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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05. 2023

"살갗 위로 따뜻한 체온이 흘러내렸다."

긴 하루를 마감하며 한그루 나무가 된, 잠 오지 않는 밤




 

무심코 내 팔을 오른손으로 천천히 쓰다듬어 보았다. 살갗 위로 따뜻한 체온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이따금 눈에 보이지 않는 가는 솜털이 일렬로 일어서는 느낌이 서늘하게 든다. 천천히 움직이므로 살짝 간지럽기까지 하다. 아 나는 살아 있구나. 새삼스레 내가 살아 존재하는 한 생명체라는 생각에 안도까지 하게 되는 이른 아침의 낯설디 낯선 풍경. 내가 나를 만져 보았다.


월요일이라 정신없이 바쁜 하루였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업무들. 여러 부서들 간의 잡음. 나는 가만히 수면밑으로 가라앉고 싶어졌다. 아니면 한적한 실내수영장 위에서 눈을 감고 떠 있고 싶었다. 귓속으로 알 수 없는 물 흐르는 소리와 마치 먼바다의 파도 같은, 달팽이관속으로 차오르는 물방울들의 소리를 들으며. 그렇게 오늘 하루가 흘러갔다.


종일 나는 무엇을 이토록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지. 내 감정을 내가 붙들고 있는데 내 감정의 소용돌이는 타인을 향해 있다. 온전히 나를 내가 다 가지고 싶지만, 살다 보면 나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우두커니 내 힘으로 잡을 수 없는 나무 한그루가 되어있는 나를 본다. 쳐다본다. 나도 쳐다본다. 누군가 다가와 의미 있는 눈 맞춤을 하기까지.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서 있을 뿐. 그렇게 나는 숨죽여 귀 기울여 본다.


수다스런 웃음소리. 헤이즐넛 속 얼음알갱이 부딪히는 소리. 그 소녀들의 메신저 소리. 그리고 웅크리고 앉아 눈만 껌벅이는 소리. 모두 다 소리를 내뱉고 내 귀는 듣고 있지만 나는 그들과 융합되지 못한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무는 그 자리에 서서 기다린다. 하염없이 말이다. 그 초록잎은 날아서 물 잔 위에 꽃잎이 되고 그 향은 멀리멀리 퍼져가리라. 그 꿈에서 깰 때까지 코끝을 간지럽혀라. 그렇게 오늘 하루도 저물어 갔다.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편의점을 쳐다본다. 그의 아니 그녀 곁에 나도 저렇게 눕고 싶다. 가까이 다가가 코 털을 간지럽혀도 일어날 기색이 없이 잠을 잔다. 냥이의 고단한 잠 곁에 나도 조용히 올라 잠들고 싶어졌다. 그리고 냥이와 깊은 바닷속을 헤엄치고 싶어 졌다. 그리고... 까만 밤이 되었다.

(좌:깊이 잠들어 있는 편의점옆 탁자에 누워 잠든 냥이./우:너무 귀여워서 다시 한컷. 조용히 그 옆에서 잠들고 싶어라.)




(P.S)

너무 긴 하루다. 아침에 살갗을 만진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피곤하여 잠이 오질 않는다. 결국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잠을 다시 청해 보련다. 굿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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