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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ug 22. 2023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랴."

띠뽈씨♡의 직장생활이야기시즌2-하루 안에 일어난 휴가 3일째의 사고





#1


"H야 이리 나와봐.

아무리 찾아도 자전거 탈 때 쓰는 용품이 없어."


아침에 아들 학교에 등교를 시키면서 오늘은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공식적으로 안 탄지는 1년이 다 되어 간다. 작년 가을 임도를 타고 산중턱에서 막걸리와 칼국수를 한 사발 먹은 기억이 마지막이다. 있을 만한 곳은 아파트 안이라 뻔한데 찾지 못하고 딸을 부르니 인강을 듣다가 튀어나온다. 드레스룸, 팬트리, 욕실장과 거실 수납장까지 심지어 세탁실 선반까지 다  훑어 냈다. 혹시나 해서 아들방 서랍장까지 다 뒤져도 안 나온다. 딸은 나오자마자 내가 뒤졌지만 성질이 급해서 마저 확인하지 못했을 물건들을 다 다시 확인한다.


"엄마"


찾았나 보다. 팬트리 컵라면 박스밑에 박스 안에서-복잡하게 얽혀있다-장갑과 팔토시 얼굴마스크와 목 가리개 큰 손수건등 한꺼번에 들고 와서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내가 찾으면 안 나오던 게 꼭 딸의 손에 붙들려 모습을 드러낸다. 아 그러면 신발은 신발장에 있고 안전모도 찾았고. 고글만 찾으면 되겠다. 고글을 찾는데 30여분이 지나도 못 찾자 둘 다 지쳐서 네 동생이 하교하면 물어보자고 했다.


날씨는 점점 뜨거워지고, 물건을 다 찾아놓고 안 간다면 그건 또 엄마 체면도 안 선다. 거실에 서서 바깥 공원을 바라보다가 결국 장비를 챙기고 자전거를 끌고 나간다. 동네 해반천부터 싸구려 자전거를 타고 다닌 지 벌써 근 6년이 다 되어 간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자전거를 타고 새벽 1시까지 미친년처럼 탔다. 가끔 아무도 듣지 못할 구간에 오면 들을 사람도 없으니 맘껏 쌍시옷도 외치며 욕도 했다.(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었다.)


그렇게 오전 10시 52분에 집에서 나섰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끌고 아직도 익숙지 않은, 나에겐 비싼 자전거를 모시고 도로로 나갔다. 마침 신호 대기에 걸려 남들이 일하는 시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을 하고 혼자 횡단보도에 서 있으니 신경이 쓰인다. 실은 아무도 관심이 없는데도 말이다. 안장이 높아서 탈 때 신경이 잔뜩 써여서, 차들이 다 출발하고 횡단보도를 지나고서야 오른발로 페달을 살짝 밀면서 나가다 엉덩이를 안장에 올렸다. 이런 맛에 자전거를 탄다. 더운 여름 바람이 끼쳐오지만 움직이는 자전거로 인해 이는 바람은 시원했다. 보통 늘 타던 시기는 반환점을 16km에서 잡아서 32km 정도 탔었다.


도심을 살짝 벗어나 해반천 자전거도로로 달리니 온 세상이 다 내 세상이 된 듯하다. 오랜만에 타서 그런지 옛날만큼 속도를 낼 수는 없어도 허벅지의 그 찌릿한 그 맛으로 있는 힘껏 달렸다. 오다가 이제 꽃이 피기 시작하는 분홍연꽃을 기념으로 남겼다. 아 오늘은 32km는 안 되겠어. 26km 정도 타고 너무 더워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 횡단보도에 서니 12시 40분이었다.

(좌:벌써 2년이 조금 안 된 사진이다.ㅎ/우:1년전 사진/제일 못 알아 볼 사진과 그나마 체형이 커버가 좀 되는 사진 고르다 보니 저 지경의 사진이 뽑혔다.ㅎㅎ)
(피기 시작하는 분홍연꽃을 위에서 못 잡으니 이쁜 구름이 대신 내 마음에 들어왔다.)
(더워서 더 지체 못하고, 같은 자리를 확대해서 봤으나 바람이 얼굴을 숨겨 주었다.ㅎ)



#2


집에 오자마자 땀범벅이 되어 씻고서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온 딸과 물냉면을 먹으러 갔다. 그때까지는 화기애애하고 좋은 분위기였다. 무슨 일이 생길지 누가 알랴. 곱빼기로 추가하여 먹고는 우리는 북극에라도 다녀온 듯 잠깐 정신이 혼미할 정도의 추위까지 느꼈다. 다시 뜨거운 육수로 속을 달랜 뒤 무료 자판기 앞에 섰다. 종이컵이 없어서 딸이 주방 근처에 쌓아 놓은 종이컵을 1개 들고 와서 커피자판기 밑에 컵을 넣었다.


자르륵. 삐~ 커피를 드니 종이컵이 두 개인 상태로 믹스커피가 나왔다. 딸이 이상하다며 분명히 컵을 한 개만 들고 왔다고 했다. 다시 컵을 넣고 관찰하던 중 자판기에서 자동으로 컵이 나왔던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웃음이 터져서 멈추지 않았다. 살얼음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커피종이컵이 두 개인 상태를 쳐다보며 배꼽 빠질 듯 이유 없이 웃어대며 차에 앉았다.

(좌:왼쪽 후미등 부서진 제일 큰 조각 하나를 풀숲에서 기어이 찾아 왔다.ㅠㅠ/우:살얼음이 정신을 혼미하게 해 우리를 북극에 데려다 주었다는 그 물냉면.ㅎㅎ)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종이컵 두 개를 쳐다보며 배꼽 빠지게 웃고 있던 그 순간. 3분 후쯤 사고가 난다. 저 때는 몰랐지.)


"후진 후진... 후진..."


"쾅... 와장창 다시 쾅..."


전봇대를 보지 못하고  ㄴ자 길가에서 후진하다가 야무지게 왼쪽 후미등을 박았다. 자전거 탈 때도 비탈길에서 반려견과 아저씨를 잘 피해서 무사히 달렸는데...


"H보험이죠. 후진하다가 전봇대를... 본인 부담이 얼마나 되나요?"


"차종 확인하겠습니다. 맞나요? 정확하진 않습니다만 20만 원에서 50만 원 사이입니다. 본인 부담 20% 최저에서 최고가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시 전화드리기로 하고 정비센터에 갔다. 직원이 말했다.


"보험으로 안 해도 20만 원 정도이거나 약간 덜 나올 수도 있습니다. 오른쪽 후미등만 교체하실 거죠?"



#3


'휴가 하루가 왜 이리 길지'


아들 등교부터 하교까지 간식 먹여서 학원 등교까지 시키고(다리가 안 아프면 자전거 타고 가는 아이다.)

다시 집에 왔다. 이제 1년이 지났으니 국번 없이 1350 고용부에 전화를 해봤다. 챗봇에게 물어도 된다 해서 챗봇에게 문자를 하니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여 다시 전화를 했다.


"안녕하세요. 조기 재취업수당에 필요한 서류를 알고 싶어서 문의드립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PC로 들어가서 재직증명서나 근로계약서 둘 중 하나를 제출하시면 이전에 받은 적이 있는 통장번호로 나머지 금액이 입금이 됩니다."


"죄송하지만 그 금액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정확하진 않지만 주민등록번호를 주시면 대충의 금액을 확인해 드리겠습니다."


대충 일곱 자리 숫자의 금액을 확인하고서 미소를 띠며 전화를 끊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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