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서로 바쁘다 보니 (아님, 나만 바빴나?) 자주 연락은 못 하고 두세 달에 한 번쯤 톡을 주고받는 대학 동기다.
이사한 이후 두어 차례 만나긴 했지만 전원주택인 친구네 집에서 꽃이며 분갈이 한 화분을 얻어 오느라 매번 내가 친구에게 갔었다. 집 구경도 할 겸 이번엔 친구가 우리 동네로 왔다.
점심 식사 후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우리 동네 흰둥이 이야기를 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자 친구는 바로 "야, 너도 그러고 있어? 나도 얼마 전부터 비닐하우스 옆에 묶여 있는 백구를 날마다 가서 들여다본다..."라며 아침마다 찾아가는 하얀 진도 믹스견에 대해 말했다.
끼리끼리 논다더니...
아침 운동을 하기로 한 친구가 평소 강아지와 산책을 하던 경로를 벗어나 동네를 돌면서 비닐하우스 근처를 지나치게 되었다고 한다. 며칠은 친구를 보고 짖던 개가 매일 인사를 건넸더니 어느 날부터는 짖지 않길래 가까이 다가가서 쓰다듬어주었고 다음날부터 아침마다 고구마를 가져다준다고...
친구도 나와 마찬가지로, 쇠사슬에 묶인 채 추운 곳에서 한겨울의 바람을 맞으며 꼼짝없이 견뎌내고 있는 가엾은 생명을 외면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주인이 있는 개를 어느 선까지 챙겨주어도 되는 건지 고민하고 있었다.
먹을 것을 자주 갖다주다 보면 자기 밥그릇에 있는 것을 잘 안 먹게 되고 혹시나 그걸 보고 개의 주인이 밥을 적게 주면 어떡하냐는 걱정까지 하는 친구가 참 나랑 많이도 닮았구나 싶었다.
"별 걱정을 다 한다..."라고 말은 하면서도 나 역시 비슷한 걸 어쩌랴.
친구가 사는 동네는 도심지에서 벗어난 외곽으로 외지 사람들이 전원주택을 지어 들어와 살기도 하고 잘 가꾸어진 전통가옥들이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는, 한가롭고 고풍스러우면서도 시골 풍경을 품고 있는 곳이다. 그 동네에도 거의 집집마다 개들이 묶여있다고 했다. 10살 된 반려견 시추를 키우고 있는 친구는 매일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있는데 주변에서는 산책하는 강아지를 못 봤다고 했다. 친구는 동네 할머니들 사이에서 '개 데리고 다니는 아줌마'로 불려진다고 한다.
친구가 헤어지면서 말했다, "네가 말한 흰둥이 한 번 보고 갈까?"
"오늘은 안돼. 보기만 하고 쓰다듬어주지도 못하고 돌아오면 너무 마음 아프다고... 그 녀석 흥분해서 뛰다가 똥오줌 밟고 그 발로 내 옷이며 신발을 엉망으로 만들어놔서 오늘은 방수 앞치마랑 팔토시 주문했다."
친구는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흰둥이를 보고 싶다고 근처에 갔다가 잔뜩 기대하며 엉덩이 흔드는 녀석을 그냥 두고 돌아설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친구도 나도 밖에서 밥 먹는다고 외출복 차림인데 그대로 흰둥이에게 다가갈 수는 없어서 다음에 보러 가자고 했다.
흰둥이가 차가운 집이나 시멘트 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이 계속 신경이 쓰여서 지난주에는 집에서 안 쓰는 헌 이불을 가져다 깔아주었다.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줄 알았던 개집은 철판으로 된 것이었다. 며칠 지나다니며 지켜보니 이불을 잘근잘근 씹으며 가지고 놀기도 하고 이불 위에 누워있기도 했는데 집 밖으로 물고 나와서 밖에서 그러고 있기도 하고 누군가 이불을 다시 접어서 집 안에 넣어둔 것을 보기도 했었다.
어느 날 밖에 나와있는 이불을 안에 넣어주려고 집어 들었더니 오줌 범벅이 되어 냄새가 진동하고 그동안 쌓였던 눈이 녹으면서 주변의 물까지 다 흡수한 듯 묵직해진 이불은 추운 날씨에 얼음처럼 차가웠다.
