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띠뽈씨(나의 애칭♥)의 출퇴근이야기-아직도 흘러넘치는 사랑의 감정
오후 6시 10분 작은 내 방의 불을 껐다.
그것은 내가 퇴근한다는 뜻이고 오후 내내 들고 있던 약간의 서류들과 통계자료지 들에서 해방된다는 뜻이다.
곧바로 나오면서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간단히 퇴근한다는 문자를 날리고.
혹시 아나?
자기야아아앙.(웬 앙탈. 크크.)
오늘 비도 오는데 한 잔 할까? 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문자라도 올 곳이 있는지.
요즘은 만나자 해도 안 만나 주는 사람들뿐이다.
도통 엄청 바쁜 듯.
"야 나 만큼 바쁘냐?"
혼잣말을 하며 비가 와서, 건물입구 노란 표시구역옆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갖다 놓은 종이박스 떼기를 툭툭 건드려 본다.
아 바깥공기는 이렇게 좋구나.
걍 좋구나. 퇴근하면서 빗물에 섞인 짙은 초록 벚꽃나무잎사귀에서 비리한 냄새와 함께
나뭇잎 썩는 듯한-이게 향기롭다는 것-향이 한꺼번에 코로 스며 온다.
'아 오늘도 하루를 무사히 마치고 나는 살아, 코로 숨 쉬고 있구나.'
집에 있는 딸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저녁에 뭐 먹을까?"
"그러게요. 먹을 게 없긴 해요."
제길 매일 마트에 가도 먹을 게 없다니.
"오늘은 할 일이 많아 식당 가는 시간도 아까워. 마트 잠시 들러 먹을 거 사 갖고 갈게."
"네."
내 딸은 다소곳이 알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 시동을 켜고 퇴근길에 오릅니다요.
지상 도로로 빠져나오니 비가 와서 인지 차가 생각보다 많다.
우리 집을 앞에 두고 직진과 좌회전 신호가 있는데 나는 좌회전을 타야 한다.
근데 차가 막혀서 좌회전 신호가 왔는데도, 그 좌회전 차선에 두대의 차밖에 없어 그 차선에 입성만 하면 통과
인데 직진하는 차가 밀리니 눈앞에 보고서도 코베이는 식으로 그쪽으로 가지 못한다. 에휴.
'야 너 출근 아니고 퇴근이다. 예쁘고 교양 있는 네가 참아라. 우쮸쥬... 흐읍.'
특히 정숙하다가도? 운전석에만 앉으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ㅆ]과 [개새끼]라는 발음을 하며
다혈질로 변하는 욱하는 성격을 나 스스로 누그려 뜨려 본다. 참 잘했어요. 크크.
어김없이 공동구매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들락날락 거리는 G마트에 도착했다.
"아 뭐가 없더라. 어제 삼겹살 새우 김치 볶음하는데 고춧가루가 없었어.
무생채나물하는데 마늘 참기름과 역시나 고춧가루가 없어 고추장을 넣고 무쳤지..."
저녁시간 때라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고춧가루 찾아 삼만리.
아무리 찾아도 못 찾고, 데스크 직원에게 물어서 그 앞까지 갔는데 또 못 찾아 따리. 아 등신.
카트 끌고 지나가는 젊은 직원에게 다시 묻는다.
"고춧가루가 안 보여요."(마치 처음 찾는 사람처럼.)
미소 한가득 머금고 아무 소리 없이 나를 데리고 가서 손으로 가리킨다.
참 얼굴도 예쁘고 키도 크고 미소는 더 예쁜 마트 직원이다. 하앗.
살거리를 다 들고 나와 데스크에 올렸다.
아 아까부터 한번 둘러봤는데, 안 보인다 안 보여.
너 누굴 찾는데? 어 있어 그냥...
산 참기름 참치캔 고춧가루 카프리썬 과자류 갓김치 그리고 래핑카우플레인이
드르륵 드르륵 계산대로 밀려나간다.
아 바로 그때 등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 설렘은 어떡할 것이야.
하. 순간 뭐 이런 느낌이 들었다.
"야 S야 네가 좋아하는 영호 지나간다."
중학교 시절의 그가 내 등뒤에 지나가면 뭔가 나 들으란 듯이 목소리를 내고 간다.
별일도 아닌데 큰 소리를 내며... 멋쩍은 듯이.. 헛기침까지. 으흠...
나는 결코 돌아보지 못하고 얼굴이 빨개져 새침하게 모른 척 걸어간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1초간의 설렘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돌아봐야 하는데 순간 고개를 뒤로 돌리지 못하는 느낌. 아 이건 뭐지... 흐흡.
"안녕하세요?"
그때 먼저 인사를 건넨다. 점장님이시다. 자연스러운 머릿결에 앞머리는 곱슬거리며 제 멋대로 날리고 있는.
그제야 모른 척.
"아 네 안녕하세요. 근데... 저 여기 매일 오는 것 같아요."(세상 수줍... 나 참...)
점장님은 미소로 살며시 대답한다.(40대 후반에 50대 초로 보이심.)
아 나 미쳤나 봐. 이게 뭐람 요즘 공동구매다 뭐다 해서 일주일에 두 번은 기본이고
어떤 때는 연속해서 며칠씩 마트에 오더니 너 혼자 정분(왠 옛날단어가.)났어? 가지가지한다. 정말.
나도 아주 잠시지만 그런 기분을 느꼈다는 게 신기했다. 사랑은 이렇듯 사람을 설레게 한다.
20리터 종량제 봉투에 터질 듯이 산 물건을 담아서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내 동에는 이미 주차 자리가 없어서 짐을 동 앞에 내려놓고 다시 105동 근처로 가서 주차를 했다.
긴 하루다.
컨설팅 업체에서 왔다 간지 거의 한 달 만이다.
그동안 뭐가 달라졌는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수없이 다짐했던 시스템들을 다시 오후에 점검을 했었다.
기획실에 가서 내 의견도 전달하고 중간관리자다 보니 바로 윗 상사 눈치도 봐야 하고 오너 눈치는 말해 뭐해.
아 결론은 오너를 독대하는 것!
오늘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동안의 성과와 새로운 시스템의 장단점을 보고도 하고 허심탄회하게 현 상황을 밝히고 해결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과제는 도움을 청해야겠다.
긴장의 연속이다.
나같이 말보다 글이 익숙하고 긴장을 많이 하고 소심한데도 범인들과 생각의 틀이 조금? 다르다 보니
나 스스로가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아 이럴 때 통계자료다.
조만간 통계 자료 들고 쳐들어 가야겠다. 제발. 생각만 하고 뒷수습 제대로 안 되는 S.
파이팅. 가는 거다. 부딪혀 보자.
종량제 봉투에 든 물건을 옮기려고 하는데 그제야 전화가 오네.
아 이대로 막걸리 한잔 하러 가는 건가.
점심에 직원이 막걸리 3병을 어쩌고 저쩌고 확 그냥... 이 년들을... 약 올리나...
아 비가 오니 못 먹는 술이지만 막걸리에 파전이 땡긴다아아앙.
어느새 집에 도착해 삐리릭~~~ 소리와 함께 현관은 나를 가둬버렸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