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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27. 2023

"요즘 커피를 평소보다 더 마시게 된다."

2023년을 4일 남겨두고...




요즘 커피를 평소보다 더 마시게 된다.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서다. 믹스도 마시고 블랙도 마시고 섞어서도 마시고. 마시고 나면 정신도 말개지고 일할 의욕도 생긴다. 특히 오후 2시는 마의 시간이다. 눈을 뜨고 있어도 자는 것 같다. 그러면 더 진한 커피가 필요하다. 예전처럼 한 톤 높은 볼륨에, 마스크뒤에 보조개를 감추고 보여 주진 않지만 업무 중 환자를 만나는 일이 가장 행복한 일이다. 나는 언제나 현장이 좋고 더 늙어도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에 감사하다. 사실은 주사실에 앉아서 종일 아픈 환자를 만나 바늘 찌르는 일만 하고 싶다. 관리는 늘 머리 아프다...


이전 직장에서 과장이라는 직책이 있어도 환자분들이 나만 찾았다. [J과장님 어디갔노?], [오늘 안 나오싰나?] 신규들이 오면 나만 따라다니며 주사 놓는 것을 배웠다. 아침에 원장님 따라 한 바퀴 라운딩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환자들은 몰래 나에게만 부탁을 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서운했겠지만 안 아프게, 빠르게, 순식간에 주사를 찌르는 것이 내 특기다. 그리고 엉덩이 주사도 내가 놓으면 [하나도 안 아프다]고 말씀을 하셔서 농담하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날 간호사 엄마인 나는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진료 후 시간이 없으면, 주치의께 허락을 받고 수액을 집에 가지고 온 적이 있었다. 아이들이 하는 말 [엄마가 놓는 주사는 하나도 안 아파요. 정말이에요] 늘 그런 말을 하였다. 그러려니 했으나 지금은 내가 정말 그렇다는 것을 안다. 특히 수술을 앞두고 혈관이 나오지 않으면 밤근무 한 간호사들이 노심초사하며,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18게이지의 바늘을 준비해 놓고 기다렸다. 그것이 나의 기쁨이고 자랑이었다. 물론 대단히 큰 병원에서는 전담팀도 있지만 나는 그런 소소한 즐거움으로 머리 아픈 관리직이라도 즐겁게 일하러 다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현장에서 환자를 만날 일이 줄어든다. 오너랑 독대까지 할 일이 생긴다. 오너랑 서울소재 병원을 마케팅하기 위해 다녀온 뒤 그다음 달 급여가 올랐다. 그렇게 많이 오르진 않았지만 나는 놀랐다. 그러나 급여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라 인상시기도 아니어서 나는 입을 꾸욱 다물었다. 오너가 내가 일하는 현장에 내려오면 눈으로만 감사의 인사를 나눴다. 아직도 눈에 선하고 또렷이 들린다. [이제 나랑 출장 갔다 내려가시면 사람들이 다 과장님을 예사로 보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일을 밀어붙이고 밑에 사람들에게 내 빽을 믿고 일을 많이 시키세요.] 그리고 나는 한참 동안 어깨가 승천해 있었다. 기분이 날아갈 듯이 기뻤다. 그리고 요 근래 들어 부장님이 나를 누르는 느낌을 자꾸 받는다. 서울출장 다녀온 그 기분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한없이 쪼그라져 있는 나를 본다... 띠동갑보다 위이며 대선배인 부장님 기에 완전히 눌려버렸다. 그러나 오늘 나는 커피를 한껏 마시고, 기분이 좋아 동동거리며 부풀어 올랐다. 생각을 거꾸로 하기로 했다.


제가 부장님 자리를 대신할 가장 위협적인 인물인가요? 그래서 저에게 요즘 그렇게 경계하시고 의논도 안 하시는 건가요? 그런가요? 부장님... 나는 이렇게 생각할테다. 내 마음의 소리를 거부할 수가 없닷.




(덧붙이는 글)


어제 혼자 우울한 기분이 저를 통과하고 있음을 감지하고, 저를 달래기 위해 기분 전환을 했습니다. 고작 할 수 있는 것은 집에서 걸어 10분 거리의 극장에서 영화 보기입니다. 나올 때부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을 주시하고 있다 어제 내리기 전에 극장을 간 것입니다. 사카모토 류이치라는 사운드트랙 작곡가의 유작이라고 소개가 되었네요. 제대로 제 취향이 아닌 영화였어요. 평점이 8.97이라니 놀랍습니다. 제가 보통 사람들과 다른 면이 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상미가 정말 우수했고, 누가 괴물인지에 대한 해석은 사람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영화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재미는 10점 만점에 4.5 정도였습니다. 저는 제 상황에 따라서 영화가 다르게 보일 수 있단 생각을 다시 한번 더 했습니다. 행복한 기분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랑 갔다면 평점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평점은 그대로 이겠지만, 그 시간이 더 의미 있는 시간으로 제 인생에 뿌려진 안개꽃 같았겠지요.

(좌:작가의 시선 처리가 고운 한 장면/우:영상미는 최고였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권하고 싶지 않다...)


끝으로 우울한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너무 걱정이 되어 댓글까지 온통 마음으로 걱정을 나누어 주신 분들께 어떻게 보답할까요.

4일 남은 2023년 잘 마무리하시고 늘 건강하시고, 기쁘시고, 사랑을 나누시고, 또 맘껏 사랑을 그냥 이유 없이 받을 줄도 아는 2024년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모든 작가님들, 독자님들 사랑합니다. 저는 더 철이 드는 한 해가 될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333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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