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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27. 2023

"아무래도 손가락이 이상하다."

새끼손가락 엑스레이와 재래시장 칼국수





아무래도 손가락이 이상하다. 한 달이 넘었는데도 계속 이렇게 기분 나쁘게 아프다니. 주위 정형외과를 검색했다. 연휴가 시작되면 아파도 병원에 가지도 못한다. 미리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 그냥 단순한 인대가 늘어난 손상이면 괜찮은데 어디 심하게 신경까지 손상이 간 건 아닐까. 안 그래도 안 이쁜 손에 메스를 대야 하는 걸까. 늘 하는 일이 손가락으로 일을 하고. 상담을 하고 받아 적고. 혈관이 안 나오는 분들 주사도 놓고. 브런치 글도 쓰고. 손가락이 아파서는 못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퇴근하고 갈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왼쪽 새끼손가락 하나 아픈 것이 이렇게 성가시다. 정말 우리 몸에 어느 곳 하나라도 불편하면 온 신경이 머리까지 올라가 두려운 감정을 만드는 변연계 센스가 켜진다. 병원 가지 않고 손가락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소설을 써가면서 만약에를 외쳐댔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애들이 이렇게 아팠다면 벌써 병원에 갔을 거다. 대체 보이지 않은 혈관이나 신경 어디에 손상이 갔을까. 손가락을 돌려보고 눌러보고 그 어디쯤인지 몇 날 며칠을 미루고만 있었다.


6시 퇴근과 함께 재래시장 근처에 잘 위치한 정형외과를 갔다. 잠시 손을 만져보더니 바로 엑스레이를 찍자고 한다. 잠시 기다리니 기사가 와서 3컷의 사진을 찍었다. 사선으로 약간 트는 동작을 하니 새끼손가락이 놀라서 움츠러든다. 참 별일이 다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모두 자전거와 관련해서 엑스레이를 여러 번 찍었구나. 비 온 뒤 비탈길 올라가며 누군가를 피하다가 도랑에 떨어지기 직전에 멈춰서 갈비뼈 골절. 당시 어렸던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자전거 타다가 앞에서 넘어지는 것을 보고, 아들 걱정에 놀라서 내 몸도 자전거에 탄 걸 잊고 몸이 먼저 날아가 엎어지면서 핸들에 부딪혀서 갈비뼈 골절. 누가 뒤에서 봤으면 엄청 우스웠을 장면을 연출하고 풀 숲에 아들 바로 뒤에 엎어졌었다. 낚시하는 사람들 구경하다가 순간 방심해 넘어지면서 무릎을 갈아서 너무 아파 무릎 엑스레이. 찰칵. 찰칵... 차알칵... 많이도 뼈사진을 찍어 댔구나.


잠시 뒤 불려 들어갔다. 보시면 사진은 아주 깨끗하죠.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아마도 인대가 많이 늘어나거나 한 부분에 염증이 생겨서 그럴 수 있습니다. 지금 한 달이 넘어서 고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은데. 고정을 해 드릴까요. 약을 하루 두 번 5일분 드셔보시고 아프면 다시 오세요. 아마 한 두 달 정도까지 통증이 있을 수 있습니다.


바로 옆이 시장 근처라 칼국수 생각이 났다. 4천 오백원이던 시장 칼국수가 6천 원이 되었다. 맛은 그대로였다. 쫄깃한 식감이 살아있다.

(어제 재래시장에서 먹은 6천원짜리 전통시장 칼국수.)

시장통로를 한 바퀴 걸어보았다. 딸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떡볶이 가게에서 고추튀김 3개, 순대 4천원치, 떡볶이 3천원치, 식혜 한통을 5천원을 주고 사서 덤벙덤벙 걸어왔다. 그래도 병원가길 잘했다. 주차장까지 걸어오는 길에 노란 가을 국화다발을 꽃집에서 바깥에 내어 놓은 게 보인다. 가까이서 맡아보니 쑥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들어 마음의 청량감까지 더해준다.


집에 와서 약을 먹었다. 손에다 임시방편 부목을 대어 보았다.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그대로 손에 고정장치를 한 채로 헬스장에 갔다. 사람들이 귀신같이 내 손을 몰래 훔쳐봤다. 그냥 빤히 보셔도 됩니다. 마치 구경이라도 난 듯이. 집에 와서 책을 펴드니 몇 장을 읽지도 못해 강한 졸음이 몰려왔다. 정형외과 약은 이래서 독하다는 얘길 듣는다. 두 번 먹을 약을 한 번으로 줄여야겠다며 잠이 들었다.



(P.S)

나른한 오후다. 연휴 들기 전이라 그런지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환자들로 북적인다. 며칠을 쉰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풀어져 커피 한 모금 없이 오후 업무를 시작했고, 그런 내 마음처럼 글이 초등학생 일기가 된 거 같다. 진한 커피를 한 컵 타왔다. 좀 더 진지하게 글을 한 편 더 써야겠다.

(한번만 더 읽어보면 이런 글은 절대 내보낼 수 없을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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