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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24. 2023

"예전의 그 꿀벅지는 어디로 갔나."

'자전거 타면 항상 기분이 최고지'-더 열심히 타기로 결심하는 이야기





저번주는 아버지와 할머니 산소에 다녀오느라 자전거를 못 탔다. 어제 자전거 삐걱거리는 소리 때문에 자전거 산 곳에 가서 급하게 수리를 하였다. 오전 내내 아들과 대화 후, 대청소를 하면서 자전거를 쳐다보고 있었다. 탈까 말까? 어제는 퇴근 후 밖을 쳐다보고 있으니 더워서 타러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아 어제 뭘 했지? 어제 일도 기억 못 하는 멍텅구리가 되어 가는 건 아니겠지. 요즘 자꾸 단어가 시원스레 생각이 안 나는 게 사실이다. 아직 머릿속이 안개가 낀 듯한 브레인 포그 현상*은 없으니 다행이긴 하다.


*브레인 포그 현상:'뇌안개'라는 뜻으로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한 느낌이 지속되어 사고력과 집중력, 기억력이 저하되고 피로감과 우울감을 느끼는 현상을 총칭한다.


작년 권고사직 당하기 전 직장에서 이런 현상을 경험했다. 순간 무섭기도 했다. 내가 치매가 빨리 오는 건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었다. 알고 보니 과도한 직장의 스트레스와 잘못 형성된 인간관계로 인한 긴장과 두려움이 더욱 상태를 악화시켰다. 그런 브레인 포그 속에 갇혀 있을 수도 없던 것이, 작년 3월에서 4월 사이는 우리 병원에서 코로나 환자를 받기로 하고 병동을 분리해서 일반 환자와 코로나환자를 보며, 정신없이 일을 해야 했기에 잠시 왔다 간 브레인 포그현상에 대해 감사하기도 하다. 그때는 그랬다. 누군가 코로나에 걸리면 마치 죽기라도 할까 봐 그리고 어린 아동이 환자다 보니 더욱 어린 부모들도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가 4급으로 떨어졌고, 코로나로 인해 웃픈 이야기들이 참 많이 떠오른다. 그 와중에 모텔까지 조사가 들어갔던 일이 당시 다니던 병원 근처였고, 누군가 들먹이면 아는 그런 관계의 사람들이 병원에 입원해서 여러 가지 가십거리를 참 많이 제공해 주었다. 나도 우습기도 하지. 왜 이런 하찮은 얘기가 떠오르는 것이냐.


기필코 자전거를 타야겠다. 생각을 부수기도 하고, 그때 봤던 논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퇴근육이 예전 같지 않게 사그라드는 서글픔이 동력이 되었다. 장비를 뒤집어쓰는 것이 참 귀찮다. 얼마 걸리지도 않는데 매번 안전모 고글 목까지 덮는 마스크 아래위 운동복... 가끔 뱃살이 적나라하게 보이게 되는 상의가 신경이 참 많이 쓰인다. 오늘은 다 입은 뒤 헐렁한 윗옷을 하나 더 걸쳤다. 감쪽같이 모든 살이 가려졌다. 이제 슈즈를 신고 현관을 나서기만 하면 된다. (자전거 타러 가는 얘기가 아니니. 서론이 참 길구나.)


바람이 많이 분다. 문화의 전당 공연이 있을 때마다 모든 가로등에 천현수막이 붙는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동안 바람이 어찌나 부는지 펄럭이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2번의 횡단보도를 건넌 뒤 드디어 내 세상이 열린다. 전에 새끼손가락이 삐끗했던 곳에 가기 직전이었다.


"야 이 새끼들아. 좀 비켜 다녀. 인도로... 에이..."


맞은편 해반천 도로에 5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전동휠을 타고 내려오는 모습을 봤었다. 내가 저 외침으로 쳐다봤을 때는 해반천에 떨어지기 직전에 아저씨는 멈췄고. 전동휠은 풀숲에 처박혔다.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날뻔하였다. 아 나도 조심해야겠다. 속도를 내려고 했던 시점에서 이런 사고를 목격하다니.
바람이 부는 게 옷을 많이 껴 입었는데도 춥기까지 하다. 해반천에서는 속도를 내지 않고 달렸다. 오후에 마실 나온 사람들과 애완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도심을 벗어나니 탁 트인 들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해가 벌써 지려고 하는지 낮이 많이 짧아진 게 바로 실감이 난다. 돌아오는 길에 사진을 찍으면 날이 어두워질까 봐 잠깐 멈춰 몇 컷을 찍었다.

(내 고장의 들판 풍경, 자 원근에서 좁혀 갑니다.)
(좌: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니 벼이삭이 흐리게 나옴/우:가까이 가서 다시 촬영함. 낱알이 이쁘죠.)

어느 정도 달려가니 유소년 야구팀이 아직까지 야구를 하고 있다. 부모님 차들이 즐비하다. 아이스박스 가득 먹을거리와 음료들이 나온다. 그 옆 한편에는 오늘 큰 행사를 치른 건지 천막과 의자가 즐비하게 놓여있다.

작은 골프연습장에도 사람들이 조금씩 보인다. 이전 같으면 옆길에서 나를 추월해서 달려가면 끝까지 달려가서 잡았는데 이젠 힘이 빠져서 못하겠다. 그때는 분노에 찬 일도 참 많아서 나를 추월하는 여자든지 남자든지 대부분 남자지만 성이 풀릴 때까지 달려가서 따라붙거나 해볼 때까지 해보고 내 실력에 못 미치면 포기했었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요즘은 자꾸 멈칫거리면서 몸을 사리는 나를 보게 된다. 이것도 호르몬 분비랑 관련이 있는 걸까. 덜 공격적인 사람으로 변해간다. 달릴 때는 머리를 비우고 생각을 하지 않지만, 차가 자전거 옆을 지나가면 차를 세우고, (예전에는 같이 달리다가 옆 수풀에 처박히기도 했다.) 조금 위험하다 싶으면 멈춰서 기다렸다 갔다. 그래도 그렇게 탔어도 갈비뼈 골절 2번이 다다. 긁힌 적은 아주 많지만. 코스모스와 강아지풀이 많이 웃자라 내 허리까지 올라오기도 했다. 비만 먹고 저렇게 쑥쑥 자라나는 식물들이 오늘따라 다르게 보인다. 코스모스가 이뻐서 일부러 멈췄다. 바람에 흔들리는 마음을 잡기라도 하듯이 양손가락에 끼워 사진도  찍어 본다. 대봉감도 길 옆에서 영글어 간다.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아들에게 빼앗긴 속도계를 아쉬워하며 있는 힘껏 질주해 본다. 아마도 최고 속도가 나왔을 듯하다.

(좌:수줍게 피기 시작하는 코스모스들. 큰 행사가 끝난 현장이 멀리서 보인다./우:대봉감이 익어간다.)
(너무 색감이 예뻐서 흔들리는 바람 속에 코스모스 꽃잎을 잡아본다. 꺽지 않았어요.^^)

다시 횡단보도를 두 개를 지나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약간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지하 2층이지만 밖에서 보면 지상 2층인 헬스장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달리고 있다. 집에 가서 고글과 모자만 벗어던진 후 다시 헬스장에 내려가서 30분 정도를 걷고 달렸다. 양 사방의 거울에 나를 비쳐본다. 예전의 그 꿀벅지는 어디로 갔나.

다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하고 삐뚤어진 마음까지 고쳐먹으면 돌아오려나. 나의 대퇴사두근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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