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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25. 2023

"그렇게... 숨 가쁘게 공원의 오후는 저물고 있다."

공원에서의 저무는 가을 산책




퇴근 후 집에서 간단히 밥을 먹고 집 앞 공원에 나갔다. 이젠 조만간 가을 치마를 벗고 겨울 코트를 걸칠 기세다. 평소에 땅과 차만 보고 걷다가 아파트 상가 길 위를 올려다보았다.



(여기까지 쓰고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노트북을 껐다. 핸드폰에 글을 쓸려고 저장된 공원 사진이 세어보니 마흔 장이나 된다. 아... 내일 라이딩이라 잠도 살며시 오기 시작했지만. 사진을 보는 순간 그냥 자러 들어갈 수가 없다. 빛을 발하지 못한 사진이 아깝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꾸 글을 쓰기 싫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일주일 이상 글을 안 쓰고 지낼 것만 같다. 다시 위에 글을 이어서 써본다.)



위를 올려다보니 나무에 빨간 열매가 달려 있다. 우리 아파트 상가에 이런 나무가 서있는 줄은 알았지만 위에까지 쳐다본 것은 처음이다. 빨간 열매가 [나를 좀 봐주세요] 하면서 웃고 있었다. 참 예쁘다. 작은 관상용 화분에 심긴 것은 많이 봤으나 저렇게 큰 나무에 많이 매달려 있는 것이 신기하다.

(자세히 보면 참 많이도 올망졸망 매달려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니 단풍나무 종류옆에 사람들이 몰려 있다. 저마다 배경사진을 찍고 있는 듯 보인다. 한차례 몰려간 사람들 이후 나도 멀리서 아름다운 와인빛과 짙은 주홍빛이 감도는 나무를 찍어봤다.

(카메라의 렌즈가 우리 시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훨씬 더 색깔이 아름답고 곱다)

오늘은 유독 아빠랑 같이 나온 아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엄마는 주말에 쉬고 있는 걸까. 여전히 공원은 강아지들의 산책로가 된 지 오래다. 강아지들도 갇혀 있다 주말이 되니 이런 한낮에 나들이를 많이 나왔다. 낯선 강아지를 보면서 무서워하기도 하고 꽁무니에서 냄새를 맡기도 한다. 여전히 오늘도 가장 많이 벤치를 차지하신 분들은 일흔이 넘으신 어르신들이다. 공원 안에 작은 구멍 뚫린 정자 같은 벤치엔 남자분들이 한두 명 떨어져 앉아있고 햇볕이 쏟아지는 이전 벚꽃나무 거리엔 서너 명씩의 여자분들이 각양각색의 털모자를 쓰고 앉아 계신다. 외롭기도 다정스러워 보이기도 한 그네들은 우리의 부모님 같이 보인다. 아빠랑 달리기를 해대는 대여섯 살 정도의 형제들도 보인다. 꼭 누가 1등인지 가려야 하는지 아빠도 아이가 되어 공원 산책로로 달린다. 제일 먼저 달려가다가 숨이 찼는지 이젠 멈추자고 제안하는 젊은 아빠가 귀엽다. 그리고선 내가 1등이다며 확인을 한다. 그 너머로 또 다른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 오늘 숙제는 다했지?] 아이들은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호수의 푸른 물결 같은 싱그러움을 날리며 무작정 달려 나간다. 그렇게 숨 가쁘게 공원의 오후는 저물고 있다.


그전에 봤던 청둥오리를 세어 보았다. 10마리다. 비슷하게 생긴 두 마리가 목에다 키스를 서로 퍼부으며 빙그르르 돌고 있다. 순식간에 본 장면이라 사진을 찍을 시간도 주지 않는다. 구경하던 젊은 남녀가 갈 길 잃은 듯 넋놓고 보고 있다. 나처럼 말이다. 그리고 한 마리가 호숫가로 혼자 나와서 먹이를 찾으며 물질을 한다. 내가 가만히 쳐다보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눈을 껌벅인다. 핸드폰을 연신 눌러보지만 얻고 싶은 장면은 내 손에서 빠져나갔다.

(좌:청둥오리 사진촬영을 너무 해서 사진첩을 편집했다/우:신나게 놀고 있는 청둥오리)

공원사이 작은 다리를 두고 젊은 외국여성 2명이 프사를 찍는 것인지, 아마도 저렇게 멀리서 찍어대면 얼굴은 안 보일 것이고. 그 중간에 앉은 외국인 남자는 모국어로 들리는 영상을 보면서 큰 소리로 혼자 웃고 있다. 무심코 다리밑을 내려다보니 작은 물고기 떼가 몰려다니고 있었다. 큰 물고기를 없애고 뿌린 알들이 치어가 되고 곧 성어가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겠지...

(자세히 보고 놀랐다. 치어들이 무리지어 다닌다. 어떤 성어로 돌아올 지 궁금하다.)

사람들은 많지 않았지만 저마다의 목적으로 호숫가를 돌고 있다. 강아지와 사람이 섞여서 공존하는 곳. 무심한 듯 또한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지나치며 살아가고 있다.

(공원안의 작은 연못, 가을이 물안에 담기고 정말 물이 정말 깨끗하다)

잠시 나도 중간 바위에 앉았다. 머리카락을 만져 본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내 얼굴을 사진으로 찍어 본다. 아들에게 전송하니 무섭다고 하고 딸은 사진 각도가 이상하다고 바로 답장이 왔다. 언제부턴가 머리카락이 젊음의 척도가 된 것 같다. 내 머리를 내가 만져보면서 점점 적어지는 숱이 느껴진다. 가을의 마지막 문턱에 앉아서 이렇게 혼자라도 계절을 느껴보니 참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일어나서 뜀박질을 하면서 호숫가의 징검다리처럼 놓인 돌 위를 달려 보았다. 하나 둘... 하나 둘... 어린 시절 기쁜 일이 있을 때처럼 그렇게 나는 가을 속을 달려 나갔다.

(좌:물들이고 싶은 고운 빛깔/우:공원 전체 풍경)



(덧글)

내일 밀양 금시당 라이딩이라 일찍 자야겠습니다. 잠결도 아닌데 글의 문맥이 좀 맞지 않습니다. 내일 라이딩 글을 신나게 올려 볼게요.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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