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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01. 2023

"라이딩으로 인해 긴장과이완이 반복되면서 홀가분한느낌"

반차를 내고 해반천을 달리다.




아들 담임이 전화가 왔다. S가 기침을 많이 해서 조퇴나 외출을 하겠다고. 미리 아침에 얘기된 거라서 조퇴를 했다. 아들과 나는 같은 마음이다. 모든 친구들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바깥에 걸어 다니는 거나, 내가 남들이 열심히 일할 시간에 반차를 내어 한낮에 바깥을 돌아다니는 일. 마냥 기분이 좋다. 종일 알바시간 빼고 편입공부하는 딸을 불러내어 오랜만에 세 명이 갈비를 먹으러 갔다. 정신없이 먹는 딸과 아들을 보니 배가 부르고 점심 생각이 없다. 그러나... 자전거를 탈 생각이어서 연이어 나온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를 가볍게 비웠다.


약을 세게 지어줘서 비교적 잘 듣는 내과에 가서 5일분 약을 짓고 버블티와 포도당 캔디를 딸과 아들에게 물려서 집에 보낸 뒤 자전거 라이딩 연습을 나갔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집에 들어간 순간 옷을 갈아입기 싫고 그냥 따뜻한 볕에 데워진 소파에 누워 한숨 자고 싶었지만 딴생각을 할 겨를이 없게 바로 자전거 장비를 챙기고 옷을 갈아입었다. 도로가의 가로등에 문화의 전당 공연 깃발이 심하게 펄럭이는 걸로 보아 바람이 장난 아니다. 신호등을 두 번을 건너서 해반천에 내려섰다.


오후 4시 무렵이라 겨울바지가 아니고 가을 바지를 입었더니 바람이 솔솔 들어온다. 속력을 더 내어서 몸에 열을 내어 보자. 이번 일요일은 장유사를 거쳐 불모산에 간다고 한다. 1300여의 고도를 보니 아찔하여 나는 포기했다. 그냥 장유사 입구까지 따라갈까 생각 중이다. 오랜만에 혼자 하는 해반천 라이딩은 또 그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거의 해반천을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리지만 글을 쓰고부터 자꾸 찍고 싶은 풍경이 생겨서 내리게 된다. 이번에도 한 4번 정도 멈춰서 글을 쓸 요량의 풍경을 앨범에 담았다.


날씨가 급작스럽게 추워진 탓에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사람대신 자리한 것이 있으니 바로 철새다. 한참을 달려 나가다 보니 꾸룩꾸룩 철새들의 합창소리에 자전거에서 내렸다. 그곳은 작은 호수로 평소에 연꽃이 장관인 곳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아무리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는다. 다만 모르는 노래도 가사가 안 들려도 사랑노래인지 알 수 있으니. 내가 듣기엔 아마도 사랑하는 짝에게 [이번 겨울은 우리 여기서 맛난 거 먹으며 행복하게 지내자]하는 것쯤으로 들렸다.

(좌:연꽃이 장관인 호수에 철새가 내려 앉았다/우:얼마나 노랫소리가 큰지 목은 몸속에 숨겼다.웃기다)
(뒤돌아 달려온 길을 찍어 보다)

오랜만에 달리는 해반천 길이나 주말마다 원정 라이딩을 다녀서인지 이런 평지 달리기는 식은 죽먹기 같은 느낌이다. 양껏 속도를 내어 보기도 하고 차가운 바람에 움츠러들기도 하지만 라이딩의 즐거움을 느껴보아야 안다. 얼마나 속이 뚫리고 행복한 것인지. 허벅지가 저릿해 오는 이 통증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아 저번 주말에 내 컨디션이 좋지 않았구나. 몸이 훨씬 가벼우면서 달려 나가는 느낌이 부드럽다. 아 내 기분 탓도 있었지만 그냥 잠을 덜 잤던지 몸이 무거워서 그리고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몸이 처진 것이었다.


반환점인 13킬로를 돌아서 조금 여유 있게 달렸다. 바람은 역시나 차서 콧물이 조금 나기 시작한다. 조금 더 달려 나오니 논에 마시멜로가 흩뿌려져 있다. 어릴 때 추수가 끝난 논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하지만 저렇게 볏짚을 돌돌 말아서 보관하면 용이하고, 옮기기도 훨씬 좋은 듯하다. 그래서 소를 키우는 곳에 여물로 주기도 할 것이다. 눈으로 달달함을 맛보며 잠시 멈춰서 어린 시절 추억에 젖어 본다.

  
국민학교 1학년이었다. 당시 보건소에서 시골 학교에 찾아와서 예방접종을 했었다. 강당에 줄을 서서 간호사분들께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정말로 싫어했다. 나는 무서워서 학교 담을 넘어, 가을 추수가 끝난 볏단을 크게 만들어서 세워놓은 그 기둥사이로 몸을 끼워 숨어 있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붙들려 끌려가서 더 아프게 주사를 맞았다. 무슨 주사인지 누가 끌고 갔는지 기억은 없고 그 따뜻했던 볕짚과 짚의 냄새는 코끝에 가물거린다.

(마시멜로 모양의 볏단이 아주 많다. 달달함을 느끼며 달린 라이딩)

이번에는 해반천에 청둥오리들이 떼로 몰려왔다. 집 앞 공원엔 10마리가 돌돌 돌아다니는데 여기는 수십 마리가 군데군데 떼를 지어서 몰려있다. 별소리는 없이 몸을 웅크리기도 하고 하천 가장자리에 몰려있기도 하다.

(생각보다 사진이 밝게 나왔다. 아마도 고글로 나는 어둡게 보였나 보다. 자세히 보면 청둥오리떼 너무 귀엽다)

여기쯤 달리니 약간 어두워지기도 하고, 빠른 시간 내에 내가 사는 도시로 진입하고 싶은 생각밖에 나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인데 사진을 찍어대던 논이 황량하게 비어 있으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음이 느껴진다. 도시 안에, 혹은 건물 안에 있으면 모르지만, 주말 때나 반차를 내어  이렇게 도심을 벗어나야 내가 어디에 있는지 다시 한번 가늠하게 된다.


도심으로 들어오니 골바람이 불어와 더욱 속도를 밀어붙인다. 어둠이 살포시 내려앉기 시작한다. 경천철이 빠르게 사람들을 실어 나른다. 해반천의 다리는 불빛을 피어낸다.

(좌:도심으로 진입해 본 경전철 불켜진 모습/우:다리에 가로등불이 폈다)
(도심진입 직전, 예전에 사진찍던 들판과 노을지는 서녘)



나는 또 어떤 향기를 피어내는 사람일까. 온몸이 라이딩으로 인해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홀가분한 느낌이 돈다. 나만의 향기를 머금고 집으로 돌아왔다.



https://brunch.co.kr/@55bb2227d7a6498/221

(논을 비교해 보시라고 링크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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