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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26. 2023

"자존심 세우기 전에 실력을 좀 더 키우자."

일요일 밀양 금시당 백곡재를 다녀와서.




밀양 금시당 백곡재를 다녀왔다. 금시당 이름이 참 예뻤는데 [지금이 옳다]라는 금시에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이는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한 구절인 [각금시이작비] 지금이 옳고 지난날이 그른 줄을 깨달았다에서 따온 말이라고 한다.



8시 50분경 물금 취수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약 84킬로 남짓의 거리다. 가볍게 먹고 가선 안된다. 그러면 허기가 지면서 에너지가 나지 않아 페달링이 제대로 안되기 때문이다. 가볍게 생각하고 고구마 하나 먹고 라이딩하고선 힘든 기억이 있다. 물금 취수장에서 모인 사람들과 삼량진에서 합류한 사람들로 15명 정도가 참석했다. 집에서 내린 핸드 드립 커피, 일본에서 사 온 망고맛 비스킷, 대만에서 물 건너온 초콜릿 및 한국 에너지바까지 여러 가지 간식들이 가방에서 나온다. 나는 아직 초보라 내 몸도 건사하기 힘들어 방울토마토를 사놓고도 못 들고 갔다. 삼량진까지 가는 길까지는 무난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6번째로 도착했다. 뒤로 처지면 더 힘들기 때문에 일부러 못 타지만 앞대열에서 출발해서 그나마 꼴찌는 면했다. 날이 춥다 보니 초보는 안 나와서 이번에 참석하신 분들은 모두 나보다 잘 타시는 분들이다. 조금 아찔했지만 그래도 늘 대표리더가 있기에 기분 좋게 2차 팀을 삼랑진 다리 밑에서 만나 출발하였다.


오늘 코스는 거리가 조금 멀지만 아주 무난한 코스로 무한 질주가 가능한 코스였다. 난이도 제로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생각한 코스에서 나는 거의 울다시피 하며 라운딩을 마치고 집에 왔다. 길이 좋고, 실력이 뛰어난 팀이다 보니 밀양 입구에서 얼마나 속도를 내었는지 나만 남기고 어느 길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내 뒤에는 대표리더와 올해 여든이신 큰 형님이라 불리는 분이 전기 자전거를 끌고 내 옆에 바짝 붙어서 오셨다. 이상하게 꼴찌로 가다 보니 아무리 속력을 내어서 따라붙어도 꼴찌다. 앞사람들은 보이지도 않고 조금만 처지면 큰 형님이 뒤에서 밀어주신다. 나는 자존심이 너무도 상했다. 자전거도 못 타는 주제에 쓸데없는 자존심만 생겨있다.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힘들게 밀양입구를 찾아 팀을 만났다. 나는 그만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아무리 꼴찌로 달려도 또 달려도 앞대열이 보이지 않는 데다 조금만 쳐지면 큰 형님이 밀고 있다. 자존심은 뭉개 질대로 뭉개지고 팀원을 보니 그냥 눈물이 났다. 언니와 친구가 따로 사진을 찍자고 했으나 안 찍는다고 했다. 계속 뻗대니 총무님이 와서 따로 찍자고 해서 겨우 하나 찍었다. (그때의 표정이 어떨지 밴드사진에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 참 어린아이 같은 짓을 했다.)


이후 자전거 달리기가 재미가 없어졌다. 계속 뒤따라가서 못 붙으면 대표리더와 큰 형님이 밀어주는 식이다. 중간지점인 영남루에 도착했다.

(영남루 근경과 원경)

나는 워머를 내리지 않았다. (고글은 집에 올 때까지 밥 먹을 때도 안 벗었다. 아유... 참 잘했어요.) 그러는 사이 금시당 백곡재에 도착했다. 친구가 왜 그러냐며 내 표정을 살피고 자전거를 끌고 가서 자물쇠를 채워 주었다. 누가 무슨 말만 걸어도 눈물이 터져 나오는 판이었다. 요 근래 들어 이렇게 운 적이 있나 싶다. 하지만 금시당의 은행나무는 완전 피크는 아니었지만 예뻤다. 금시당 은행나무도 아름다웠지만 잘 지어진 한옥이 더 내 마음을 빼앗았다. 고글 속으로 눈물을 감추고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들어가는 입구는 멍석으로 깔려있었다. 한옥의 기와며 서까래, 동그란 문고리까지 어린 시절 살던 집이 생각이 났다. 담장은 돌로 한 칸씩 쌓은 곳도 있고, 진흙을 이겨 돌과 켜켜이 싸여 있었다. 사진 찍는 관광객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눈치 있는 분은 알 거다. 은행나무나 마당바닥 사진이 적은 것을. 그나마 포토존이 있어 그곳을 비켜서 몰래 찍은 사진들이다.) 멀리서 왔지만 근방에 이렇게 아름다운 한옥 구조물이 있는지 놀라웠다.

(금시당 백곡재 은행나무가 물든 모습)

여기저기서 팀들이 사진을 찍는다. 오라고 한다. 안 갔다. 겨우 단체사진 하나만 미소와 눈물과 보조개 모두를 감추고 안경에 워머를 눈 밑까지 뒤집어쓰고 겨우 한 장을 찍었다. (집에 돌아와 보니 나 참 바보 같은 짓을 했다...)

(좌:들어가는 입구의 멍석/우:서까래 모습, 어린시절 살던 집이 생각난다.)
(좌:동그란 문고리와 마루/우:전체 풍경을 조우해 보다)

라이딩을 하고 이렇게 기분이 나빴던 적은 처음이다. 라이딩은 언제나 옳고 내 삶의 기쁨이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새벽 1시까지 밤길을 달리고 고함을 지르면서 스트레스를 발산한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직장을 여러 번 옮기고 적응하느라 라이딩을 할 수가 없었다. 내 실력이 정말 많이 줄었구나. 산길은 힘들어도 내 속도에 맞춰서 달리면 되었지만 평길에서는 내 실력은 바닥이었다. 주중에도 서너 번씩 타고 출퇴근도 자전거로 움직이는 베테랑들을 내가 어찌 이길 수 있었겠는가. 조금 더 겸손해 지자. 자존심 세우기 전에 실력을 좀 더 키우자. 이제부터 주중 수요일은 야라다. 야라가 답이다. 이대로 포기할 수 없다. 중간 정도는 되어야지 말입니다.

(좌:돌로 만든 담벼락/우:돌과 진흙으로 만든 돌담들과 기와가 예쁘다.)



(덧글)

참 큰일입니다. 유치원생도 하지 않을 짓을 했네요. 울고 다니고... 큰 형님 저 밀지 마세요. 혼자 갈게요. 그러면서 엄청 쳐지고. 아들 생각이 불현듯 났네요.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 했을 때 아 나도 탈 만큼 탄 여자인데 이렇게 실력이 좋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완전 베테랑 초보이구나. 다음부터 정기라이딩 안 가면 그만이지. 집에 와서 지금까지 저녁도 안 먹고 고민했습니다. 연습이 답이구나. 다시 초보가 되어 매주 수요일마다 일이 없으면 야라를 해보겠습니다. (아들아 엄마도 이렇게 노력한단다. 시켜놓은 아구찜이 왔습니다. 알바 마치고 딸도 곧 도착합니다. 라면사리 2개 넣어서 마구마구 먹고 힘을 내렵니다.)

(좌:들어가는 입구 설명문/우:오랜 세월을 간직한 은행나무의 수령이 보인다. 450년이라니...)



부족한 글 읽어 주시는 모든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조금 더 양질의 글을 올리기 위해 더 노력하는 윤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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