집에서 관급 쓰레기봉투를 챙겨 가서 헌 이불을 담아 버리고는 우리 집 강아지가 쓰고 있는 강아지용 방석을 깔아주었다.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차 안에서 내다봤을 때는 개집 안에서 흰둥이가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퇴근길에 봤더니 개집 밖으로 방석을 가지고 나온 흰둥이가 맨바닥에 엎드린 채 앞 발로 방석을 잡고 주둥이로는 방석 안에 들어있는 솜을 물고 잡아 빼고 있었다. 흰 눈이 내린 것처럼 바닥에 솜뭉치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오, 마이 갓! 아이고 저눔 시키..."
차를 한쪽에 대고 내려서 가까이 가서 보니 방석이 크게 찢어진 것은 아니고 물어뜯어서 작게 구멍을 내놓았다. 뺏어버릴까 하다가 그거라도 가지고 놀게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도 못 하고 장난감 하나도 없이 그저 묶인 채 아무 할 일도 없는 개가 그렇게라도 무료함을 달랠 수 있다면...
이틀 후쯤 다시 가보니 방석은 치워지고 없었다.
나에게 흰둥이는 어떤 의미인가? 난 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그 아이에게 정을 붙여버린 것일까? 그냥 손이나 한 번씩 흔들어주고 지나가면 됐을 것을 뭣하러 차에서 내려서 눈을 맞추고 쓰다듬으면서 정을 키워버린 것인지... 추운 날에는 더 생각이 나고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더 마음이 아프다.
요즘 명절 선물세트를 택배로 받으면서 선물상자가 담긴 부직포 가방을 보고는 흰둥이 집에 깔아주면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안쪽에 은박지까지 덧대어져 있어서 한기를 막아줄 것이기에 주말에 쉬는 남편에게 함께 가자고 졸랐다. 가방을 잘라서 넓게 펼치자는 나의 제안에 남편은 은박지를 찢어버릴 수 있으니 그냥 안쪽에 그대로 두고 가방의 입구가 벌어지지 않게 꿰매자고 했다. 얇은 방석처럼 약간의 쿠션감도 생겼다.
두꺼운 바늘에 튼튼한 실을 끼워서 진지하게 바느질을 하고 있는 남편을 보자 웃음이 났다. 유유상종이다.
평소에는 못 봤었는데 담장 옆에 커다란 삽이 세워져 있었고 남편에게 말해서 똥무더기를 치웠다. 남편을 처음 보는 흰둥이는 짖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기에 바빴다. 사람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 녀석을 설마 보초 세우느라 그 자리에 둔 것일까? 그렇게 사람을 좋아하니 내가 정이 들어버릴 수밖에...
그렇게 남편과 같이 가서 깔아 준 부직포 방석은 하루 만에 다시 가서 보니 집 밖으로 나와있고 한쪽 면이 뜯겨 은박지가 드러나 있었다.
'에고, 내가 못 말려!'
물그릇에 물이 가득 들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가져간 고구마와 간식 껌, 사료 샘플 작은 봉지 하나를 터서 주고 왔다. 며칠 동안 봄날 같던 날씨는 비가 온 후로 다시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고 있는데 녀석은 하나도 안 추운 듯 활기차고 표정이 밝다.
방수 앞치마를 두르고 팔토시를 하고 흰둥이 옆에 갔더니 옷은 더럽혀지지 않았으나 녀석이 내 신발을 밟아서 흙이며 오물을 묻혀놨다.
밖에서 들어오면 늘 킁킁거리며 내 옷의 냄새를 맡는 강아지들이 운동화에서 냄새가 많이 나는지 한참을 코를 박고 탐색한다. 신발도 흰둥이 전용으로 하나를 정해놓고 신어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차가운 바닥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을 흰둥이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데 계속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는가? 다시 이불을 가져다주어도 오물 투성이가 될 것이고 물어뜯어버릴 텐데. 그래도 떨쳐버릴 수 없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규칙적으로 산책만 시켜주어도 집 주변에 배변을 하지 않아 깨끗한 환경을 유지할 수가 있을 텐데...
우리 동네 흰둥이. 흥분해서 뛰어오르다가 기다리라는 내 손짓에 잠시 멈추고 손바닥을 쳐다보고 있다.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많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고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인권이 있듯이 요즘 세상은 동물권을 말하고 있다. 자기가 동물을 싫어한다고 다른 사람이 동물을 위하는 모습을 보고 거리낌 없이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다. 동물을 키우면서 남에게 민폐를 주는 개념 없는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을 다 같은 사람으로 취급하여 반감을 표현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동물을 키우든 안 키우든 생명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존중, 측은지심을 갖는 것이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