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사춘기아들과의 좌충우돌이야기-다시 팔려나갈 전동킥보드(폭립+매실)
금요일 저녁 8시 28분이닷.
딴따라 따라 따라란.(녹차벨소리가 울린다.)
"엄마"
"응?"
"저 지금 학원 마치고 금요일이니깐 친구들 좀 만나고 올게요."
"뭐?"
퇴근 후 소파에 잠시 기대어 있다 눈꺼풀이 뻑뻑하고 잠은 자고 싶은데.
헬스장 마칠 시간도 다가오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다가 문득 시간을 보니.
8시 6분이닷. 아 아들이 학원 마칠 시간이 되었구나.
놀라서 허겁지겁 '아 하기 싫다.' 하면서도
'이 무거운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싶다' 생각할 틈도 없이 냉장고에 든 [폭립]을 꺼내었다.
요즘 공동구매에 맛을 들여 화요일은 핫스폿으로 구매하고, 주말 먹을 것은 금, 토요일에 공구 물품 찾는 날이라 바쁘다.
오늘도 여지없이 퇴근길에 마트에 들러서 공구 물품을 가득 담아 돌아왔었다.
순간 8시만 넘으면 "엄마 배고파"하면서 들어오는 터라 폭립을 꺼내서 요리할 준비를 했다.
"아 이놈의 폭립 어떻게 요리해야 하나"
아들이 곧 들이닥칠 까봐 우선 15분 쾌속 밥부터 안친다.
그리고 폭립을 뜯어서 준비를 하는데.
처음으로 이런 것을 구매했고 요리법도, 외식하면서도 거의 먹어본 적이 없던 터라.
시간은 급하게 흐르고 있고. 하악.
폭풍검색을 하니 훈제로 이미 요리가 되어있는 상태라 데우면 되겠다 싶어서 칼질을 한다.
맘은 급하고 처음으로 해보니 정확히 어떻게 잘라야 할지도 모르겠고.
에라 모르겠다.
급한 맘에 손으로 벌려서도 뜯고, 하다가 안 되는 것은 칼로 뼈를 보고 자르니 생각보다 잘 잘리네.
그렇게 바비큐식으로 해서 '머스터드소스에 먹으면 되겠다'하면서 열심히 프라이팬에 굽고 있는데...
그놈의 녹차벨이 울린 것이다.
순간 너무 화가 났다.
금요일인 것도 깜박한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나고.
이 놈의 자식 마치면 바로 전화해서 '엄마 친구들 만나고 올게요.'한마디 하면 얼마나 좋아.
아. 이놈의 짜식.
그기까지는 오케이다.
반대편 엄마 상태는 생각지도 않은 채 쿨하게 계속 통화를 이어간다.
"엄마 물어보고 저녁준비하면 되지 금요일 학원 마치면 친구들 잠시 만나러 가는 거 아시잖아요."
"어 그래. 아는데 엄마가 금요일인 것도 몰랐다. 그렇지만 너도 마치면 8시인데 바로 전화 주면 좋잖아.
엄마가 이렇게 허겁지겁하지 않아도 되고. 금요일 되면 녹초가 돼. 니도 알다시피 엄마 직장에 바쁜 거 알지?"
"아니 그니깐. 일단 알겠고요. 담에는 전화드리든지 할게요.
근데 엄마..."
아들이 갑자기 화제를 돌리며 말을 끊기에 순간 놀랐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뭐 다시 여드름 치료나 킥보드 얘기 하는 건 아니겠지.'
"엄마 저 때 말한 킥보드요. 누가 살려는 사람이 있대요.
근데 제가 전번에 얘기했죠? 충전이 안된다고요. 그거 언제 고쳐줄 수 있으세요?
내일 당장 고칠 수 있어요? "
역시 직감은 적중.
"얼마에 팔거니? 엄마가 그거 심부름한다고 진이 다 빠진다."
"25만 원 정도에 산대요. 혹시 내일 수리 가능해요?"
"너도 알잖아. 그때도 어린이날도 끼이고 해서 며칠 걸린 거. 주말에 하는지도 모르겠어."
"되면 내일 당장 고쳐줄 수 있어요?
근데 살려는 사람이 2주 정도는 기다려 줄 수 있다고는 했어요."
드디어 현관에 주차되었던 전동 킥보드가 팔려 나가는 건가.
아 근데 너무 짜증이 난다.
이 자식 바로 친구 만나고 온다고만 했어도 그렇게 허겁지겁하지 않아도 될 것을.
소파에 잠시 누워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10분 더 쉴 수 있었을 텐데...
"알겠어. 너무 늦지 말고 들어와."
"네. 엄마 제가 저녁에 조금 늦게 라도 들어가면 알아서 데워 먹을게요."
"아니 이거는 놔두면 뻑뻑해진다고. 알겠다고."(짜증 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학원에서 코피 터지게 공부하는 아이들도 없고 나약하기 짝이 없다고 기말고사 18일 남았다며 공부공세를 퍼부었다.
학부모님 학생들 모두 협조하라고 긴 장문의 문자를 동시에 보내왔고 부모님은 아이 편들지 말고 학생들은 정신 차리고 공부하라는 것이다.
'내가 참자. 그만하자...'(이런 문자도 자주 날아오는데 오늘 저녁은 참자.)
