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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08. 2023

"과장님 낸 안건이 너무 좋아서 이 시간에 내려왔어요"

띠뽈씨♡의 출퇴근이야기시즌2-아침출근시간에 주차장서 접촉사고 나다.





아침에 눈을 떴다.

어제부터 태풍소식이 있어 비가 오는지 거실 밖 하늘부터 쳐다본다.

전혀 비가 올 거 같지 않은 맑은 파란 하늘에 흰 구름만 두둥실.


어제 늦게까지 작업한, 오늘 있을 부서장회의 발표내용과 통계자료. 그놈의 통계자료... 들.

뿌듯이 바라보며 비닐 투명 파일에 고이 모셔 검은 쌕 가방에 집어넣는다.

(타자가 딸보다 천배는 느려 딸이 도움을 준 것은 비밀로 하자.)


배가 고프다. 이 놈의 배는.

어쩔 수 없다. 김가루와 참깨가루가 인스턴트로 나온 김자반으로 4개의 주먹밥을 입에 우걱거리며 쑤셔 넣는다. 아침시간은 뭘 해도 부족하다.


샤워하러 들어갔다.

오늘따라 늦게 일어난 날은 꼭 거슬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름이다 보니 습해져서 바닥에 샴푸며 바디제품들이 벽에 꼭 붙어 있는데 그 사이로 연한 주황색 얼룩들이 보인다. 그냥 둘 수가 없다. 꼭 바쁜 날, 중요한 날에 이런 것들이 가시처럼 돋아나는 걸까.


나의 눈에 띄었다 하면 그냥 못 넘어간다. 지각이고 뭐고 없다.

이전에 넘치는 힘으로 뜯긴 바디타월로, 걍 사워 하다 말고 바닥에 주저앉아 빡빡 문질러 다 닦아낸다.

닦아내고 나니 개운하다. 대충 비누칠로 샤워 후 출근 준비를 한다.


'아 오늘은 뭘 입어 볼까?'


늘 입던 옷을 입기 싫다. 그렇다고 기분에 따라 튀는 옷을 입고 가면 먼저 와서 기다리는 손님들이 사복입은  모습을 보는 것도 싫다. 나는 드레스룸에서 오랜만에 검은색 리본이 동그란 고리에 X자로 묶이는 원피스를 골랐다.


"아직은 그래도 보기 괜찮은데..."


전신 거울에 비춰보며 오랜만에 입은 원피스가 한층 기분을 업시킨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습니다만아아아아만."


오늘도 엘베비서 그녀는 큰 소리로 열일한다..


지하주차장으로 나오니 뜨거운 바람과 특유의 물기 머금은 비릿한 향들이 코끝을 괴롭힌다.

단숨에 곱게 한가닥으로 묶은 머리를 흔들어 제끼며 차에 올라탔다. 지하 3층에서 지하 2층으로 부드럽게 액셀을 밟으며 지상으로 나왔다.




늘 대던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려고 하니 여름휴가철이서 그런지 빈 공간이 적다. 겨우 자리를 봐놓고 후진을 하니, 뒤쪽에서 갑자기 어르신이 튀어나온다. 게눈을 하고 나를 쳐다보면서 혼을 낼 것만 같다.

뭐라고 할 말을 찾지도 못하는 사이 앞서 지나가셨다.

다시 후진기어를 넣고 큰 기둥이 있는 사이를 통과하려는 순간,


찌이익~~~ 뭔가 이상한 소리가 난다.

차에 붙어있던 문콕 찍힘 스펀지 뜯겨나가는 소리다.

뭔가 불길하다. 내려서 확인하니 스펀지는 뜯기고 쫘악 흠집을 멋지게 내셨다.


이러나저러나 이럴 때가 아니다. 휴.

올해 처음 입는 우아한 원피스를 입고 미친 듯이 달려가는 나...



-다음 편에 계속-



(P.S)


나이가 드니 불길한 일이 생기면 오늘 하루 안 좋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닌가 하는.

예전과 다른 불안함이 생긴다. 이상하다. 점점 그렇게 되는 듯하다. 더 젊을 때는 무슨 징커스가 있어도

그냥 부딪히지 뭐. 그게 뭐 어때서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아침은 중요한 부서장회에서 안건발표도, 7월 통계자료도 한껏 준비한 데다가, 휴가 간 동료를 대신해서

다이나믹한 하루가 예상되어 있어서 마음이 너무 찜찜했다. 그런 데다가 벽기둥에 내차를 갖다 박는 사고까지 내서 더 그렇다. (지금은 다 지나고 나서 편하게 하는 얘기다.)


얼마나 바빴든지, 채널상담이며, 그 외 자질구레한 상담에 모든 업무까지 혼자 껴안으니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고. 쓸데없는 것에 완벽증인 나는 노트에 발표할 순서와 포커스가 무엇인지까지 적어 놓고 틈틈이 보기 시작했다. 내가 발표한 안건이 반응이 나쁘지 않다.


퇴근 직전이었다.


"과장님 낸 안건이 너무 좋아서 이 시간에 내려왔어요. 바로 실행하도록 합시다. 지원해 줄게"




부족한 글들 늘 읽어 주시는 독자님들 고맙습니다. 내일부터 태풍이 온다고 하니 잘 채비하시기 바랍니다.

글 쓸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지만 오늘을 넘기지 않으려고 이 자리에 앉았네요. 먼저 제 자신과의 약속이지요.

여러분 모두와 같이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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