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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13. 2023

"서울에 간다고 하니 긴장이 많이 되었다."

12시간 동안 서울에 머문 이야기





서울에 간다고 하니 긴장이 많이 되었다. 그것도 오너님과 단 둘이서 비행기라니. 전날 저녁 7시부터 침대에 누워서 잤다. 어찌나 단잠을 잤던지. 아침에 생각보다 일찍 일어났다가 다시 잤다. 그러고 일어나니 아들이 느닷없이 현장 체험학습을 간다 하여 집안에서 둘의 동선이 겹치면서 공항 가는 시간이 늦어져 버렸다.


새로 산 재킷과 목티를 입고 평소에 안 신던 구두를 신고 아침부터 경전철역으로 달려갔다. 마침 신호등도 경전철도 나를 도와주어 바로 탑승을 했다. 8시 45분 비행기다. 나는 경전철에 7시 42분에 올라탔다. 타자마자 오너님 바로 전화가 왔다. 어디쯤 오시고 계세요? 아. 그때부터 심장이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디쯤 가니 바로 또 문자가 날아왔다. 2층 국내선 캔디 파는 곳에서 기다리겠노라고. 어디시냐고 물었다. 나는 거짓말을 했다. 나도 모르게 두 정거장을 건너뛴 역을 지나고 있다고 문자를 보내버렸다. 이미 오너님께서 내게 전화했을 때 도착을 했을 것이며 혼자서 애가 타서 나를 기다리고 확인전화와 문자를 하시는 것이었으리라. 시간을 1초에 한 번씩 보고(거짓말 좀 보태어) 경전철 노선을 검색하며 노려보듯이 쳐다봤다. 정확하게 목적지 공항까지 걸리는 시간은 아무리 찾아도 안 나왔다. 그 와중에 선로는 아름다웠고 창밖의 논들은 노랑빛으로 출렁이며 무르익고 있었다. 예뻐서 연신 찍어 댔고 모두 아침 출근이라 조용히 폰만 보고 있는데 어떤 여자 한 명이 일어서서 제일 첫 칸 앞에 경천철에 기대어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그 와중에도 몇 구간 남았는데 한 구간에 3-4분가량을 넣어서 산수실력을 쌓아갔다. 가령 8구간이 남았으면 그 사이가 3분이라 치면 3x6는 18분 이렇게 계산하는 놀이를 했다. 어느 지점을 지나 선로가 휘어지니 역간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

(좌:경전철에서 찍은 아침사진/우:경전철 선로위)

8시 9분에 공항역에 내리자마자 달리니 안 신던 구두 속 반양말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배겼지만 그것을 다시 신을 시간이 없었다. 2층 에스컬레이터도 뛰어서 올라가다가 중간 부분부터 단발의 파마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최대한 아무 일도 없는 듯 올라갔다. 캔디 파는 곳은 한 중앙에 있었으며 나는 평소 오너님과 거의 대화를 해본 적이 없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두리번거리는데 갑자기 나타나셔서 음료와 샌드위치를 주시며 먹으라고 하셨다. 순간 소오름. 이미 많이 식은 녹차라떼로 보아 얼마나 일찍 도착하셨는지 감을 잡았다. 그 자리서 바로 먹음직스런 샌드위치를 먹고 싶었지만 이미 이륙시간이 가까워서 사양하고 그 맛난 샌드위치를 핸드백에 구겨 넣었다. 라떼는 그 자리서 거의 마셔버렸다.

(좌:누렇게 익어가는 논/우:경전철안에서 맞는 아침)
(경전철안에서 본 비행기들과 이륙직전 비행기 안.)

이미 티켓팅도 다 해놓으셔서 국내선이라 바로 심사 통과 후 3번 게이트에서 대기했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이 어색함이란. 오너님은 아까 급하게 걸어온 것은 과장님이 늦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원래 내 걸음이 빨라서 그런 것이니 신경 쓰지 말아요. 참으로 배려해 주시는 말씀 같아서 설사 아니라 해도 참 기분이 좋았다. 경전철이 약속시간을 지켜줘서 참 고마웠다. 찍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라 가운데 자리에서 겨우 한 장을 찍었다. 오너님은 오렌지주스 1잔을 서비스로 드시고 내내 눈을 감고 주무셨다. 나는 책을 꺼내어서 읽었다. 독특한 시간의 밑줄과 기록을 남긴 독서는 오래 기억이 남기 때문이다.


김포 공항을 빠져나와 6번 게이트에 서 있으니 우리를 다른 마케팅팀 대표님이 마중을 나오셨다.


오늘 모든 일정을 오너님을 위해 비우셨다고 했다. 얼마나 감사한지 전전날부터 외운 서울 지하철 노선도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우리는 1시간 넘게 대표님의 안전 운전에 편하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 탑승하고부터 오너님의 독주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라떼의 이야기지만 지혜로움이 녹아있어 한 마디도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나는 원래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경청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얘기들이 실제로 피와 살이 되었다. 오너님의 살아온 얘기뿐만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태도, 돈에 대한 생각, 그리고 자녀 교육까지. 운전하던 대표님과 나는 배꼽이 빠지기도 했고 코 끝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비행기 안에서 인간관계를 만드는 법 단락에 벌거숭이가 되라고 했는데 오너님의 무장해제가 된 듯한, 벌거숭이의 모습으로 오픈하는 모습에 정말 감명을 받았다.

