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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07. 2023

"진짜 그렇게 여성스러울 수가 없어."

부서회식 후 부장님과의 대화





언제부터인가 이 이모티콘을 좋아하게 되었다. 어떤 날은 지인과의 톡에서 남발하기도 한다. 내용에 맞지 않게 이 이모티콘으로 마무리하면서 총을 쏴댄 느낌이다. 그냥 이것을 날리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아무튼 그렇다.

(생각 안 해 봤는데 고양이가 할퀴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ㅎㅎ)


계속 바쁜 일정의 연속이다. 월요일은 원래 바쁜 날이라 녹초가 되도록 일했고, 화요일은 막걸리가 먹고 싶어 거절 못한 약속으로 바빴다. 수요일은 코로나로 몇 년 만의 부서 회식으로 달렸다. 물론 부서원들과 돼지갈비를 실컷 먹은 날이었다. 그리고 다시 부장님, 실장님과 오붓하게 카페에 가서 담소를 나눈 뒤 귀가했다.

배짱도 좋지 못하고 직업자체의 특성으로 낯가림이 많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낯을 가린다. 누구는 낯을 가리는 사람이 처음 만나는 사람하고 그렇게 얘기하나 하겠지만 이젠 나이가 들고 넉살도 생겨서 어쩔 수 없이 떠들어 대지만 절대 내 얘기는 하지 않는다. (그런 브런치에서 이렇게 내 얘기를 술술 떠들어댈 줄이야.)


자몽티, 청귤티, 레몬티 세잔을 시켜놓고 많은 사람들 틈새에 앉았다.

(좌:자몽티 내꺼/우:청귤티 실장님꺼)
(부장님 시키신 레몬티. 정말 색깔이 세 잔 다 고왔는데 어려운 자리라 못 찍었다. 또 뭔가 글 쓰는지 의심하실까 봐 이 소심함으로.ㅎ)

왜 실장님은 고기 실컷 먹고 헤어지면 되지 또 어려운 부장님과 셋이서 담소를 하자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좋았다.) 아들 학원시간 맞춰서 간식 줘야 돼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다가 거절 못하고 따라갔다. 잠시 침묵. 실장님은 대화하면서 그렇게 친해지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눈빛으로 말하며 나를 끌고 가시었다. 근데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심... 아 마음이 불편하다. 침묵에 불편러이다. 잠시 직장일에 대한 대화가 오갔다.


"무슨 일이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해 주세요. 저희 둘이 열심히 돕겠습니다."


부장님께서 실장님 말에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기억이 안 난다. 어제 대화인데도 나는 딴생각을 하고 있었나... 또 침묵. 힘들다. 직장얘기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자.


"주말에는 뭘 하세요? 평일에는 그렇게 새벽 수영을 하시고 정말 대단하세요."


여기서부터 대화가 터졌다. 부장님 특유의 웃음으로 쉴 새 없이 떠드신다.


"아는 언니랑 파크볼을 칩니다. 아 하하하. 이게 정말 재미있어."


옆에 실장님도 맞장구를 치면서 자기도 들어 봤는데 정말 주변 지인들이 재미있다 했다고. 나만 못 들어본 운동이다. 실장님께서 자기는 조금 더 나이가 들어서 하면 된다고. 못 들어 봤을 수도 있다고 하신다. 부장님은 나보다 어린 사람들도 있다면서 파크볼 나이랑 상관없다며 웃으신다. 누구 말이 맞을까. 그게 뭐 중요하나. 부장님과 아는 부부랑 같이 가면 3명이서 해도 되는데 혼자 오신 분이 있으면 같이 끼워서 4명이서 하면 혼자온 분도 좋고 더 재미있다고 하셨다. 정말 궁금하다. 파크볼. 골프를 배운 사람은 자세에서 표가 난다고. 골프 안 친 사람들도 규칙을 배우면 할 수 있고. 골프는 채가 많이 있어야 하지만 파크볼은 1개만 가지고 하면 된다고. 그렇게 대화가 찰떡지게 이어졌다.

(좌:파크볼 이미지 검색/우:파크볼 하는 방법 검색하니 가르쳐 줬다. 출처:네이버)


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실장님은 참 여성스러우셔요. 그런데 과장님은 섬머슴아처럼 보이다가도 진짜 그렇게 여성스러울 수가 없어."

 

이게 칭찬인지 뭔지 모르겠다. 어리둥절해서 한참을 생각했다. 이왕이면 칭찬이면 좋겠다 싶어서. 그런데 집에 와서도, 오늘도 자꾸 [그렇게 여성스러울 수가 없어] 이 말이 자꾸 생각이 나고 웃음이 나기도 한다. 밖에서 내 모습이 가식적으로 보이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간호사이니 환자를 대할 때 늘 부드럽고 상냥하게 대하는 건 기본인데 말이다. 집에 오면 양푼이에 밥 두 그릇을 비벼먹고, 김치를 쭉쭉 찢어서 입에 털어 넣어 볼이 터지도록 먹어대는 건 아무도 모를테지. 그렇다고 여성스럽지 않을 이유도 없지만. 대체 [그렇게...]하고 그 의미 없는 단어에 쓸데없는 생각까지 갈아 넣어 또 이러고 있다.


여하튼 이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이렇게 잔잔해 보이는 내가 언제 어디서든지 저런 이모티콘을 가슴에 품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태라는 거다. 아니면 저렇게라도 열정적인 표정으로 누군가를 사랑스럽게 긁어놓고 싶은지도. 누구처럼 또 누구의 댓글처럼 평생을 혼자 알아서 해결하고 살아온 나는 가슴속에 늘 마그마를 품고 산다.



-다음 편에 계속-


(이미지 출처: 이모티콘 빼고 모두 네이버)


(P.S)

조금 조용해서 폭풍 흡입이 아니라 폭풍 글쓰기 아웃 풋이다. 눈치 보면서 쓰긴 하는데 안 바쁘면 오너는 슬프다. 오늘은 약속이 없으니 운동하고 차분히 글을 더 써볼 예정이다. 알람은 꺼주세요. 러브러브↗

기분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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