집에 가보고 싶은데 괜찮냐?"
"당연하죠! 제가 모시러 갈까요?"
"아니다. 주소만 알려주면 알아서 가마."
순간 나는 아버지의 차를 폐차했다는 것을 기억했고 나의 집까지 버스 노선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