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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4. 2023

"엄마는 이미 내가 안 되는 놈이라 생각하고 계신 거"

사춘기아들과의 좌충우돌이야기-아들의 한숨





어제저녁 8시쯤 일어나서 절친의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시계를 보고 있는데 마음이 불안하다.

째깍째깍 8시 12분... 쌀을 한소끔 끓여 죽을 먹고 또 시계를 본다... 째깍째깍...


"엄마 마트 다녀와야겠어."


"S 때문에요?"


뒤통수를 딸에게 한 대 맞은 거 같다. 너무도 쿨하게 내뱉은 말에 할 말을 잃을 정도였다. 딸에게 내가 그만큼 신경을 안 쓴다는 것이다. 순간 미안한 맘도 들면서 동시에 어떻게 귀신같이 알아맞혔는지... 아 나는 무섭다. 아들이. 아들이 돌아와서, '엄마 먹을 게 없으면 화가 나요.' 요렇게 아무런 감정동요 없이 또 말할까 봐 그게 더 무섭다. 워킹맘으로 일할 때, 오히려 쉬게 되는 평범한 엄마로서 아무리 몸이 아파도 아이가 운동하고 돌아오는데 머리를 풀어헤치고 퍼져서 잘 수는 없다.


"으응... 네 동생이 곧 들이닥칠 텐데... 엄청 짜증 내며 들어올 까봐 무서워..."


"그러실 줄 알았어요..."


오히려 나보다 더 뒤끝 없이 받아치는 딸이 너무 고맙다. 사실 딸은 내 속에 들어앉은 것처럼 말하고 눈빛으로도 대화를 해나갈 때 진짜 신기방기하다. 어디서 내 몸에서 저런 게 나와서 엄마를 이렇게도 행복하게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내 모든 복은 아이들에게서 비롯된다. 다른 모든 복이 없어도 나는 아이들 복만은 최고인 여자다. 여하튼 아들이 올 시간이 촉박해지자 냉장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대패삼겹미나리볶음이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쉰 김치를 좋아해서 먹기 좋게 아삭한 부분만 예쁘게 자르고 급하나마 깻잎과 함께 세팅? 까지 했다. 8시 52분이 넘었다. 시계가 째깍거려도 이제 걱정 없다. 오면 바로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뒀으니...


늘 9시 5분 무렵에는 마치 땀에 절여진 복싱선수처럼 주짓수복을 땀범벅인 채로 큰 스포츠가방에 구겨 넣고 긴 앞머리를 흔들며 들어온다. 기다려도 오지 않아 전화부터 때린다. 1차로 누나가. 엄마 기분부터 묻는다고 한다. 곧 들어온다고 해서 그대로 두었다. 째깍찌각...이다... 그리고 지이각... 지이각으로 시계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2차로 다시 전화를 내가 했다.


"어디야? 어서 들어와서 밥 먹어."


"곧 들어갈 거예요."


"네가 곧 들어온다고 해서 밥과 반찬을 떠서 식탁에 놔 둔지 1시간 다되어서 식었어. 늦는다고, 몇 시에 들어온다고 하면 좋잖아..."


무슨 남편이라도 기다리는 건가. 나참 이런 나 자신에 화가 나기도 한다. 전화를 끊고 다 식어버린 밥은 다시 밥솥에, 고기 볶음은 다시 후라이팬에 부었다. 그리고 소파에 앉은 지 채 5분도 안되어서 아들이 들어왔다.


"아니 엄마. 그렇게 전화하시면 어떡해요? 조금 늦어도 알아서 먹고, 식으면 식은 대로 먹는다고요."


조금 미안한 맘이 생겨서 식어 버린 볶음을 다시 데워 주었다. 슬쩍 훔쳐보니 정신없이 먹는다. 그리고 먹다 말고 나를 부른다...


"엄마 다음부터 이렇게 하지 마세요. 알아서 들어와서 먹을게요. 엄마 학원 원장님께서 주짓수 그만두고 지금이 중요한 시기라서 학원수업을 듣는 게 어떻냐고 하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엄마가 3개월 주짓수 약속했잖아. 그냥 3개월은 운동하러 다녀. 원장님께 말해둘게. 그렇지만 엄마랑 약속은 지켜야 한다. 3개월 이후는 마음잡고 공부 열심히 하기로. 알겠지?"


학원 수업에 대해 얘기하다가 목소리가 커져서 아들에게 일단 밥부터 먹고 이야기하자고 했다. 이후 샤워를 하고 나온 아들을 잠시 불렀다. 아들은 다짜고짜,


"엄마는 이미 내가 안 되는 놈이라 생각하고 계신 거 아니었어요?"


왜 이렇게 생각하는 걸까… 내가 아들에게 뭘 잘못 말한 것일까. 왜 반복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이미 이전에 내어 뱉은 혹한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이미……. 겨우 죽 먹고 컨디션 올리고 있는데 시간을 더 지체하면 언성이 높아질까 봐,


"S야 엄마 오늘 컨디션 안 좋은 거 알지? 거기에 대한 답과 진지한 대화는 몸이 좀 나아지면 다시 하자..."


댓글로 누군가 말씀하셨다. 이 나이에 내가 또 성장통을 겪으며 성장을 이어 나가야 할 게 있나 했었다. 그러나 그 댓글에 엄마랑 아들이 함께 성장통을 겪고 있다는 말이 그렇게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아 나도 아직 더 자랄 것이 있고, 더 성숙해져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이구나 다시 한번 깊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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