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염걸린 이야기 다음으로 자잔거 탄 이야기
자전거는 나의 스트레스 해소구다. 달리면서 사람이 없는 곳에서 고함도 혼자 지른다. 하지만 오늘 새벽의 이 상황은 도저히 자전거를 탈 상황이 아니다. 누가 봐도 말이다...
아침 8시까지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었다. 친구들이 자전거 타러 움질 일 시간에 맞춰 문자를 보냈다.
-자전거 못 타겠어. 밴드에 못 간다고 내려둘게. 약을 먹어도 새벽부터 토하기도 하고 설사가 안 멈추고...
같이 타던 친구는 바로 전화가 왔다. 많이 안 좋냐고 하면서 하루 쉬라고 했다. 그러면서 힘든데 혼자 집에 있으면 아무도 못 챙겨 줄텐데. 힘이 하나도 없냐? 고 물었다. 힘이 하나도 없는 게 아니면 가다가 언제든지 돌아와도 되니 그냥 나오라는 것이었다. 이 미친 상황에도 체력이 남아돈 것일까... 나는 [힘이 하나도 없냐]는 말에 꽂혔다. 아 나는 힘이 하나도 없지 않다. 새벽에 그 난리를 쳤는데도 힘이 하나도... 하나도... 없지는 않단 말이다. 힘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나가야 한다. 그 말을 듣고 이불빨래 나오면 널어 달라고 딸에게 부탁을 하고 약속장소에 나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까 봐 그것이 가장 걱정이고 직업상 남에게 폐가 되는 것은 못 견디는 성격이라서... 친구는 말했다. 취미와 직업생활을 구분하라면서 취미로 그냥 타는 것에 의미를 두고 그렇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하다가 힘들면 집에 돌아와도 되고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신경을 안 쓴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새벽에 난리를 쳐도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 타는 에너지는 남겨 두었나 보다. 예상외로 다리가 꼬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날씨는 하도 좋아서 아팠던 기분마저 말끔히 상쇄시켜 주었다. 다른 때 같으면 뒤쳐지지는 않았을 텐데. 오늘은 꼬리에 붙어 갔다. 그래도 좋았다.
아무도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없다. 내가 나를 챙겨주어야 한다. 엄마가 아픈지 알지만 죽을 한 그릇 사다 줘야 한다는 생각은 못한다. 누군가는 애들이 밥을 하게 하냐고 말한다. 이젠 난 이럴 때도 되었다. 자전거 타고 싶으면 나가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나가고 오늘 같은 아침에 내가 밥을 해놓고 나갈 정신이 있었겠나. 자전거 타면서 전복죽도 먹으러 다닌 사진이 올라왔더라. 나 자전거 타면서 전복죽도 먹고, 먹고 싶은 거 먹으러 다닐 나이가 되었다. 몸이 썩 좋지 않은 상태로 4일째 지내다 보니 신경도 좀 날카로운 거 같다. 자전거 타고 와서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자전거를 타고 왔기 때문에 그 에너지로 화장실 청소며 거실 물걸레질이며 싱크대 정리까지 다 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자. 몸무게가 4일 만에 4킬로 정도 빠졌다.
야외로 나가니 아팠던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달렸다. 수확이 끝난 논도 보고 물레방아도 보고 산에서 내려오는 폭포도 보았다. 누가 나를 이런 곳에 데려다줄 것인가. 나는 내 발로 내 자전거로 보러 다니는 것이다.
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 말할 필요도 없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오늘은 한마디 이렇게 소심하게 쓴다. 그 누구도 그 사람 입장이 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라고. 혼자만의 스트레스를 이기고 외로움을 삭이는 방법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