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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희 May 03. 2022

아버지의 그림일기

아버지가 남기고 간 것들...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또 보고 닳도록 들여다봤다, 휴대폰에 저장해 둔 아버지의 모습들을.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며 가쁜 호흡을 쉬던 아버지의 짧은 동영상을 보다가 금세 눈물이 가득 고여 아버지의 얼굴이 흐려지곤 한다.

"아빠, 쉬고 계셔요. 또 올게... 항생제 맞고 영양제 맞고 계시니까 곧 나으실 거예요."

아버지는 지친 표정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것이 마지막일 줄 알았다면 종일 손을 잡고 옆에 앉아있을걸... '상태악화 면회'라는 이름으로 허락받았지만 사실 면회가 금지된 상황에서 유일하게 직접 아버지를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믿었을 뿐, 정말 상태가 갑자기 나빠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오늘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아버지가 남긴 흔적들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에 주고받은 이메일이 생각나 편지함을 열어보니 다행히도 버리지 않고 보관해 둔 것이 있었다.

평생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마음속 이야기였다. 내가 보낸 긴 글에 달린 아버지의 긴 답장이었고 끝에 적힌 문구를 다시 읽으며 또 눈물이 쏟아지고 만다. 그 편지를 읽었던 2007년 2월의 어느 날처럼.

'.... 항상 미안한 마음으로 아빠가.'


가까운 이들에게는 살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정말 미안한 일이 있을지라도 입에서 그 말이 떨어지지 않았고 그저 나의 행동이나 표정을 보고 알아주겠거니 했다. 아마도 아버지도 그랬을 것이다.

그날 아버지의 편지 끝에 적힌 그 문구가 마치 아버지의 마음을 육성으로 들려주는 것처럼 깊은 울림을 주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연민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강아지와 산책하는 모습을 그린 아버지의 그림일기

예전에 썼던 휴대폰의 사진 저장 폴더를 열어보니 아버지의 그림일기를 찍어놓은 것이 몇 장 있었다.

인지치료의 한 부분으로 색연필로 색칠을 하게 하거나 그림일기를 써보라고 요양보호사가 권했으나 처음 몇 달 동안 아버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다.

"유치하게 무슨 색칠을... 유치원생이나 하는 짓을 하라니, 누굴 노망난 노인네 취급하는 거요?"

그랬던 아버지가 어느 날부터 색칠공부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긴 문장은 아니었지만 가끔은 서너 줄씩 일기를 쓰기도 했다. 요양보호사가 보여준 활동지에는 하루 중 가장 즐거웠던 일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강아지와 산책' 이라든가 '화분에 물 주기' 같은 일상이 적혀  있었다.

베란다에서 보이는 뒷산의 풍경을 그린 아버지의 그림


아버지가 직접 쓴 글씨와 색연필로 그린 그림을 챙겨둘 걸 그랬다. 한동안 열심히 하던 활동을 치매가 심해지자 그만둬 버리고 매사에 흥미를 잃어버렸던 아버지. 아버지의 머리맡 탁자 위에 노트며 수첩들과 함께 먼지를 둘러쓴 채 쌓여있던 종이뭉치들이 어느 날 다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사진으로라도 아버지의 필체와 그림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베란다의 화분을 보고 그린 아버지의 그림




고인의 유품을 49재를 맞아 탈상하면서 모두 태우던 예전의 풍습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고 함부로 소각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한다고 하니 애써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아버지가 생전에 즐겨 쓰시던 물건을 소각하여 저승으로 함께 올려 보낸다는 의미 같은 것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생전에 입으셨던 것은 요양병원 생활중에 입은 환자복이었고 입관절차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환자복을 입은 채로 영면했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소유했던 물건들을 재활용을 위한 분리수거함에 넣거나 기부하고 나니 안경만 남았다.

아버지를 표현한 것, 아버지가 세상에 왔다가 갔다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안경 ; 무거운 유리알을 고집하셨던 아버지의 마지막 안경이지만 백내장이 심해서 거의 쓰지 못했고 나중엔 백내장 수술로 더 이상 쓸 일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아버지가 세상에 왔었다는 증거는 바로 '나'라는 것을...

내가 살아 숨 쉬고 있고 나의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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