(김포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마주친 풍경들.)

오며 가며 한 얘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눈에 안 보이는 것이 돈이 된다]는 것과 [돈을 쫓아가면 절대 돈이 모이지 않는다]는 말씀이었다. 모든 이야기들은 실제 경험에서 우러난 것이며 실화를 이야기하면서 해주셨다. 돈은 들어올 때가 있고, 애쓰지 않아도 그냥 막 들어오는 시기, 그 반대로 나가는 시기가 있다. 왜 돈 얘기가 이렇게 쏙쏙 들어왔지...


목적지 병원에 도착하여 3개의 동으로 나눠진 건물에 들어가 사진도 찍고 홍보실장님의 소개로 자세히 얘기를 들었다. 엘리베이터 안부터 모든 부서마다 돌아보고 사진을 찍고 인테리어와 돌아가는 상황을 눈으로 스캔하였다. 돌아보면 남는 게 사진이라 모두 60여 장의 사진을 찍어 왔다. 다 둘러본 후 근처 한식당에 가서 4명이 밥을 먹었다. 태어나서 처음 와본 곳, 처음 걸어보는 낯선 땅. 나는 마음껏 즐기고 누렸다. 오너와의 시간이 점점 익숙해지고 면면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다시 자리를 옮겨 라임레몬에이드를 시키고 여러 가지 상황들에 대한 질문을 하고 메모하며, 한껏 고조된 상태로  생각을 주고받았다. 화장실을 다녀오며 몰래몰래 카페 풍경도 찍어 보았다.

(라임레몬에이드와 엔틱풍 화장대 카페안)
(마음도 저렇게 풀밭에 있었던 행복했던 시간들.)

아낌없이 정보를 주며, 묻는 질문에 스스럼없이 무한 답변을 해주는 젊으신 실장님이 참 고마웠다. 참으로 다들 오픈 마인드시구나. 어디에 돈이 얼마나 들며 먼저 한 시행착오를 말해주고 앞으로 서로의 병원이 잘 되기만을 응원하며 모임을 마쳤다.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이쁜 여주가 있어 사진을 찍어 봤다.(모두 기억의 순서를 붙들기 위함이며 미리 쓸 글을 준비하면서 찍어댄 사진들이다.)

(좌:최신 트렌드 인테리어 사진/우:여운을 남기며 떠나온 목적지 근처 여주사진)

목적지에 가는 길에도 오너님은 연신 이 주위는 모두 복숭아 밭이었는데 건물이 들어섰다. 이 병원 언저리는 모두 논밭이었다고 말씀을 하셔서 서울에 사시는 대표님은 참 많이도 웃고 놀랬다. 다시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사람들이 로또 복권을 사러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여기는 로또 명당이에요. 1등이 50번 정도 당첨이 되었다고 했다. 주말이 되면 500미터 정도 줄을 서는 것은 예사라고 하셨다. 오너님은 창밖으로 보시더니 명당이며, 모서리가 아니라 좋은 땅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그렇게 차로 공항까지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도착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비행기 표는 오후 7시 25분. 아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오너님과 보낼까.

(공항 도착시간. 두 시간을 오너와 함께 춤을.)


배가 너무 불러서 둘 다 저녁을 먹고 싶지 않았다. 오너님은 너무 시간이 많이 남다 보니 공항의 옷가게를 둘러봤다. 그리고 근처 문화센터에서 갓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아마추어들의 그림이 전시가 되어있어 찬찬히 구경을 했다. 제목이 일광인 그림에 멈춰서 일출인지 일몰인지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 그림의 빛은 태양뒤로 넘어가 있으니 일몰이라는 이야기부터 아주 사소한 이야기까지 주고받으며 아침에 만났을 때의 어색함은 없어진 채 공항을 걸었다. 비행기가 보이는 공항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과장님 내려가면 기안서를 원장님께 내시고, 나를 팔고 자신감 있게 밀어붙이세요. 이미 원픽으로 과장님을 데려온 이유는 이제 알겠지요? 직장에서는 이미 내가 과장님과 서울에 출장을 간 자체가 이슈가 되는 겁니다."


나는 두 번째다. 대표의 신임을 얻고 이제 원하는 대로 밀어붙이라는 말. 아무 말없이 듣고 있으면서 정말 그동안 무시당하고 마음 고생한 것들이 한꺼번에 녹는 느낌이었다. 기존 멤버들의 알력과 때론 무시하는 듯한 태도들. 오너님은 1년간 나를 지켜본 것이다. 그리고 기존 멤버와 융합이 되는 것도 자기 입장에서는 중요하다고 하셨다.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믿어 주시고 밀어주시는 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비행기에 타자마자 뒤로 밀려나는 서울이 아쉬워 또 가운데 자리에서 서울야경을 한컷 찍었다.

(아쉬움을 남긴 채 뒤로 밀린 서울 야경.)

오후 8시 30분에 공항에 내려 우리는 가장 빠른 경전철로 이동하여 돌아왔다. 집에 오니 모든 긴장이 다 풀렸다. 며칠 동안 부딪혀 보지 않고 혼자 상상하며 고민한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서울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거의 한 톨도 남기지 않고 큰 아이와 떠들어 댔다. 너무 피곤하여 눈을 감고 입만 동동 살아있는 느낌으로 떠들어 댄 후에  따뜻한 물로 씻고 바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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