"H야 일어나"
화살이 어만데로 튀었다.
밤새도록 리포트 쓰고 한숨도 안 자고 학교 갔다 온 큰아이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내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었다.
안방문을 활짝 열어서 최대한 바비큐 스모그가 빨려 들어가 훈제 폭립향이 들어가도록 했다.
"배 많이 안 고파?. 내일 또 알바 가야 하잖아. 뭐 좀 먹고 잘까?"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살살 꼬드겨 깨웠다. 잠결에,
"엄마 한번 보고 결정할게요."
'그래 실컷 봐봐'. '정말 먹고 싶은 비주얼이야.'
"엄마가 처음 이런 걸 해봐서 모양은 이상하지만 엄청 맛이 나더라.
네가 좋아하는 머스터드에 찍어 먹으면 될 거야. 어서 나와."
눈을 반쯤 감은 채 향에 이끌려 부엌으로 큰아이가 걸어 나왔다.
하나 집어 맛을 보더니 정말 맛있다고 했다. 불고기 양념을 부어서 조려 줄까 했더니
그냥 먹는 게 더 맛있겠다고 한다.
급하게 헬스장에 가서 20분을 속도 9로 해서 달렸다. 나머지 1분은 속도 13으로 달렸다.
이것은 나의 루틴이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달리는 시간을 줄였다.
달리고 집에 들어오니 큰아이는 정말 곯아떨어져 있었다.
땀을 많이 흘려서 샤워를 한 후 소파에 앉으니 매실 담근 통이 느닷없이 눈에 들어왔다.
'저 밑에 설탕과 매실이 저렇게 분리가 되면 안 되는데...'
검색을 하니 설탕이 바닥에 깔려 있으면 위에 매실이 상할 수도 있으니 자주 뚜껑을 열어 설탕을 뒤집어 올려 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 어떻게 꼭지까지 다 따면서 정성을 들인 매실인데 바로 실행에 옮겨야겠어.'
나는 집에 있는 국자를 다 들고 나왔다.
그리고 열면 안 된다고 알고 있던 매실통 뚜껑을 열었다.
먼저 제일 큰 국자가 휘어질 정도로 힘을 줘서 바닥에 있던 모든 설탕을 긁었다.
이번에는 갈퀴모양의 국자로 긁기 시작했다.
아까보다는 분리가 잘 되는 듯하더니 역부족이었다.
안 되겠다. 내 두 손이 있지 않니. 하하.
팔을 걷어 올려서 손가락으로 모든 설탕을 긁고 분리해 낸 후 빼내었던 매실을 다시 담았다. (정말 팔윗부분까지 깨끗이 씻고 시작한 것이다.)
매실통을 뉘어서 요리조리 굴려보니 역시 바닥에 엉켜있던 모든 설탕들이 시럽처럼 놀고 있다. 성공이다.
아. 누가 보면 잠시 정신 나간 미친년이 매실통 바닥을 손가락으로 긁고 있는 모습을 보셨을 거다.
다 끝내고 나니 바닥에 끈적한 설탕 알갱이들이 엉망이 되었다.
닦을수록 더 퍼뜨리는 형국이네.
다시 샤워를 말끔히 하고 글을 써보려 앉았다.
삐리릭.
아 그 아드님이 등장하시었다.
"엄마 배고파요."
"네가 알아서 해 먹어. 아까 그거는 딱딱해져서 누나가 다 먹었어."
무거운 가방까지 메고서 부엌에 가서 폭립을 냉장고에서 꺼낸다.
'아 내가 글을 안 쓰고 말지.'
화가 난 듯 쿵쾅하는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도 하고 늦게까지 학원 갔다 친구 만나고 온 뒷모습이 안쓰럽기도 하다.
"엄마가 해줄게 기다려."
이번은 두 번째다. 속사포로 칼로 잘라내니 단면이 이쁘다.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구워냈다.
"어떠니?"
"이건 맛있네요."
까다로운 입맛 잡은 폭립 공동구매가 성공한 모양이다.
"엄마 내일 출근하실 때 깨워주세요. 저번에 말한 학교 축구대회 나가요."
거실에 학교대표 축구 유니폼을 던지면서 하는 말이다.
그 비 오던 토요일 아침도 학교 대표로 축구대회에 나간 것이었다.
토너먼트였고 내일은 최종 결정되는 날이라고 했다.
아 이렇게 나의 하루가 저무는구나.
엄마로서 직장인으로 가장으로 나의 하루는 너무나 길고 길구나.
-다음 편에 계속-
(덧붙임글)
드디어 전동 킥보드가 팔려 나가나 봅니다.
다음엔 킥보드 거래 현장까지 따라가서 생생한 보도 해드릴게요.
아들이 힘든 과정을 견뎌내고 기말고사 공부일정표를 만들고 다시 열공모드로 돌입했어요.
똑똑한 누나도 암기에 약한 동생을 위해 사회와 역사 공부를 틈틈이 도와주고 같이
공부한다고 합니다. 저의 버팀목이죠.
저의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인사 올립니다.
이렇게 버티고 살아 나가나 봅니다.^^
행복하고 즐겁고 기쁘고 아 또~ 아무튼 배꼽 빠지게 웃는 주말 보내세요~~~33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